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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2011.05] 전쟁스토리 : 맥아더 원수의 회상록 <정복자의 발자취>

전쟁스토리


맥아더 원수의 회상록 (5)

<정복자의 발자취>



글ㅣ 김능화 (논설위원·전기작가)



인간 맥아더


지금껏 맥아더에 대한 스토리는 전쟁과 전공에 따른 평가에 너무 치중해온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방향을 잠시 멈추고 ‘인간 맥아더’에 관해 먼저 되돌아보기로 한다.

맥아더는 군인으로 일생을 살다가 84세로 1964년 세상을 떠나갔다. 그는 1914년 세계 1차 대전 때부터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두 번이나 부상을 당했다. 2차 대전 때는 주로 남방전선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작전을 지휘했던 전쟁영웅이었다.

그의 아버지도 일찍 육군 장교로 남북전쟁 때 북군에 가담, 줄곧 전선을 누볐다. 계급도 중장까지 오르는 등 군인으로 일생을 마쳤다. 또한 맥아더는 육사에 톱으로 입학, 톱으로 졸업한 기록을 남겼다.

그의 군인생활, 작전계획, 지휘능력 등은 군신(軍神)에 가까웠을 정도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만큼 세계전쟁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단지 한 가지 흠을 들추어낸다면 결혼을 3번이나 한 점이다. 가정이 원만치 못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잘 극복, 지휘관 생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전한다.

인간평가는 그런 개인생활문제로 편향적인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주관적이요 다분히 배타적인 시각에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다. 좋은 점, 사회적인 공이 많으면 과오는 관대하게 묻어주려는 아량이 필요하다. 인간의 정의이기도 하다.

특히 맥아더는 필리핀에서 오랜 기간 체재했지만,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한국전 때 그가 독자적으로 결정, 단행한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매우 어려운 국면을 맞이했을 것이다.

오늘의 발전된 한국이 있게 된 것도 맥아더의 공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맥아더는 한마디로 한국의 은인이었다. 한국인이라면 그의 은공을 잊지 말아야 하고, 늘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천의 한 공원에 서 있는 맥아더 동상 앞에서 섰을 때 머리가 저절로 숙어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를 현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별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맥아더는 자기를 들어내기를 싫어했다. 맡겨진 임무에만 충실했다.

항상 승리를 위해 작전에 몰두하며 고뇌에 찬 모습을 보여 주었다고 옛 참모들은 전했다. 맥아더는 일본과도 인연이 깊다. 1945년 8월 일본항복 후 점령군 사령관으로 결코 군림하지는 않았다. 오직 패전 일본을 재건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특히 한 가지는 태평양전쟁을 주도했던 일본군국주의 세력을 끝까지 추적 해체해 버렸다.

그렇게 해 일본을 민주국가로 또는 경제대국으로 거듭나도록 적극 도와주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급속도로 번영의 길로 나섰던 것은 그의 숨은 공도 크다. 물론 비판 받아야 했던 문제도 있었다. A급 전범 총책 일왕 쇼와(昭和·裕仁)를 특별히 면죄시켜준 점이다. 왜 그렇게 처리했는지, 여전히 수수께끼다.

맥아더는 6.25때 한반도 적화기도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 ‘북폭’을 주장하다가 3차대전을 우려한 트루먼 대통령에게 불려가 돌연 해임되었다. 그에게는 영광도 많았지만, 잠시 불운도 없지 않았으며, 한편으로 신의 가호가 늘 함께 했다는 평가다.


항복사절단, 마닐라 도착


스즈키 수상(鈴木貫太郞)이 이끌어온 일본 내각은 연합국측 무조건 항복 요구를 수락, 동시에 총사퇴했다. 일왕 쇼와(昭和·裕仁)는 즉각 왕족출신 육군 대장인 히가시쿠니(東久邇稔彦)에게 조각을 위촉, 정부를 존속시켰다.

히가시쿠니 내각이 첫 번째로 할 일은 연합군 최고사령관에 임명된 맥아더 원수의 지시에 따르는 일이었다. 맥아더가 외국 각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 항복을 조기 실천하라는 명령을 성실히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에 따라 일본 정부는 고위 군수뇌들로 구성된 항복사절단을 긴급 파견, 마닐라로 향했다. 1945년 8월 19일 육군참모차장 가와베(河邊虎四郞·중장)를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이 찌바현(千葉縣)에 위치한 해군기지에서 항공기에 분승, 마닐라로 향했다.

비행전 그 비행기에는 맥아더의 지시로 도색을 흰색으로 바꾸고, 바깥에는 녹색 십자를 표시했다. 그 녹십자기는 오끼나와(沖繩) 이에지마(伊江島)에 도착하자마자 미군 C54수송기로 교체했다.

다시 미 수송기는 그날 저녁 무렵 마닐라 교외 니코루스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주변에는 일본 정부 항복사절단을 보기위해 수천 명의 연합군 병사들과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일행은 통역관 시드니·마슈바 대령과 미군 마닐라 주둔 정보부장 찰즈·A·위로비 소장의 안내로 마닐라 중심가에 위치한 미군사령부로 향했다.

마닐라 시민들은 연도에 늘어서 일본항복사절단이 탄 차가 지나가자 일본말로 ‘바가야로(바보 같은 놈)’라고 소리쳤다. 돌까지 마구 던졌다. 마닐라 시청에 자리 잡은 미 극동군사령부 회의실 양측에 미·일 대표가 마주 앉았다. 맥아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역은 회의장에 나오지 않았다. 일본군 대표의 권총과 군도(軍刀)는 회의장 입구에 영치되었다. 가와베 일본 대표는 맥아더 참모장 서덜랜드 중장의 정면에 자리했다. 서덜랜드 장군은 곧 바로 일반명령 제1호를 낭독했다. 주요 내용은 해외에 주둔중인 일본군의 항복상태와 일본 해군함대 함정동향, 항공기수와 동향, 항공대기지 동향, 군수품, 탄약고 소재지 등을 정확히 밝히도록 요구했다.

회의는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속개되었다. 그밖에 미군 점령군 제1진이 1945년 8월 26일 일본 본토 해군기지(厚木 비행장)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회의가 끝나자 일본항복사절단은 즉시 타고 온 항공편으로 도쿄에 되돌아왔다.


맥아더를 둘러싼 연합국 신경전


맥아더가 주재하고 있는 마닐라로 연합국 대표단이 속속 모여들었다. 일본 도쿄 요코하마만에서 얼마 후 있게 될 미 해군 전함 미즈리함상 일본군 항복식에 참가하기 위해 전 먼저 연합군 최고사령관에게 인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실제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다. 일본군 항복 후 일어날지도 모를 여러 사태에 대한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해득실을 저울질하며 상대방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연합군 중 일본 땅에 먼저 발을 디딘 나라는 뒤늦게 대일선전포고를 행사한 소련군 대표였다. 앞서 소련 수상 스탈린은 연합군 최고사령관에 맥아더와 함께 소련 와시레프스키 원수를 임명할 것을 미국측에 제안했으나, 미국이 즉각 거부했다.

다음으로 소련은 홋카이도(北海道) 북쪽 지역 분할 점령을 미국에 요구했다. 그 문제 역시 미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즉시 거부되었다. 소련에 이어 여타 연합국들도 일본점령에 따른 갖가지 요구를 많이 했다. 일본점령에 따른 연합국의 생각은 동상이몽이었다. 각국별로 분할점령하자는 요구가 계속 빗발쳤다. 매주 열리는 극동위원회에서도 그 문제와 곧 시작될 전범 검거와 재판에 따른 군법회의 규칙, 전범 해당자 범위 등 문제로 의견이 백출했다.

하지만 맥아더는 본국 정부의 지시와 자기 기본 방침대로 일본 점령 정책을 펴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일본점령군 제1진 미 제8군으로


맥아더는 일본점령군 제1진으로 로버트·L·아이켈버거 중장이 이끄는 미 제8군을 지명과 동시에 자기 직속 참모들도 동행토록 명령했다. 아이켈버거 장군은 깜짝 놀랐다. 이틀간의 여유를 달라고 요청했다. 이유는 보잘 것 없는 호위부대만으로 적지에 상륙한다는 것은 진주군으로서 위험 부담이 크다는데서였다. 하지만 맥아더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이켈버거 장군은 부득이 이미 일본 오끼나와(沖繩)에 진주해 있는 제11공수단과 제27보병사단을 일본 진주 선발대로 결정, 부대 이동에 필요한 C54 수송기 300대를 먼저 준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미군이 진주하기로 결정한 그 날에 하필 일본 전역이 태풍으로 휩싸였다. 항공기 이착륙이 불가능했다. 일본인들 중에는 한 때의 적인 미군 진주를 막기 위해 가미가제(神風·일본을 보호하는 신의 바람)가 불게 되었다고 자위했다.

미군으로서는 태풍 덕으로 오히려 준비하는데 여유가 생겼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일본 점령군 제1진은 이틀간이나 늦은 1945년 8월 28일 아침 일찍 펄즈 대령을 일선 지휘관으로 한 선발대가 도쿄 신나가와(神捺川縣) 인근 아츠키(厚木) 비행장에 도착, 본대 주둔지 건물 등을 물색했다.

한편으로 맥아더의 참모들은 그해 8월 29일 마닐라에서 C54 수송기편으로 일본 오끼나와 요미다니(讀谷) 비행장에 도착, 다음날 아이켈바가 장군이 이끄는 본대를 뒤따라 도쿄 아츠기 비행장으로 향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좋아 상공에 도착 2분 간격으로 착륙했다. 비행장에는 미군기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다시 뒤이어 맥아더 점령군 최고사령관 전용기가 삼엄한 경비 속에 도착, 공항은 돌연 긴장된 분위기로 변했다.

맥아더 원수는 그의 심볼인 ‘큰 파이프’를 입에 물고 담배 연기를 휘날리며 무거운 발길을 적국 땅에 내려놓았다. 그의 얼굴 표정도 꽤 긴장돼 보였다. 그의 모습은 마치 헐리우드 명배우가 극적인 장면에 출연, 맡은 역을 연기하는 것 같았다.

훗날 영국수상 처칠은 말하기를 “당시 맥아더가 보여준 태도는 시종일관 차분했으며, 전쟁이 끝났을 때 어떤 지휘관의 행동보다 걸출한 모습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맥아더가 트랩에서 내려 일본 땅을 밟자마자 가장 먼저 미 점령군 제1진 선발대와 함께 와 있는 아이켈버거 장군이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맥아더는 첫 소감으로 “아이켈버거 장군! 호주 멜버른에서 도쿄까지는 너무 먼 길일세. 이제 이번 길로 전쟁은 영원히 막을 내리게 되기를…” 도쿄시민들의 반응도 “왕의 명령으로 일본이 항복한 만큼 군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주저 없이 했다.

그날은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었으며, 맥아더에 의해 본격 점령정책이 시작되었다. 폐허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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