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MA:::21세기군사연구소-월간KDR
:::KRIMA:::::21세기군사연구소
무제 문서

공지사항

웹사이트개편작업중입니다..
 

Update News..

[사이트] 새로운메뉴가 추가됩니다
다양한 멀티미디어, 인터뷰, 리뷰, 기고문,행사안내 등의 컨텐츠가 신설된 메뉴를 통해 제공될 예정입니다.
김진욱의 눈
 백년전우 김진욱 편
 사회복무제도의 효율적 운영방안
 제5회 한-중 안보포럼
 Join Us ..

 

 

NOTICE
월간 Korea Defense Review (KDR)의 최근 1년간 게시판입니다.
온라인상에서는 비공개입니다.
KDR 구독방법을 보시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Total 43articles, Now page is 1 / 2pages
View Article     
Name   military
Subject   [2011.05] 카다피 지켜보고 있는 김정일, 북핵 포기 할까?

카다피 지켜보고 있는 김정일, 북핵 포기 할까?



1981년과 1986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은 리비아를 폭격한 적이 있다.

미국과 리비아는 적대적 관계였다. 그러다 2003년 12월 리비아의 카다피가

핵무기 포기 선언을 한 이후 리비아는 미국과 관계 개선을 했다.

그리고 7년 2개월여만에 서방사회는 리비아에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북한은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이집트발 민주화 시위가 중동시민혁명으로 확산되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이 리비아로 집중되고 있다. 리비아가 중동지역국가 중 민주화의 열기가 더 뜨거워서가 아니다. 1인 독재체제를 40년 이상 유지하며 핵무기 보유에 집착했던 카다피가 핵무기를 포기한 이후 미국을 포함한 나토군으로부터 군사적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군사작전 외에도 미국을 포함한 나토군은 카다피 축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

리비아가 핵무기를 포기하여 방어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쉽게 무력을 이용할 수 있었고 그래서 ‘국민보호책임’은 순전히 명분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서방 국가들로 구성된 나토군이 진심으로 리비아 국민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군사적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에 리비아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나토군은 리비아 상공에 첨단무기체계들을 투입하고 있다. 나토군이 이런 군사작전을 할 수 있었던 명분은 바로 ‘국민보호책임’이다. 국민보호책임이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면 국제사회가 지켜준다’는 것으로 2005년 제60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개념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자국의 국민들을 괴롭힐 경우 국제사회가 나서서 그 나라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공동책임을 진다는 논리이다. UN에서 채택된 이후 리비아 사태에 처음으로 적용되고 있다.

이 논리가 4년~5년 임기 대통령제 국가에 적용될 가능성은 적지만 독재체제 지도자가 군림하고 있는 국가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리비아가 그 1순위가 된 것이다. 북한인권문제가 오래 전부터 국제적 화두였던 만큼 북한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가 없는 대상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현재 하루 이틀 동안에 수백 명의 사상자가 속출하는 시리아와 예멘도 군사적 개입의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다.

리비아는 미국과의 물밑협상으로 핵무기까지 포기했던 나라이다.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시리아와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평화교섭 재개 환경을 조성하는 등 호의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는 중동지역의 유혈사태가 자행되고 있는 국가들 중 유엔이 채택한 ‘국민보호책임’ 개념을 리비아 카다피에게 우선 촉구하고 적용하고 있다.

현재 미국을 포함한 나토군의 의사결정이 시리아와 리비아에 다르게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여러 사례 속에서 살펴볼 수 있다. 미 상원위원회 대표주자인 존 매케인(공화당) 의원은 “시리아에 대한 서방의 군사개입이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반면에 미 행정부의 제이 카니 대변인은 “리비아의 경우 국토의 상당 부분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있고,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자국민을 상대로 체계적이고 잔혹한 군사공격을 감행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나토군은 리비아 외에 시리아, 예멘 등의 반정부 시위참가자들이 정부군의 유혈 진압과정 중에 수 백 명씩 사상자가 발생하는데도 “개탄스러운 일”라고 규탄만 할 뿐 아직 군사작전은 하지 않고 있다.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은 국제사회의 합의와 아랍연맹의 지지를 토대로 이뤄졌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리비아 군사적 공격에는 잘못된 점이 없다고 정당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국과 나토군이 제시한 리비아 군사 개입의 이유가 일관성이 없고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주장이 있다. 서방 국가들은 납득할만한 설명을 세계인들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다. 사실 국제정치의 역사를 비추어 볼 때 군사작전 감행에 대한 원인과 목적이 뚜렷했던 적은 없었다. 이번 리비아 군사작전도 결국 서방국가들이 제시한 명분을 제외하면 추정과 추측으로만 끝날 전망이다.


카다피의 핵무기 포기 선언 이후


2003년 12월 19일,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자유의지에 따라 생화학무기와 핵무기, 장거리 미사일 개발계획 포기와 함께 국제 무기사찰을 받아들인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완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격적인 핵무기 포기 선언은 그냥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과 영국의 2년 여간의 끈질긴 물밑협상의 결과였다.

핵무기 포기에 대해 잘 알려진 배경은 경제제재의 압박이었다. 이는 1988년에 있었던 일명 ‘로커비 사건’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커비 사건은 팬암 소속 보잉 747기가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폭발하여 270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었다. 리비아의 전직 법무장관에 의해 이 사건을 카다피가 직접 지시했다는 것이 폭로되었고 이후 리비아는 경제제재를 지속적으로 받았다. 이를 견디지 못한 카다피가 선택한 것이 바로 ‘핵무기 포기’ 선언이었다.

카다피는 핵무기 포기 선언 이후 핵관련 구체적 자료 제시는 물론 원자로와 미사일 개발시설까지도 공개했다. 그 뿐만 아니라 당시 리비아 핵시설 감시를 위해  방문한 미국 중앙정보국 관리들과 영국측 고위급들을 위해서 자신이 직접 차를 몰고 무기개발 현장으로 안내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영국의 블레어 수상은 카다피의 행동을 보고 그의 진정성을 믿게 되었다. 그도 그렇듯이 카다피의 적극적인 비밀무기공개는 당시 국제사회의 많은 무기전문가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당시 세계 언론들은 30년 동안이나 1인 독재체제를 유지해온 카다피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50년 독재체제를 이어오고 있는 북한 김정일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희망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었다.


리비아 선언 이후 북한의 반응


획기적인 변혁을 일으킨 리비아는 선언 이후에도 미국과 협상을 지속했다. 결국 미국이 2006년 5월 15일 리비아와 26년 만에 외교 관계를 전면 복원하고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였다. 미국은 “앞으로 리비아처럼 대량살상무기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나라들과는 관계개선을 하겠다”고 강조하면서 북한, 이란 등이 리비아를 본받을 것을 촉구하였다. ‘리비아식 해법’은 서방세계에 강한 확신을 던져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리비아와 미국 관계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는 북한이나 이란 지도자들이 정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느냐는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은 2004년 8월 한국을 방문하여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면담을 하면서 “먼저 핵을 포기하면 북한은 얼마나 많은 일이 가능한지 보고 놀랄 것”이라면서 북한에게 눈 딱 감고 미국을 한 번 믿어보라는 메시지를 전했었다. 당시 라이스 전 장관은 ‘리비아식 해법’의 유용성을 강조하면서 북한을 향해 “리비아 방식을 따르라”고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를 통해서 “북한은 이미 핵 억지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리비아식 방안을 따를 이유가 없다”고 입장 표명을 하였고 미국을 포함한 리비아식 해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조언을 일축해 버렸다. 더불어 “큰 나라인 미국이 작은 나라인 우리를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먼저 미국을 믿겠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또 “미국과 영국은 조용한 외교를 통해 리비아와 협상을 벌였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미국과 어떤 형태의 협상도 없었다”며 미국과 북한 간에 정상적인 관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북한과 리비아는 경우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때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인 케네스 퀴노네스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은 “북한은 리비아처럼 석유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리비아식 해법을 적용하는데 기초적 명분이 부족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또 “북한에는 미국이 리비아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할 것이며, 특히 이 과정에서 북미 양자회담을 병행해야하기 때문에 북한이 리비아처럼 포기 선언을 하게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카다피의 핵무기 포기 선언 때만 해도 북한은 일괄타결과 북미회담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리비아처럼 핵을 포기한다면 더 좋은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북한이 내놓은 반응은 미국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카다피의 선언이

김정일에게 전이되기를 기다렸지만


카다피의 핵무기 포기 선언 이후 몇 일 뒤인 12월 23일 북한은 김정일 최고사령관 추대 12돌(1991. 12. 24) 경축 중앙보고대회를 개최하였다. 카다피의 전격적인 핵무기 포기 선언 이후 맞이하는 북한의 대형 행사였기 때문에 북한의 행동이 어떻게 나올지 국제적 관심이 쏠렸다. 당시 북한이 중앙TV를 통해서 밝힌 주요 보고 내용은 김정일을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한 이후 김정일의 위업에 대한 회고 찬양과 선군사상, 수령결사옹위를 결사 관철시켜 국방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었다. 또한 전쟁억제력을 강화해나가 총대는 대포로, 강경에는 초강경으로 맞설 것을 재확인하는 수준으로 이전과 다른 특별한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었다면 카다피의 획기적인 행동변화를 염두에 둔 것인지 오히려 핵을 ‘전쟁억제력 강화’ 명분으로 내세워 외부로부터 강경한 대응을 받을 때는 초강경으로 대응하겠다는 주장을 내세웠다는 점이다. 경축 행사를 통해 카다피의 핵무기 포기 이후 북한의 새로운 제안이나 특이한 발언, 조치 등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북한은 리비아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고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찬양 일색으로 행사를 진행하였다. 이것은 같은 해 9월 9일 정권 창건 55돌 열병식에서 핵문제에 대해 ‘핵 억제력 강화’라는 측면만 내세웠던 것보다 한층 강해진 목소리였다.

2004년 신년공동사설에서도 리비아에 대한 언급없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항하여 승리한 것은 김정일 선군사상과 선군영도의 성과라고 밝혔다. 아울러 정치·사회적 내부결속 이완 방지를 위해 당 사상교양 사업에 역점 둘 것도 지시했다.


카다피를 통해 김정일이 얻은 교훈?


2003년 카다피 선언 당시 부시 대통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포기 선언이 북한에도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블레어 수상도 “리비아가 스커드 미사일 개발에 있어 북한의 도움을 받았다”면서 대북한 압박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세계여론은 리비아 카다피가 핵무기 포기 선언을 한 것은 미국의 ‘부시 독트린’과 더불어 경제제재와 고립작전을 강화시켜 리비아의 포기를 유도한 ‘리비아식 해법’이었다고 평가하고 미국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면서 고무적 반응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북한도 곧 손을 들고 나올 가능성을 점쳤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내부단속을 위한 사상교육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 북한이 내부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알 수는 없으나 최근에 리비아 군사개입 사건 이후에 북한이 지금까지 감춰왔던 속내를 드러냈다. 리비아가 군사공격을 받은 이후에야 북한이 정확한 입장표명을 한 것이다. 북한은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란 바로 ‘안전담보’와 ‘관계개선’이라는 사탕발림으로 상대를 얼려 넘겨 무장해제를 성사시킨 다음 군사적으로 덮치는 침략방식이라는 것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이미 리비아 선언 이후 군사개입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장차 북한에게 ‘先 포기 後 지원’이라는 제안의 설득력은 더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장기적으로 6자회담에도 영향을 줄 것이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당사국들의 노력이 더욱 쇼맨십의 행태로 전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리비아전이 남긴 미국의 딜레마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조치는 없을 것이라는 미국의 의도가 여러 측면에서 밝혀졌지만 실제 리비아 못지않게 국내환경이 불안정한 중동국가들에 대해 미국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시리아의 지정학적 특성으로 볼 때, 미군과 나토군의 군사조치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시리아는 2004년 이후 테러지원에 대한 제재조치로서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형편이라 추가 제재 역시 의미가 없을 것이다.

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미국과 나토군은 군사개입으로 다른 나라에 민주주의를 이룬다는 것에 자신감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 이득, 정치적 패권 간에 딜레마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북한 김정일은 리비아의 카다피가 핵무기 포기 선언을 한 이후 리비아와 카다피의 모습들을 철저히 분석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최근 “리비아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군사적 공격을 받았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답변을 준비해야할 것이다. 그래야만 김정일과 대화가 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본다.


이제 북핵 포기 가능성은 물 건너갔다?


얼마전 북한이 밝힌 입장표명을 볼 때, 이미 카다피의 2003년 선언 때부터 김정일은 리비아의 미래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지켜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에 김정일이 카다피의 현재 모습은 물론, 앞으로 겪게 될 모습까지도 비관적으로 판단한다면 장차 6자회담에서 미국의 어떤 회유책에도 핵 포기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개발을 시도해 온 수 십 년간 각종 험난한 제재조치를 당하면서 스스로 포기 유혹을 느낀 적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2003년 말 카다피 선언 이후 리비아와 미국간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교류가 오가는 것을 보고 김정일은 갈등을 겪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김정일에게 더 이상의 고민과 갈등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북한 김정일은 이번에 리비아가 군사공격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핵을 포기할 경우 결국 그렇게 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핵개발 및 보유에 대해 집착하게 될 것이다. 현재는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국민보호책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리비아에 군사작전을 감행함으로써 주도적 이득을 얻는 것 같지만, 북한 문제가 국제적으로 불거질 경우 미국은 이로 인해 더 큰 기회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 리비아의 국교 정상화 과정을 보면 ‘국제 관계에 영원한 적과 동지는 없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이 말은 곧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 미국과 북한이 현재는 적대적 관계를 갖고 있지만, 변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북한은 리비아 사태를 통해 확실한 교훈을 얻었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무슨 교훈을 어떻게 가져야 할 지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때이다.


글ㅣ박계향 (winwinhappy@hanmir.com)





No
Subject
Name
Date
   [2011.05] 카다피 지켜보고 있는 김정일, 북핵 포기 할까? military 2009/10/18
42    [2011.05] “적극적 억제”, 선제타격을 위한 과감성과 능력이 필수 military 2009/10/18
41    [2011.05] 세계의 특수부대 전격비교 military 2009/09/10
40    [2011.05] 군 상부구조 개편 논란. 해법은 없는가? - ‘선(先) 3군균형 보장, 후(後) 집중’이 필요하다 - military 2009/09/10
39    [2011.05] 상부군지휘구조, 무엇을 왜 고민해야 하나 military 2009/11/12
38    [2011.05] 한국군 상부군지휘구조 혁신대책 - 김관진 국방장관의 기자회견을 보고 - military 2009/12/04
37    [2011.05] 해군참모총장 김성찬 대장 military 2009/12/06
36    [2011.05] 천안함 안보견학을 다녀와서 military 2009/12/04
35    [2011.05] 이순신의 직급 호칭은 제독과 장군 중 어느 것이 더 합당한가? military 2009/12/06
34    [2011.05] 광화문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패장 모습? military 2009/12/04
33    [2011.05]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병역신검을 위한 고려사항 military 2009/12/06
32    [2011.05] 영국 왕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의무인가? 생존전략인가 military 2009/12/04
31    [2011.05] 이달의 시 : 그리움 강물이 되어 military 2009/12/06
30    [2011.05] 전쟁스토리 : 맥아더 원수의 회상록 <정복자의 발자취> military 2009/12/04
29    [2011.06] 발행인의 메시지 : 대외정책, 연속성이 있어야 military 2009/12/06
28    [2011.06] 쉼터 : 6월이 오면 military 2009/12/04
27    [2011.06] 호질 33 : 통일은 만들어 나가야 다가온다 military 2009/12/06
26    [2011.06] 6.25전쟁 61주년 특집 : 한미연합 전투모의의 현재와 미래 military 2009/12/04
25    [2011.06] 국방뉴스 : K-9으로 연평도 사수, 정확한 명령만 있다면 military 2009/12/06
24    [2011.06] 장한 군인상 : 처음으로 태권도 종주국에서 배출된 세계군인태권도연맹 총재 임성섭 military 2012/04/10
23    [2011.06] 이달의 인물 : 문무를 겸비한 최기출 제독과의 만남 military 2012/04/10
22    [2011.06] 정책진단 : 파병용은 군수용, 국내 야전용은 민수용? military 2012/04/10
1 [2] Next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lifesay



무제 문서


21세기 군사연구소 / 월간 군사세계 KDR
Korea Research Institute of Military Affairs / Korea Defense Review
Copyright (C) 1995~2013 All Rights Reserved T : 842-3105~7 / F : 842-3108 / Contact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