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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2011.07] 이 달의 인물 :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선생과의 만남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선생과의 만남



안익태 선생은 평양에서 독실한 기독교 집안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 유독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그 교회에는 미국인 남자 선교사 1명이 있었다. 그 선교사는 바이올린 연주를 곧잘 들려주었다. 소년 안익태(安益泰)는 선교사에게 자기도 바이올린을 열심히 배워 장차 유명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며, 자기에게 바이올린을 좀 가르쳐 달라고 졸라댔다. 그 선교사는 안익태 소년의 열성에 감복, 조용히 자기 방으로 불러 들였다.

“가르쳐 주고 싶지만, 첫째 바이올린을 평양시내에서는 구할 수 없다. 장차 훌륭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면 정규코스를 밟아라. 그 방법은 일본 도쿄음악전문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는 길이다.”

선교사는 그 방법이 최선의 방안인데 아버지가 허락해주겠느냐고 소년 안익태에게 물었다. 소년 안익태는 고민에 빠져 들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서울도 아닌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가서 음악을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과연 아버지가 선뜻 받아들이겠는가? 고민은 깊어갔다.

며칠이 지났다. 소년 안익태는 큰 마음먹고 자기 아버지에게 자기 생각을 털어 놓았다. 아버지는 예상한대로 화를 왈칵 내며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아버지로서는 어린 소년이 혼자 일본까지 건너가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겠다니, 기가 막혔다.

소년 안익태 집은 상점을 하고 있었다. 허탈감에 젖은 소년 안익태는 좋은 방안이 없을까하고 밤잠을 설치며 궁리를 거듭했다. 하루는 중대 결심을 했다.

방안 구석에 있는 손금고에서 평양에서 부산까지 열차표 값과 부산에서 일본(下關)까지 연락선 선비 그리고 도쿄(東京)까지 열차표 값을 대충계산, 필요한 돈을 몰래 금고에서 꺼내 도망치듯 평양역으로 달려갔다.

소년 안익태는 혹시 아버지에게 붙잡힐지 몰라 밤열차에 몸을 실었다. 마음을 굳게 먹었다. 어느새 열차는 부산역에 도착했다. 즉시 부산 1부도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 뱃머리를 찾아 배에 올랐다.

다음날 도쿄에 도착, 바라는 도쿄음악전문학교 정문 앞에 섰다. 자기 학력과 실력으로는 입학이 불가능 할 것으로 생각했다. 자기 학력은 평양보통학교졸업. 되돌아 갈 수는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소년 안익태는 신문배달과 거리 신문팔이로 야간중학교에 진학, 이를 악물고 공부한 끝에 바라던 음악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2년 동안 공부로는 음악가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지도교수가 알려주었다.

공부를 더 하려면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 빈으로 건너가 그곳 음악 대학에서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소년 안익태는 성년이 되었다. 교수의 말대로 즉시 빈으로가 음대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를 계속했다. 그 결과 세계 일류 작곡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결국 우리의 애국가까지 작곡하게 되었다. 

필자는 애국가를 들을 때마다 안익태 선생의 열정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그와 만남은 오래다. 1965년께다. 부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오태균(吳泰均) 선생의 특별 초청으로 객원지휘자로 연주회를 갖기 위해 부산에 왔을 때다.

안익태 선생은 제2차대전 발발전 조국을 떠났다가 그 무렵 처음으로 서울에 왔다. 필자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방송 부산 MBC 기자로 인터뷰 목적으로 안익태 선생을 부산 중구 대청동 KBS 부산 방송국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때가 가을이었다. 먼저 안익태 선생은 말하기를 한국의 가을 하늘만큼 푸르고 깨끗한 날씨를 가진 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어릴 때와는 달리 지금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며 굳이 외국으로 나갈 필요가 있겠는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부산시향에 대해서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비약적인 연주 실력을 보여주었다며 상임지휘자 오태균 선생의 열정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부산시향 홍일점 바이올리니스트 이숙자씨에 대해서도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당시 여성들 중에는 피아니스트는 간혹 볼 수 있었지만, 바이올리니스트는 매우 드물었다. 다른 악기에 비해 바이올린은 배우기가 어렵다는 선입감 때문이었다. 부산시향은 1960년 초 김현옥(金玄玉) 부산시장 당시 창단되었다. 김 시장은 부임하자마자 바다와 항구, 화물선과 부두, 어선과 수산시장만 보여주는 삭막한 도시 이미지를 문화예술도시로 발전시킨다는 목표로 먼저 격조 높은 부산 심포니를 선보인 데서다.

지금 생각하면 김 시장은 선견지명이 있었다는 평판이 우세하다. 그는 어떻든 부산을 문화도시로 이미지를 바꾼 선구자였던 셈이다. 나라든 개인이든 어려운 처지 더욱 역경을 탈출하기는 쉽지 않다. 대개는 자탄만하다가 작심삼일로 좌절을 맛보게 된다. 기회는 한 번 뿐이다. 안익태 선생이 세계적인 음악가로 이름을 날린 것은 기회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정면 돌파한 데서였다.

물론 그의 인생역정도 파란만장했다. 굳은 결심이 없었다면 밤중에 평양발 부산행 열차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오스트리아 빈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촌부처럼 처지만 한탄하다가 잡초와 같은 삶으로 마감해서리라.

기회는 저절로 굴러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만들어야 하며, 놓치지 말아야 한다. 현명한 자만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말도 있듯이. 물론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소위 인맥, 배경만으로는 부족하다.

안익태 선생은 결코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지 않았다. 의지가 남다르고 기회와 시기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학업을 마쳤다. 길거리에서 뻥튀기 장사도 해보았다. 맨 밑바닥 생활을 겪었던 불사조였다고 할 수 있다. 옛말대로 고생 끝에 성공한 셈이다.


1930년대 초 일본 수상을 두 번이나 지낸 와카쯔키 레이지로우(若槻禮次郞)도 산골 빈민 출신이었다. 나무꾼으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자기 아버지로부터 도쿄까지 가는 몇 푼의 노자를 얻어 낯선 도시로 무작정 찾아갔다. 며칠씩 걸었다. 강이 나타나면 돈을 아끼기 위해 나룻배를 타지 않고 걸어서 돌아갔다. 그도 이를 악물고 야학을 다니며 공부한 끝에 성공, 수상이란 월계관을 쓸 수 있었다고 회고록(古風庵回顧錄)에 인생역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태평양전쟁 시 일본함대 사령관 야마모도 이소로쿠(山本五十六·원수) 역시 나가오카(長岡)란 소도시 중학을 나와 장래가 막막했다. 천신만고 끝에 해군병학교(사관학교)에 입교, 그때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남방 전선 시찰 중 전용기가 격추당해 바다의 고기밥이 되기는 했지만.

인종 구별 없이 입신출세 등 성공한 사람의 공통점은 의지가 보통사람보다 강한 편이다. 시기와 기회를 잘 포착 전력투구 하게되면 기어이 관철하게 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 새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놀기만 좋아하고 안일만 추구한다면 남는 것은 없다. 시간낭비다. 안익태 선생은 시간을 소중히 사용했기 때문이다.


글ㅣ김능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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