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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탱을 기다리며..
열추적  2008-06-14 23:04:25, 조회 : 8,592, 추천 : 1844

6월이라 그런지 케이블에서 정말 '라이언일병구하기'를 자주 방영합니다. 오늘도 다른 일을 보다가 물끄러미 초반 40분을 봐버렸네요... 지금은 다 정리했지만 예전에 한때 DVD를 죽기살기로 수집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DVD로도 많은 버젼이 있어서(북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DD버젼, DTS버젼, 노르망디상륙작전 60주년 기념버젼, 디지팩버전 등등.. DVD매니아들은 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이미 소장하고 있어도 눈물을 머금고(?) 지갑을 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채널에서 이렇게 자주 방영이 되는데다 5.1ch 이라면 DVD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구... 그렇습니다.(이젠 블루레이디스크로 사십시요....-_-)

영화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면은 초반의 오마하해변 상륙씬입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씬은 영화가 거의 끝나갈 때쯤 나옵니다. 아마 좋아하는 영화 속 명장면들을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부분은 이렇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낸 라이언일병이 전우들을 놔두고 자신만 복귀할 것을 거부하자 레인저대원들은 함깨 남아서 독일군을 막아내기로 결정합니다. 허물어진 시가지 한켠에서 에디뜨 피아프가 흘러나오는 것도 잠시, 육중한 타이거전차 소리가 지축을 뿌리채 흔들기 시작합니다. 레인저대원 거의 전부가 이 전투에서 전사하고 밀러대위는 폭발의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지만 소리가 들리질 않습니다. 정신을 차리자 그 용감하던 라이언 일병이 무릎에 고개를 묻고 울고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바로 옆에 가장 믿었던 노련한 호바스 상사가 눈을 치껴뜬채 차갑게 식어져있습니다. 밀러 대위는 폭발로 날아가 버린 소총 대신 권총을 빼어듭니다. 이미 관통상을 당한 배를 움켜잡고 혼수상태에 빠져들면서 정면에서 다가오는 타이거전차를 향해 권총을 쏘기 시작합니다. 한 발, 두 발, 세 발... 전차에 탑승한 승무원은 그 사실을 알기나 했을까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밀러 대위가 마지막 한 발의 방아쇠를 당겼을 때 타이거 전차가 폭발합니다. 영화 속 밀러 대위도, 영화를 보던 관객들도 눈을 의심합니다. '권총으로 타이거전차를 터뜨려?' 그러나 이내 그 까닭을 알게됩니다. 타이거전차의 치솟는 화염이 가린 하늘 뒤로 지상폭격을 하기 위해 기수를 숙였던 머스탱 전투기가 맹렬하게 솟아오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니 머스탱은 '태양의 제국'에서도 등장했었습니다. 비장하게 날아오르던 제로전투기가 공중에서 폭발해버리면서 주인공 소년은 환각에서 깨어납니다. 그때 머스탱들이 일본군 진영 위를 뒤덮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왜 좋을까요?  전차를 향해 권총을 빼어들고 달려나갈 정도로 무모한 사람은 아닙니다. 밀러대위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때론. 그럴 수 밖에 없는, 다른 방도란 없는 그런 상황도 있는 게 아닐까요?

축구에 스트라이커도 있고 골키퍼도 있듯이, 야구에 투수도 있고 외야수도 있듯이. 인생에는 행복도 있고 불행도 있습니다. 심한 비바람도 있고 순풍도 있습니다. 어릴 때는 모릅니다. 탄탄대로만이 내 앞으로 환하게 열려 있는듯이 생각됩니다. 물론 고난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의 몫이라고 편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다 고난에 직면 하게되면 더 힘들고 더 아프고 그 부당함에 대해 신을 원망하고 자신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게 그렇게 부당하기만 한걸까요?
피쳐도 있고 퍼스트 베이스맨, 세컨베이스맨도 있듯이 우리 인생에는 축복도 있고 슬픔도 있습니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길흉화복이라고 간단히 정리했잖습니까?  또 열심히 싸웠는데 지는 경기도 있고, 영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가볍게 이기는 경기도 있습니다. 그렇듯이 누군가는 행복에 겨워 웃고, 또 누군가는 불행에 눈물짓습니다. 때론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서 고난과 불행에 맞딱드렸을때 비록 상대가 타이거 전차라 할지라도 권총으로라도 싸우겠습니다. 운이 좋다면 머스탱이 나타날지도 모르죠..

인생에 아무런 역경도 없이 인큐베이터 안에 편안히 잠자는 아기처럼, 하는 일마다 순풍에 돛단듯이 일이 잘되기만 한다면, 역경을 피하기만하고 자기만족에 빠져서 그럭저럭 편안하게만 산다면 그 또한 저주받은 인생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인생에 무슨 스토리가 있고 서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역경과 시련은 또다른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먼훗날 미소지으며 회상할 스토리의 서막일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번 미국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보십시요. 월남 정글에서 5년 동안 헐벗고 생사마저 불투명한 포로생활을 하던 당시의 그를 보고 누가 '이사람이 30 년쯤 뒤에 미국 대통령 대선후보가 될 것이다' 라고 상상이나마 할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장면을 우리네 인생에 대한 은유로써 좋아합니다..

시련이 찾아오고 슬픔에 온몸이 빠져 숨쉬기 조차 힘들때, 상대해야될 적이 타이거전차라도 권총을빼들고 한발, 두발..탄창이 빌때까지 응사합니다. 머스탱은 나타날 겁니다. 짧은 인생 경험으로도 저는 머스탱을 만난 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만날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승리하고 또 다른 전선에 투입되겠지요.

It ain't over till it's over

레니 크레비츠의 노래로도 많이 알려진 이 말은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명포수이자 은퇴 후 감독을 지낸 요기 베라의 명언입니다. 맞아요. 끝일때까지 끝은 아닙니다. 나도,당신도.. 행복한 사람도 불행한 사람도...세상의 온갖 권세와 부를 지닌 사람도, 아무 힘없는 실패자도... 끝날 때까지 끝은 아닙니다. 인생은 오묘합니다. 슬프고 아파서 오래 흐느껴 울던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 합니다.

수험생은 입시에 낙방하면 세상이 끝난줄 알고, 샐러리맨은 직장을 잃으면 세상이 끝인줄 알지만 인생은 계속됩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부끄럼 없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이 아파하고 많이 슬퍼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고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길입니다.(저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만) 병사의 고통을 잘 아는 지휘관만이 존경받는 장군이 될 수 있습니다. 의료보험정책에 대해 소극적이던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자신이 암에 걸리자 비로소 의료보험예산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고 합니다. 동성애자 관련법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지녔던 체니부통령은 자신의 딸이 레즈비언인 것을 알고난 이후 비로소 다른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마이클 무어는 그것에 대해 다 당해봐야 안다고 독설에 가까운 말을 하기도 했지만 이는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상처에서 향기가 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어쩌면 신은 인간에게 고통을 통해 선을 지켜나가라고 종용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재가치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적다보니 너무 나아간 것 같습니다. 막연하고 사는데 도움 안 될 이야기처럼 보여도 누구든지 인생의 끝에 다다르면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도 의문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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