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린다.

눈이 내린다.



허만선



어둠의 세상을 정화시키려는듯 눈이 내린다.


산에도 들에도 하얗게 쌓인다. 눈속에 추억이 묻어난다.


개구장이들과 어울려 토끼몰이를 하다 눈에


미끄러져 하늘보고 누워서 한웅큼 베어 물면


상큼한 순이 내음이 수줍게 났었지


만주로 북간도로 유랑하며 나라 잃은 설움을 눈속에 묻고


해란강 청산리를 말 달렸던 독립의 영웅들은


오늘처럼 눈나리는 날엔 조국과 고향 생각에 잠못 이루었겠지.


상하의 나라 월남의 정글에서 백설처럼


쏟아져 내리던 고엽제가루가 조국의 눈인양 반가워 했었지.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으며 산책길에 나서지만


세파에 절어서인지 옛같은 낭만은 이미 없다.


공해 찌꺼기를 안고 내린다기에 쏴하니 청량했던 맛도 볼 수 없다.


괜시리 서글퍼지는 마음이지만 아수라같은 세상을


한때나마 씻어주려 눈이 나리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노사간 도농간 여야간 남북간 빈부간의 해묵은 원한마저 깡그리


정화시켜 주는 정축년 새해의 눈이라면 더더욱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