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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사랑] 독도를 지킨 사람들...
군세광팬  2009-03-06 14:06:16, 조회 : 16,804, 추천 :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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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wnload #2 : 독도를_지킨_안용복.bmp (55.6 KB), Download : 122


* 독도를 지킨 최초의 신라인 '이사부'

독도와 관련하여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인물은 신라인 이사부이다.

그는 내물왕의 4대손으로
지증왕 6년(서기505년) 지금의 삼척인
실질적인 군주가 되었다가
동왕13년 하슬라주(현재의 강릉)의 군주로 있을 때
우산 국을 정복하였다.

당시 우산국은 신라와는 달리 독립적인 부족의 형태를 이루어
바다를 터전으로 살고 있었으므로 성질이 사납고 거칠어
무력으로 이를 굴복시키고자 나무로 허수아비 사자를 만들어서
배에 싣고 우산국 해안에 이른 후
“너희 들이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곧 이 사나운 사자들을 풀어 모조리 밟혀 죽게 하리라.” 하고
위협하였다.

이에 우산국 사람들은 순수히 항복하고
매년 신라에 조공을 바치기로 하였다.
이후 이사부는 진흥왕 2년(서기 541년)
신라의 관직 중 2번째 등급인 이찬이 되었고
이후 국사편찬의 필요성을 왕에게 진언하여
신라인 거칠부로 하여금 국사를 편찬하도록 하였다.

  
*  민간외교로 독도를 지킨 어부 '안용복'

독도와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조선후기에 활약한 민간 외교가 안용복을 꼽을 수 있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울릉도, 독도는 우리땅으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얘기도 있다.

그는 출생지, 출생년도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상민이었지만 단지 자료을 통해 추측하는 정도이다.

일본 돗토리현의 18세기 역사가 오카지마 의「죽도고」라는 사료내에
「오타니가(家) 선인(船人)에 의한 조선인 연행」 이라는
독립된 장에는 안용복의 1차 도항에 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1687년까지 안용복의 거주지인
부산 좌천동과 수정동에는 「두무포왜관」이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우리나라는 일본의 대마도 사람에게만
무역을 허용했으며 동래상인만이 이들과 무역을 할 수 있도록
1609년 부산 두무포에 왜관을 지었다.
(자료 : 왜곡과 콤플랙스의 역사, 자작나무 1998)

여기에서 안용복이 일본말을 배워
일본 관리들과 담판을 할 수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무렵 1614년(광해군 6년) 6월에
대마도주는 조선 동래부에 서계(일종의 외교문서)를 보내면서
"도꾸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분부로 죽도(울릉도) 를
탐견(探見)하려고 하는데 큰 바람을 만날까 두려우니
길 안내를 내어달 라"라고 하였다.(변례집요 울릉도 조).

이에 조선정부는 예조에서
이를 거절 하는 회유문을 주어 돌려보냈다.

이어서 조선조정은 그해 9월에 비변사의 건의에 따라
울릉도가 조선에 속한 사실이
「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고,
또한 도민(島民)을 소환환 기록도 명백하게 있으므로,
앞으로 이런 일본측 의 같은 시도가 있으면,
이러한 모든 내용과 함께 대마도주에게
강경한 내 용의 서계를 주어 막부에 보고하도록 돌려보내고,
울릉도에 일본인의 왕래를 금지하도록 경상감사와 동래부사에게 지시하였다.
(광해군일기. 광해군6년9 월 신해조)
  
1617년 일본의 오타니,무라까와 두 가문은
'죽도(울릉도)도해면허'를 받은 후
약 40년후인 1661년에 '송도(독도)도해면허'를 막부로부터 얻게 된다.

이 '송도(독도)도해면허'를 신청할 무렵인
1660년 9월 5일 자로 오타니 가문이 무라까와 가문에게 보낸 편지에는
"장차 또 내년(1661년)부터 竹島之內松島에 귀하의 배가 건너가게 되면" 이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독도(송도)를 울릉도(죽도)의 부속도서로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이다. (신용하 교수)

1694년(숙종20년)이때에 이르러 영의정 남구만은 1차 회답서를 고쳐서,
"울릉도가 죽도로서 1도 2명임을 명확히 하고,
일본인들이 조선 영토에 들어와
안용복 일행을 데려간 것은 실책"이라고 하였다.

조선과 일본의 논쟁이 계속 되고,
특히 대마도주가 집요하게 울릉도를 탈취하려는 것을 보고,
이즈음 안용복 일행은 직접 일본에 건너가 담판을 짓기로 결심하고
1696년(숙종 22년) 봄에 다시 울릉도로 갔다.

울릉도, 독도에서 다시 일본인을 접한 안용복 일행은
그들을 꾸짖고 일본 어부들을 쫓아 일본 오끼도에 도착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 막부의 외교문서 를 정리해 놓은
'통행일람'에 의하면, 막부에 의해
'울릉도 도해 금지령'이 내려진(1696년 1월 28일) 직후였다.

한편, 당시 안용복 일행은 일본측 문헌(죽도고)에 의하면
배에 '朝鬱 兩島監 稅將臣安同知騎'라는 대형깃발을 달고 있었으며,
'정삼품 당상관'이라는 관직을 안용복이 사칭했던 것으로 미루어,
조선 사절임을 위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오끼도에 도착한 안용복은 스스로를
「울릉.우산 양도의 감세장」이라 칭하고 ,
돗토리번(백기주) 번주와 면담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측 자료 '인부연표 (1696년 6월 4일)'에 의하면
"죽도에 도해한 조선의 배 32척을 대표하는
사선 1척이 백기주에 직소를 위해 들어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안용복은 돗또리번에서 돗또리번(백기주)태수와 면담을 하여
"전날 양도의 일로 서계를 받았음이 명백한데도
대마도주는 서계를 탈취 하고 중간에 위조하여
여러번 차왜(사절)을 보내서 불법으로 횡침하니
내가 장차 관백 (막부)에게 상소하여
죄상을 낱낱이 진술하겠다"고 따 졌다.(숙종실록)

당시 안용복은
「푸른 철릭을 입고 검은 포립을 쓰고 가죽신을 신고 교자를 타고」
번청에 들어갔던 것으로 우리측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1696년 1월,
대마도의 새로운 도주 '종의방'은 신임 인사를 겸하여
강호의 덕천막부 장군에게 입관했다가
백기주 태수 등 4인이 있는 자리에서 관백 으로부터
'竹島一件'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이 자리에서 대마도주는 사실에 근거한 답변을 하게 되고,
덕천막부는 "영구히 일본인이 가서 어채함을 불허 한다"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일본측 문헌, 공문록)

이러한 막부의 결정은 대마도의 '영유권 강탈 야욕'으로 발생한
조선, 일본 간의 울릉도.독도 영유권 논쟁을 종결시키게 되었으며,
막부의 결정은 한편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조선영토임을 확인하고 결정하는
획기적인 문서 로 받아들여진다.(신용하 교수)

안용복의 2차례에 걸친 일본 도해 활동은
조선 태종 이래(1416년) 실시된 왜구들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자 실시한 '울릉도, 독도 공도정책'으로
실질적으로 방치되어 (하지만 조선 조정은 정기적으로 관리를 파견하였다.)
있던 울릉도,독도를 일본의 영토 야욕 으로부터 지켜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일본 최고 권력 기관으로부터 울릉도,
독도가 조선의 영토로 인정받는 획기적 계기를 마련하였다.
  
* 독도를 지킨 33인의 민간조직

6. 25의 혼란 속에서 일본인들은 1953년 3차례에 걸쳐 독도에 상륙하여
1948년 미군 폭격연습 과정에서 희생된 우리 어부의 위령비를 파괴하고,
일본 영토 표지를 하는 등 불법행위를 자행했다.

이에 우리 대한민국 국회는 1953년 7월 독도를 보전할 것을 결의하고
경비대를 상주하도록 하였으며 1954년 8월 15일부터 독도 등대를 점등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1953년 4월에 홍순칠 대장을 비롯한
6. 25참전 경험이 있는 혈기 왕성한 청년 33명이 중심이 되어
순수 민간 조직인 의용 수비대를 결성 하였다.

이들은 울릉 경찰서장으로부터 지원받은
박격포, 중기관총, M1소총 등
빈약한 장비를 갖추고 독도를 지키게 되었다.

이들은 독도에 대한 우리나라의 영유권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독도근해에서 조업 중인 울릉도 주민을 보호하고
독도에 무단 사육한 일본인의 축출 및 일본 영토표지를 철거했으며,
일본 순시선과 여러 차례 총격전도 벌였다.

일본기가 공격해 올 때에는
큰 통나무에 검은 칠을 해 “위장 대포”를 만들어 물리치기도 했다.

1953년 8월15일에는 동도 암벽에 “한국령”이라 새기고
독도 수비의 결의를 새롭게 했다.

이들은 독도에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독도에 대한 일본인의 접근 을 막았으며
1956년 4월 경찰수비대에 수비임무를 인계한 후에도
독도방파제 설치를 정부에 건의하고,
독도지키기와 독도가꾸기 운동을 꾸준하게 벌였다.

이러한 공로로 정부에서는 1996년 4월 故 홍순칠 대장에게는 보국훈장을
나머지 대원에게는 광복장을 수여하여 이들의 독도사랑의 애국심을 기렸다.

독도 의용수비대 활동 내용은,

1952년 1월 18일 : 정부에서 주권선언
1952년 8월 10일 : 2회에 걸쳐 일본측 불법 영토비 설치(즉시 제거)
1953년 4월 20일 : 독도 의용수비대장 조직 경비개시(수비대장 홍순칠)
1953년 6월 24일 :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 귀향 조치
1953년 7월 12일 : 일본 해상 보안청 순시선 발포, 격퇴
1953년 8월 5일 : 대한민국 영토비 건립
1954년 8월 5일 :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총격전 격퇴
1955년 11월 21일 :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 3척, 항공기1대 발포,격퇴
1956년 4월 8일 : 경비임무 전환(민간수비 → 국립경찰)
1966년 4월 12일 : 독도의용수비대장 홍순칠 근무공로훈장 수여

- 독도 의용수비대원 -

홍순칠, 황영문, 김재두, 조상달, 김현수, 김장호, 양봉준, 김용근, 이상국,
김수봉, 허신도, 김영호, 고성달, 김인갑, 구용복, 김병렬, 한상용, 정재덕,
정이관, 안학률, 정현권

* 독도주민등록 1호 국민 '최종덕씨'

독도주민등록 1호 최종덕씨,
인간이 살지 않는 무인도 독도를 그의 숨결이 깃듬으로써
이제 인간의 냄새가 나는 섬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1980년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다시 주장하고 나오자
“단 한명이라도 우리 주민이 독도에 살고 있다는 증거를 남기겠다”며
1981년 10월 울릉읍 도동 산 67번지 서도 벼랑어귀에 주민등록을 옮긴
최종덕씨의 독도 사랑정신은 독도를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 1965년 3월 울릉도 주민으로 도동 어촌계 1종 공동어장 수산물채취를 위해
독도에 들어가 거주하면서 어로 활동
○ 1968년 5월 시설물 건립 착수
○ 1981년 10월 14일 독도를 주소지로 주민등록등재
○ 1987년 9월 23일 사망

최종덕씨는 5년 동안 독도에 거주하면서 서도 선착장의
시멘트 가옥을 비롯해 경사 70도라는 가파른 바위섬에
식수가 나오는 몰골로 가는 시멘트 계단을 설치하는 등
후세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그는 가혹한 자연과 싸웠던 것이다.

그는 수중창고를 마련하고 전복수정법,
특수어망을 개발하여 서도 중간 분지에 물골이라는 샘물을 발굴하는 등
초인적인 노력을 쏟으며 살다 1987년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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