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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 민정장관을 임명하라.
  2005-01-05 00:00:00, 조회 : 9,572, 추천 : 1828

Name : 김진욱 Date : 28-04-2004 12:19 Line : 98 Read : 82
[1] 이라크에 민정장관을 임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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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독자적인 작전지휘체제를 위해
이라크에 민정장관 임명을 제안한다.



탄핵정국은 4·15 총선을 통해 초유의 거대 진보여당을 만들어 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은 과거 자민련 보수의 지렛대를 진보의 지렛대로 바꾸어 놓았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진보적인 제도와 정책을 만들기로 힘을 합친다면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제 도덕성의 문제는 언론과 검찰이 잘만 해준다면 16대 국회에서처럼 그렇게 대단한 쟁점으로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진보와 보수 양당사이에 그야말로 본격적인 정책경쟁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가 사회의 양날개로서 각각 그 정체성을 회복하고 건전한 정책경쟁을 벌여줄 것을 기대한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필요성을 인정해야

양가치가 우리의 체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관점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가 함께 펄럭여야 새가 앞으로 잘 날아갈 수 있듯이 보수와 진보가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사회발전을 위하여 건전한 논쟁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진보 거대여당의 출현은 벌써부터 곳곳에서 새로운 변화의 조짐을 일으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라크 파병의 문제는 중요한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은 이라크전에 대하여 재평가를 해보고 한국군의 파병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다.

잘못된 전쟁

2003년 5월 1일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종전을 선언했고 미국은 이라크전에서 완전하게 승리를 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시민들은 부시의 이라크전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했고 종전이후 부시의 지지도는 더욱 더 높아졌다. 2003년 12월 14일 후세인이 체포되었고 이제 미국의 승리는 확실해지는 것으로 보였다. 이라크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 되었고 전쟁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역시 힘은 정의를 만들어 낸다는 역사적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것이 엄청난 오판이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왜 인류는 그렇게 너무나 잘 아는 잘못들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불과 얼마전에 소말리아에서 겪었고 또 월남전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미국은 왜 또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너무나 자주 ‘전술적으로는 이겼어도 전략적으로는 졌다. 전술적으로는 졌지만, 전략적으로는 이겼다’라는 말을 해왔다. ‘당시에는 이겼지만 역사가 흐르고 나서 나중에 생각해보니 진거였더라. 계속 우리가 지고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우리가 결과적으로 이기고 있는 거였더라.’ 이런 상황들은 역사에서 아주 흔하게 발생하는 경우였다. 사실 우리가 군에서 전략과 전술을 배우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그런 판단능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전략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전략과 전술을 잘 구분하여 비록 전술에서 지더라도 전략에서 이기는 길을 택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흔하게 발견되는 사례인데 왜 우리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UN승인없이 패권전쟁으로 인식

미국은 유엔으로부터 이라크 전쟁의 명분에 대해 인정받으려고 했다. 유엔과 함께 이라크를 응징하게 된다면 전세계 광범위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테러조직들에 대하여 미국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유엔의 입장에서 이라크를 침략해야할 명분은 뚜렷하지 않았다.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들을 없애야 한다고 증거를 대고 강변했지만 그것은 다른 유럽강국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 유엔의 주요 국가들이 반대를 했기 때문에 결국 전쟁은 영국과 호주, 카나다 등 영연방의 나라들이 마치 절대중상주의 시대 틀속에서 전쟁을 반복하는 것처럼 시작되었다. 유엔이나 전쟁에 반대했던 나라들에게 이라크 전쟁은 정의의 전쟁이 아니었고 일종의 패권전쟁, 자원전쟁으로 비쳐졌다. 동서 냉전시대의 한쪽의 맹주국으로서 그리고 냉전이후 새로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일극체제 수퍼 파워 미국’이 과연 어떤 리더십으로 어떤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인지 우리는 예의 주시해 왔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게도 미국은 소위 근대시대의 팽창주의 세계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 틀속에 묶어져 있었다.

청교도 정신은 상실되었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청교도 정신을 바탕으로 생겨난 나라이다. 아직도 WASP (White Anglo Saxson Protestants)이라는 말은 미국 사회의 주요 의사결정자들을 의미하고 있고 WASP의 중심가치는 바로 기독교 정신이다. 정치라든가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가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은 취임선서를 할 때 성경에 손을 언고 선서를 한다. 대통령의 행위를 성경에 근거해서 기독교 정신에 따라서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정신은 바로 그들의 의사결정의 바탕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믿어왔고 그런 미국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성경에 어떻게 되어 있는가. ‘원수를 사랑하라’ ‘누가 너희의 한뺨을 때리면 다른 뺨까지 내밀어 주어라’ 이렇게 되어 있다. 그렇게 철저한 기독교 근본주의 정신에서 출발한 미국 사회가 9·11 테러이후에 보여준 행태는 그들의 정신, 그들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했다. 9·11 테러가 발생하고 나서 미국시민의 90% 이상이 보복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런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부시 대통령은 유엔의 결정을 무시하고 이라크를 침공하였다. ‘폭력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사랑밖에 없다.’ ‘폭력은 폭력으로 해결이 안된다’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미국은 과연 기독교 정신의 바탕위에 서 있는 나라인가. 적어도 미국 시민의 반이라도 성경의 말씀을 가치있게 생각하고 있다면 미국이 그런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9·11 테러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반응은 참으로 실망적인 것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기독교 정신이니 사랑과 같은 것은 아예 없었고 오로지 강자로서의 자존심과 보복심만이 불타고 있었다. 저것이 무슨 청교도 정신,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생겨난 나라인가. 미국이야말로 18, 19세기의 과거 팽창주의, 패권주의 국가의 틀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200여년동안 본토에 대한 심각한 위협을 느끼지 않는 가운데 역사적인 진보가 멈춰온 나라가 아닌가.

순교전쟁과 인도주의국가

이라크전이 시작되면서 나는 이 전쟁이 장기전으로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두가지 원인을 생각했다.
첫째는 이라크나 혹은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무슬림에 의한 종교적 순교때문이었다. 종교적 순교자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죽음을 영예롭게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만연될 경우 그 어떤 힘으로도 결코 막을 수가 없다. 옥쇄전투, 가미가제, 죽창을 들고 달려드는 일본인들에게 미국은 원자탄이라는 극약을 처방할 수밖에 없었다. 순교전쟁은 사람들 자체가 무기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모두 죽여야 끝이 나는 전쟁이다. 그러니 인도주의 국가에서는 참으로 대처하기 힘든 전쟁이다. 이라크 사람들을 다 죽여야만 이길 수 있는 전쟁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전쟁일까. 이것이 바로 순교자들에 의해서 싸우는 전쟁이고 그래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은 저렇게 끝이 나지 않고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다. 아마도 한쪽이 모두 죽어야 끝이 날지도 모를 일이다. 종교적으로 나는 죽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싸운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적어도 전쟁이라는 게임은 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람들간의 게임이지 한쪽이 죽음 자체를 초월해 있다면 이미 이것은 게임으로서 형성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라크전이 지리한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본 것이다.

후세인과 주변 아랍국가들

둘째, 이라크 전쟁에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이나 유럽의 강국들이 관련될 가능성이 많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미국이 후세인의 악정을 막고 대량살상무기를 없애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다고 하지만, 사실 후세인의 악정이라고 하는 상황도 그것은 이슬람 국가들의 공통적인 종교레짐의 특성이지 후세인만의 문제도 아니고 대량살상무기의 문제도 강대국의 논리일 뿐 확고한 명분을 주지 못했다. 후세인의 종교레짐은 주변의 이슬람 국가들과 연결되어 있고 이라크의 문제는 주변 아랍국들의 문제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랍국가들이 이라크전에 관련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보았다. 또 이라크와 후세인 정부는 주변에 있는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의 강대국들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이 이라크전에 관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았다. 이런 주변국가들이 이라크전에 관련될 경우, 이 전쟁이 상당히 오래 갈 것이 분명하고 아마도 3차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개방된 이라크사회와
조기(早期)종전(終戰)

그런데 이라크내에 순교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후세인이 엄청난 수효의 이라크인들을 선동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대항할 경우, 미국이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다행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후세인이 그렇게 하지못한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스스로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후세인에 대하여 적대적이거나 혹은 중립적인 입장에 서 있었다는 문제도 있었고 특히 여러 아랍방송, 아랍신문들이 비교적 객관적으로 무슬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여 그렇게 미개된 행태를 만들기에는 이미 이라크 사회가 어느정도 개방된 또는 개화된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또 주변의 강대국들이 1, 2차세계대전 때처럼 전세계가 피를 흘리는 것을 막기위해서 이라크전과의 관련을 줄이고 가능한한 전쟁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자제하였다. 명분과 이익이 혼탁해져 걷잡을 수없이 전쟁이 계속되고 피해는 결국 선량한 시민들이 입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 전쟁의 교훈으로부터 충분히 배웠고 기왕에 일어난 전쟁을 어떻게든지 조기 종결하기 위해서 유럽 강국들이 함께 노력한 점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전쟁은 끝났다. 미국이 이겼다는 것이었다. 현자들은 전쟁이 너무 빨리 끝났기 때문에 이라크내에 또 다른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였다. 아랍국의 종교 분파갈등의 문제는 모든 문제들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미국이 재빨리 어떤 조치들을 취해줄 것을 기대했다. 애초에 이라크를 침략했던 명분대로 이라크내에 악을 없애고 선을 만드는데 수퍼 파워의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다. 구호활동이라든가 질서유지의 문제라든가 종파간의 화해 문제라든가 교육의 문제, 민주정부의 설립문제, 경제토대의 구축 등 적극적으로 이라크의 재건활동을 벌여줄 것을 기대했다. 유엔의 도움을 얻어서 이슬람 국가들의 현자들과 주변 강국의 전문가들 그리고 이라크내의 지도자들을 통솔하여 신속하게 일처리를 해줄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은 결국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애초부터 이라크를 침공한 목적이 그들이 겉으로 말한 그런 명분이 아니었음을 이라크 복구과정에서 스스로 드러내고 말았다. 어찌된 일인지 미군은 점령군으로서의 행태를 보이는 데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점령군은 그런 인도주의적인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시간을 끌면서 점령지역에서의 기득권을 확고히 하고 전과확대를 하는 것이 목적인양 행동했다. 그래서 결국은 그것이 미국의 침공의 명분을 완전이 땅에 떨어뜨리게 했고 이슬람국가들의 반미감정을 조장하게 되고 이라크내 순교자들의 활동에 대한 명분을 만들게 된 것이다.

후세인의 빠른 후퇴와 걸프전 승리

1991년 당시, 미국은 유엔의 승인을 얻어서 걸프전쟁을 시작했다. 쿠웨이트를 해방시킨다는 명분이 확실이 있었고 유럽의 강국들이 대체로 다국적군으로 함께 참여하였다. 쿠웨이트가 해방될 때 나는 개선군으로 쿠웨이트에 들어갔는데 쿠웨이트 시민들이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와 다음과 같은 두가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하나는 ‘프리 쿠웨이트’이고, 다른 하나는 ‘사담스 헤드’였다. 그들이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쿠웨이트를 만들자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사담의 목을 치라고 쿠웨이트 모든 시민들이 외쳤지만 사담은 제거되지 않았다. 당시 아버지 부시가 여러가지 판단을 했겠지만 나도 그때 왜 사담을 제거하지 않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사담을 그대로 놔두는 것이 아랍을 관리하는데 있어서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또 그때 당시에는 전쟁의 목적이 쿠웨이트를 해방시키는 것이었고 일단 이라크가 쿠웨이트에서 철수를 하고 항복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유엔이 승인한 전쟁 목적 자체가 이루어졌다고 본 것이다. 또 혹 아버지 부시가 장기적으로 전쟁을 끌고 갔을 때 지금 아들 부시가 겪고 있는 상황을 우려했는지도 모른다.

이라크전과 파퓰리즘

그리고 이제 아들 부시가 이라크가 테러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과 대량상살무기를 제조하고 있다는 구실로 유엔이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공격했다. 부시의 결정은 강력한 미국 시민들의 지지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 부시때의 걸프전쟁과 비교할 때 전쟁의 원인, 명분이나 어떤 상황적인 여건 또는 어떤 정치적인 계산방식에 있어서 여러 가지 판단착오가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오류의 원인은 역시 미국의 언론에 의하여 선동된 파퓰리즘이었다. 파퓰리즘에 따라 쉽게 의사결정을 해버린 어리석은 지도자들의 문제였다. 이라크 침공 당시에 부시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미국 사람들은 90% 가까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부시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40%밖에 안된다. 침공이 잘못된 것이고 지금이라도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국 사람들이 50%에 이르고 있다. 미국이 테러에 맞서 패배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40%가 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파퓰리즘의 정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천민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상업언론이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것은 역사를 알고, 세계를 알고, 우주를 알고, 인류 진보의 흐름과 자연의 이치를 알고 이런 생태적인 것들의 조합을 잘 아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전문가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언론들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정의의 게임을 하기보다 당연히 몇천배 몇만배 수의 보통의 사람들과 시장게임을 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에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당장 설득력이 없고 재미도 없고 일반대중들이 생각할 때 가능성도 낮아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장사하면 밑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일반 대중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파악하고 그들을 선동하면 그들을 모두 TV 앞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방송과 신문들은 그때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서 거기에 맞춰 보도방향을 정한다. 시청률과 보급률을 높여야 방송국도 운영하고 기자들도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학자나 전문가들의 이야기보다 방송에 자주 나오는 어떤 배우나 가수들의 이야기를 더 믿는다. 어떤 유명인사가 상업광고에서 하는 말은 믿어도 어떤 알려지지 않은 조사자가 나와서 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믿지 않는다. 소위 이런 종류의 단순두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파퓰리즘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런 보통의 시청자들에 의해서 미국의 주요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이번 이라크전을 통해서 보더라도 분명한 사실이다. 바로 이런 원인들 때문에 미국이 현재 이렇게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해진 거다. 미국이 파퓰리즘의 문제를 극복하지 않는 한, 또 다시 이러한 상황을 계속 반복하게 될 것이다. 현재 미국은 이라크에 들어가서 월남전이나 소말리아 사태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또 다시 겪을 위기에 처해 있다. 그것은 천민언론이 만들어낸 파퓰리즘의 문제였고 그것에 의지한 어리석은 정치 지도자들의 문제였다.

정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강대국

젊은 시절, 나는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어느 주말 저녁에 나는 많은 미국 시민들이 참여하는 어떤 집회에서 사람들이 성조기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미국의 국가를 듣고 있는 모습들을 보았다. 나는 새삼스럽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의미가 무엇인가 생각했다. 인권이 보장되고 자유와 평등, 봉사와 사랑이 넘치는 기회의 땅, 복지와 안전이 확고하게 보장되는 평화로운 나라, 바로 우리 인류의 이상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릴 때부터 미국식의 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미국이야말로 나의 제2의 조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미국을 좋아하는 것은 미국이 강대국 이래서가 아니다. 미국이 단지 군사력만이 강하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다른 모든 나라들이 미국을 따른다고 할 경우 미국은 더 이상 진정한 강대국이 아니다. 무력으로 권위를 유지하는 나라를 우리는 강대국이라고 부를 수 없다. 정의와 인도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을 진정한 강대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이 진정한 의미에서 강대국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려면 다른 모든 나라들로부터 정의라고 말하는 것에 대하여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유엔의 깃발아래로 들어가라!

이라크전의 해답은 무엇인가. 답은 명확하다. 미국은 당연히 유엔의 깃발아래 들어가 유엔의 결정에 따라서 자신이 갖고 있는 무력을 활용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강대국 미국의 이상이요 합중국의 의미다. 전세계 사람들, 전세계 전문가들, 전세계 현자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패권주의 시대를 넘어선 오늘날의 진정한 강대국의 의미이다. 미국이 만약에 소위 강대국으로서의 긍지와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로 만인이 생각하는 정의 위에 서는 것이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결코 미국의 자존심이 지켜질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생활할 때 미국이라는 나라를 정말로 우리나라 다음으로 사랑하게 되었던 것은 미국에는 정의와 공평이 보장되고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었기 때문이지 미국이 군사력이 강하기 때문도 아니고 미국이 자원이 풍부하고 경제적으로 강대국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만일 미국이 단지 군사력이라는 거, 경제력이라는 거, 그것만 내세워서 자존심을 세운다면 그것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자기들만의 자존심이 될 것이다. 그런 권력에 의한 자존심이야말로 바로 미국의 비겁함이고 더러운 명예이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자긍심, 자존심을 우리는 자만심이라고 부른다.
과연 미국의 자존심, 미국의 자긍심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의 힘으로 우리 인류가 선택한 ‘유일한 대안’ 유엔을 지켜주는 일이다. 유엔의 깃발을 세계 도처에 날리게 하는 일이다. 유엔의 깃발과 미국의 깃발중 어느 것이 더 정의가 있는가. 말할 필요도 없이 유엔의 깃발이다. 유엔의 깃발과 미국의 깃발이 누가 더 존중될 가치가 있고 누가 더 인간의 존엄성과 세계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 유엔의 깃발이다. 유엔의 깃발과 미국의 깃발중 누가 더 객관적이고 공평하고 인류를 더 화합시킬 수 있겠는가. 유엔의 깃발이다. 이것은 너무나 명확한 일이다. 미국의 가치는 그들이 공평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데 있다. 미국의 자존심은 그들이 수퍼 파워로 정의를 지키는데 있다. 미국의 자긍심, 그것은 바로 유엔의 깃발 아래에서 미국의 군사력을 활용하여 세계평화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정의를 사랑하는 미국의 자존심이요, 사랑의 중요성을 말하는 기독교 정신이다.

미국의 진정한 가치가
보여질 수 있도록

미국이 만약 미국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한다면 다른 나라들은 모두 힘을 합쳐 미국에 대항할 것이 뻔한 일이다. 미국이 미국의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세계평화를 위하여 행동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많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행동에 찬성하고 미국과 함께 힘을 합치는 것이다. 미국의 힘은 무엇인가. 바로 이런 세계 여러나라들의 동조이다. 만일 어느 미국의 지도자가 미국의 이익을 위한답시고 세계 여러 다른 나라들의 지지를 잃어 버린다면 그는 바로 미국에게 엄청난 손해를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이제 유엔의 결정에 모든 것을 따르겠다는 분명한 선언과 함께 그것을 행동으로서 보여줘야 한다. 이라크에서 점령군의 행태가 아니라 정의를 사랑하고 인권을 존중하고 인류평등을 실현하는 나라라는 것을 이라크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구호활동, 질서유지, 시설복구, 교육, 환경측면에서 강대국 미국의 면모 그대로 이라크에 투자하고 봉사하고 헌신해 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자존심이요, 자긍심이요, 미국정신의 중심인 기독교정신이요, 청교도 정신이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더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요, 우리가 미국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이다.

파병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라크에 대한 한국의 지원문제를 다음과 같은 세가지 차원에서 개념을 재정리하고 재결정해야 한다. 하나는 진정으로 이라크와 이라크의 시민들을 위해서 한국 사회가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는가 하는 차원에서 생각해 보는 일이고 두 번째는 미국과의 관련문제에 대하여 재검토해 보는 일이고 세 번째는 현재 우리나라가 처해져 있는 상황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일이다. 이렇게 세가지 측면에서 정의가 무엇인가 하는 점과 우리가 현실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을 판단하여 이라크 지원에 대한 방향과 지원단의 성격, 규모를 재결정해야 한다.

50년전 우리상황과 같은 이라크

첫째 우리가 처해져 있는 상황을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우리나라도 이제 국제사회에서 혼자 고립되어 살아갈 수 없다는 점이고 둘째는 우리는 분명 세계를 움직이는 수퍼 파워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라크에 대한 파병이 순전히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분명 진실이 아니다. 더 큰 명분은 우리도 해방이후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었고 이제 국제사회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우리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동네에 살고 있는 소년 소녀 가장을 돕는 일과 지구촌 어느 지역에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라를 돕는 일은 이제 서로 다른 일이 아니다.
우리는 1945년 해방이후 이라크와 비교적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나라다. 이라크에서 종파간의 갈등이 있듯이 우리도 이념에 따른 분파갈등이 심했고 이라크가 수퍼파워 미국과 주변 강국의 이익에 의하여 조종되고 있듯이 우리도 50여년전 그런 경험을 겪었다. 우리가 내부갈등 및 외부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때 유엔의 결정을 객관적으로 생각했듯이 이라크도 유엔의 결정을 객관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상황에 대하여 아마도 국제사회에서 우리만큼 잘 아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50여년전 우리는 누군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우리를 진정한 마음으로 도와줄 것을 기대했다. 그런 기대는 현재 이라크에도 똑같이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면 우리야말로 우리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줘야 한다. 우리가 내정간섭을 받지 않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제를 결정할 수 있도록 바라고 있었다면 우리도 이라크에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우리가 내부 분파간의 갈등문제가 더욱 심화되고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경우,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 혹은 전문가 그룹이나 현자그룹이 우리의 문제에 대하여 조언을 해줄 것을 기대했다면 이라크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우리는 그들이 해결할 수 없는 상황, 그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들을 정확히 알고 그들을 도와줘야 한다. 이웃나라를 돕는 것은 우리 동네의 이웃을 돕는 것과 그 의미나 당위성에서 다른 것이 전혀 없다.

또 하나의 측면은 우리는 분명 세계를 움직이는 수퍼 파워는 아니라는 점이다. 100여년전 대원군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척화비까지 세워가며 많은 노력을 하였다. 반면에 개화파들은 국제적인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국민들에게 외쳤다. 국가안에서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정의를 지키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엄연히 약육강식의 생존논리가 지배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약자가 정의에 대한 가치를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처해져 있는 현실은 무엇인가. 국제사회는 과연 정의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인가. 우리에게 정의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는가. 두가지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긍정적인 답을 얻을 수 없음이 자명한 일이다. 국내에서 정의를 외치는 것은 마땅한 일이나 정의가 지배하지 못하는 국제사회에서 정의의 관점에서 모든 일을 판단하다 보면 자칫 100년전과 같은 실수를 범할 수도 있고 자잘한 국가이익은 물론, 잘못하면 민족의 생존권에 대한 흐름을 또 다시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둘째, 미국과의 문제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일이다.
1950년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시킨다고 선언한 것은 당시 미국이 한국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유엔군이 참여한 것은 분명 이승만 대통령이 강력히 요청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의 고려가 첫 번째이고 그리고 미국의 이익과 공산주의의 팽창을 막기 위한 것이 두 번째 고려요소였다고 생각한다. 동서진영의 대립상황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월남에서, 독일에서 또 전세계 지역에서 벌어졌던 일이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만이 유달리 강대국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한반도를 양단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오히려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던 우리 조상들에 대하여 비판을 할 뿐, 2차 대전이후 새롭게 형성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강대국들에 의하여 한반도가 분단된 것에 대하여 누구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것은 엄연히 내탓이요, 우리의 탓이었다. 지금도 우리가 현실과 이상을 잘못 판단하여 국민분열을 일으키고 힘을 집중하지 못하여 결국 강대국들에 의하여 한반도 문제가 좌지우지될 경우, 그것을 내탓이요, 우리 탓이라고 생각할 뿐, 강대국들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우리가 해방될 당시만 하더라도 인류는 과연 공산주의가 인류를 행복하게 하고 진보를 가져다 줄 것인지, 자본주의가 더욱 발전하여 인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인지 분명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각 나라들이 혹은 각 민족들이 진보의 과정에서 어떠한 제도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시험단계에 있었고 그래서 우리 내부에서 발생한 좌우논쟁은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었다. 누구라도 인간에 대한 애정, 민족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면 공산주의를 연구하였을 것이고 공산주의 사상에 빠졌을 수도 있고 또 공산주의 선전선동을 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폭력혁명에 관해서는 그것이 선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그때 당시에도 분명히 가릴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폭력을 통하여 공산주의 활동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익이건 좌익이건 폭력과 연결되어 있을 경우 그것은 인간애나 민족애의 차원이 아니라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과 관련하여 발생된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런 차원에서 김일성이 무력을 이용하여 한반도를 공산화하려고 남침한 것에 대하여 나는 비난하는 것이다. 폭력으로 어떻게 한다는 것은 어떤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옳지 못하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은 한반도가 공산화될 위기에 놓였고 이승만 정부가 미국에 강력히 요청하여 그들이 한국전에 참전하였고 3만명이 훨씬 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낯선 이 땅에 와서 전사하였다. 트루만 대통령의 결정은 복잡한 계산없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었고 준비도 없이 일본에서 한국전에 배치된 스미스 부대는 초전에 대패하여 많은 젊은 장병들의 목숨을 잃었다. 그들과 유엔 회원국들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결국 이땅의 자유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50년 우리는 이땅 여기에 경제번영을 일으켰고 이제 어느 나라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꽃을 이땅에 피워냈다. 나는 이제 우리나라에 미국 이상으로 인권이 보장되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열려 있고 자유와 평등에 대한 비전이 더욱 더 밝게 비치고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열매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과 유엔과 선진국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미국이라는 안보그늘은 우리가 안보에 대한 큰 걱정없이 오로지 민주발전과 경제발전에 몰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하며 선진국들의 발전모델은 우리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땅에 자유와 복지에 대한 진보가 이루어지고 결국은 장애자가 국회의원 비례대표 1번으로 선정되는데까지 인도주의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 나는 한국을 이렇게까지 이끌어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들은 우리의 스승이요, 우리의 친구요, 우리의 우방이요, 잘만 사귀면 우리에게 해가 되기보다 엄청난 이익이 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이다. 미국에게 비겁할 필요는 없지만 미국이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데 마다할 이유도 없다. 많은 미국 사람들과 만났지만, 그들은 한국에 대하여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한국이 이룩한 지금의 결과에 대하여 가장 만족해 하는 나라는 유엔도 아니요, 소련도 중국도 아니요, 일본이나 유럽도 아닌 다름아닌 바로 미국이다. 이런 애정관계라고 하는 것은 유지하면 유지할수록 좋은 것이지 버릴 이유가 결코 없다. 만약에 우리가 미국에 대하여 짝사랑을 하고 있다고 누군가 이야기 한다면 나는 진실은 미국이 우리에게 짝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만일 우리가 어떤 나라에 가서 4만 가까이 되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희생해 가며 자유를 지켜주고 그 나라가 독재와 민주의 과정을 겪으면서 홀로서기를 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면 그래서 그 나라에 인권이 보장되고 경제번영이 일어났다면 우리의 애정은 어떨까.
장면 총리가 5·16 혁명당시 미 8군의 수녀원에 들어가 케네디 대통령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케네디는 장면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가 만일 ‘총리실에 복귀해서 미국에 협조를 한다면 나는 그를 총리로 인정하고 그와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얼마나 한국의 내정간섭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다. 미국은 우리의 통제자도 아니요, 압제자도 아니요, 더 더욱 점령군은 아니다. 우리의 일에 간섭할 아무런 의사도 없고 우리 스스로 결정하는데로 인정하고 따라줄 나라이다. 그들이 아쉬워서 우리에게 요청을 하지만 우리가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그들이 우리를 비난할 아무런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이라크도 우리가 도와줘야 하고 또 미국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힘 닿는대로 미국을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정의요, 그것이 우리의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이라크에 민정장관을 임명하라.

셋째, 우리가 이라크에 가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한다.
진정으로 이라크와 이라크의 시민들을 위해서 한국 사회가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는가 하는 차원에서 생각해 봐야 한다. 앞에서 소년소녀 가장의 이야기를 했지만, 소년 소녀 가장이 먹을 것이 없다면 그들에게 먹을 것을 도와줘야 하고 전기시설이나 수도시설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고쳐줘야 한다. 소년소녀 가장이 이웃의 폭력배들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있다면 그들에게 방범대원을 보내서 도와줘야 하고 그들이 공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공부를 가르쳐 줘야 한다. 그들이 필요한 일을 도와주는데 그들이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라크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식량과 의료지원, 치안과 질서유지, 시설복구와 재건, 종파간의 화해조정, 교육과 환경의 개선, 민주정부의 설립문제, 경제토대의 구축 등과 같은 것들이다. 그들이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것은 비교적 명쾌하고 단순하다. 그들은 내정간섭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문제를 그들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이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이라크 내외의 환경을 조성해 달라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라크를 도울 생각이라면 그들의 그런 필요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마땅히 그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원단을 구성해야 하고 그런 지원이 가능하도록 지휘체계를 만들어서 가야한다.
또 우리가 그런 선한 목적을 가지고 이라크에 들어간다는 것을 이라크의 지도자들, 각 종파들과 이라크의 시민들 또 주변에 있는 아랍국들 기타 다른 강대국들에게 설명을 하고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런 목적이라면 우리가 굳이 군의 지휘체계를 가지고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군의 지휘체계는 자칫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고 잘못하면 분쟁에 자동개입될 가능성이 높다. 시설복구와 재건의 문제라면 우리 건설업체들이 가도 되는 것이고 치안과 질서유지의 문제라면 우리 경찰이나 민간 경호원들이 그 일을 해낼 수도 있다. 식량과 의료지원도 우리 시민단체들의 자원봉사와 지원으로 가능할 것이며 경제토대를 구축하는데도 우리 경제전문가들이 도울 수 있을 것이다. 기타 교육이나 민주정부의 설립문제와 같은 분야에서도 우리에게는 전문가들이 넘쳐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군으로 하여금 독자적인 작전과 지휘체제를 유지토록 하기 위하여 이라크에 민간지원단과 파병부대를 통솔할 민정장관의 임명을 제안한다.
우리는 이라크에 전쟁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엄밀히 말해서 미군을 도우러 가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지휘체계는 민간이 중심이 되어서 이라크 지원에 대한 명분을 뚜렷하게 하고 또한 우리 군부대가 한국 국민들의 뜻을 받들어 독립적인 작전과 지휘체계를 유지토록 하라는 것이다.
가는 것은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미국과 협조하지만 가서 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라크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이라크와 협조하라는 것이다. 지원단의 규모는 만명 정도가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재건사업에 참여하는 한국의 기업들과 지원단의 기능과 잘 연계를 하면 단지 지휘체계만을 구성하여 우리의 지원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고 비용문제도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 정책결정자들이 진지하게 이 제안을 검토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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