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증강만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극복하는 길이다



박 만 해 군사평론가



약육강식의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국익을 도모하고


강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군비통제 분야도


군비증강 만큼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동구권의 자유.민주화, 독일의 재통일, 그리고 공산주의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의 와해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변화를 거쳐 오늘날 우리는 탈냉전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념대립에 입각한 미.소 중심의 양극적 군사 대립구조가
탈냉전 시대라는 새로운 세계질서로 대체됨으로써 우리는 세계 대전과 인류 공멸의
공포로부터는 해방되었지만, 그 대신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분규와 영토분쟁,
지역국가간 군비경쟁 등으로 인하여 과거 어느때보다도 복잡하고 다원적인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특히 아직도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는 한반도 내외의 안보환경은 세계의 어느곳
보다도 복잡하고 불투명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미·일·중·러 4국은 세계 4대 군비지출국가로서 특히 일본과 중국은 질적.양적을오
군비를 꾸준히 증강하고 있으며, 남북한은 국가 존망의 차원에서 상호 경쟁적으로
군비경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등, 동북아 주요 국가들은 유럽의 군비축소 움직임과는
대조적으로 군비지출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군비증강 움직임에 더하여 지역 안보환경을 더욱 불안정하게 하고 있는
것은 역내의 주요 행위자라고 할 수 있는 한반도 주변의 4국간 관계변화이다. 미국은
역내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한편 군사적 역할은 우방과 분담하려 하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은 패권주의 정책을 추구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고, 러시아는 개혁작업의
부진에 따라 자칫 보수 회귀의 위험성을 안고 있는 가운데, 중국내 인권문제, 미·일간
무역마찰, 대만문제, 체첸사태, 센카쿠 열도분쟁 등으로 인해 협력과 견제의 이중
구조가 형성되고 있어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다.


이들 국가와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바,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한 중국의 이중적 대한반도 정책, 한·미간 대북정책의 혼선·마찰, 독도
문제 등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와 같은 불안정한 안보환경 속에서 북한은
가중되는 내외의 어려움에 직면하여 체제 유지를 위해 필사의 안간힘을 다하고 있따는
점을 고려한다면, 최근 북한의 핵문제와 잠수함 침투사건 등에서 보듯이 한반도는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북한'이라는 시한폭탄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겠으며, 이런 의미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지역은 역내 국가간 신뢰구축을
포함한 실질적 군비통제가 가장 절실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이러한 갈등과 불안정 요소가 세계의 그 어느 곳보다도
많은 동북아 지역에는 역내 국가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안보협력기구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주로 쌍무관계에 의지하여 갈등·마찰에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문제의 억제에 지나지 않을 뿐,
갈등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가 없으며, 더구나 정치·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내 국가간의 복합적인 쌍무관계는 분쟁의 예방 및 해결에 있어서 정치·이념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던 과거 냉전시대의 쌍무관계에 비해 효용성이 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정부에서도 이러한 역내 안보환경의 불안정성 극복 및 지역 평화정착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으로 NEASED(Northeast Asia Security Dialogue, 동북아 다자
안보대화)의 창설을 역내 국가들에게 제안하는 등 효과적인 군비통제 활동을 모색하는
데 많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본격적인 군비통제 시대에 들어섰다. 군비통제가 국가의 존망과도
직결되는 상황이 되었다. 어떤 국제 군비통제활동은 우리의 실득을 떠나 참여하지
않으면 곤란한 지경으로 이미 가까이 다가온 것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군비통제는 ‘최소의 안보 비용으로
최대의 안보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전략 대안으로서, 군비증강을 통한 억제전략과
더불어 국가대전략의 또다른 하나의 축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군비증강에만 익숙해져 온 우리에게는 군비통제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뿐 아니라
심지어 군비통제 운운이 시기상조이며 우리와는 무관한 것이라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실정이다. 정부 차원에서 군비통제분야를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는 기구를
창설한 것도 불과 몇년 되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의 인식을 새로이 해야할 때가 왔다. 약육강식의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국익을 도모하고 강자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군비통제 분야도 군비증강
만큼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군비통제업무 종사자들의 각고의 고군분투도
지금과 같은 국민 대다수의 무관심 속에서는 결실을 보기 힘들다. 우리의 군비통제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고 있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다. 군비통제가 바른 자세로
혼자 걸을 수 있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군비통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군비통제업무 종사자들을 격려하고 채찍질을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