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신체는
군인의 신체는
나라의 재산입니다.
유달영
이 세상에 사랑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다. 꽃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사랑만큼 아름다울 수는 없다. 하늘의 별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사랑에 비길
수는 없다. 인간세상에서 사랑을 제거한다면 그대로 삭막한 사막이다. 사랑이 그처럼
아름다운 까닭은 아낌없이 주는 데 있다.
공군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대대장이 군사세계로 전화를 걸어왔다. 부하들에게
정신교육을 시키려고 하는데 도무지 어떤 기준으로 해야할 지 망설여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평소에 책을 통해 존경하고 있던 류달영 박사를 찾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회: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높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좋은 건강을 유지하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서중령(가명)이 이번에 선생님을 찾아 뵙고 좋은 말씀을 듣고자
해서 이렇게 함께 찾아 오게 되었습니다 군사세계 애독자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우선 대대장이 왜 유달영 박사를 찾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꺼내 주시겠어요?
서중령: 저는 진급에 한번 누락을 해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덕분에 저의 인생에 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진급에 실패하고 좌절에 빠져 있을 때 한 선배장군이 저에게 박사님이 쓰신 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래서 박사님이 쓰신 책들을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는 일제시대때부터 6.25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세상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세상을 올바르게 살았던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선생님 스스로
박대통령 당시 재건 국민회의운동 본부장을 맡으셔서 중요한 활동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으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을
직접 뵙고 좋은 교훈을 얻고자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기준을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 특히 군인으로서의 바른 길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류박사: 나는 군인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군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이
없다고 해야겠죠. 그러나 군이 얼마나 소중하다고 하는 것은 광복이후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제 스스로 느끼고 있고 또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재건국민운동 본부장을 맡아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5.16 혁명은 당시 군인이 총칼로 정권을 잡은 것이지요. 그러나 총칼로 국민의
마음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래서 국민운동을 해서 국민들로 하여금 정권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을 없애고 또 국민들의 힘을 모아서 국가 재건을 해보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 초대 본부장은 당시 고대총장을 했던 유진오 박사이었는데
그가 약 3개월을 맡아서 그 일을 했어요. 그는 사실 법학자이었거든요. 그일을 해보려고
하니 본인도 도저히 엄두가 안나고 정부측에서도 그가 국민의 신망을 얻고 해서 모시긴
했지만 별 案이 없고 해서 양쪽이 다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그와 전공이 달라 이름만 들었지 만날 기회도 없었고 그분이 고대총장이고
글도 쓰고 했기 때문에 그분을 알았지만 그분은 더군다나 나를 잘 몰랐다고 봅니다.
하루는 유진오 총장이 나를 집으로 오라해서 가보니 그가 하소연을 하더군요. '일을
맡긴 했지만 너무 경솔하게 맡았다. 도저히 자기가 일할 처지가 못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나더러 차장을 맡아 자기를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당시 국민운동 본부장은
총리와 동급이었어요. 그래서 나도 '학자로서 강의를 할 뿐이지 사회에 나와 운동하는데
흥미가 없다' 그랬죠. 그리고 한 열흘 뒤에 당시 박정희 최고의장이 나를 만나자
해서 갔더니 ‘국민운동 본부장직을 맡으라'고 해요. 그래서 나는 즉석에서 ‘못한다'고
했지요. 그리고 그 이후로 간접.직접으로 한 5-6차 맡아줄 것을 권유해 왔어요. 나
나름대로 사람도 천거해 보고 했는데 마음에 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지금 생각으로 그분들이 내가 당시 쓴 ‘새역사를 위하여'라는 책을 읽어본 모양입니다.
군에 있던 많은 장군들이 그 책을 읽은 모양이에요. 그 책은 덴마크를 황무지에서
세계 일류의 복지국가로 만든 이야기를 쓴 것인데 모두들 그걸 읽고 재건 국민운동
본부장을 나한테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나는 농민을 위해서 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긴 하지만
그저 학자로서 서울대 교수로서 일생을 마치고 싶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우리가 어려운 혁명을 했는데 성공을 못 거두면 그 혁명이 안한만 못하다'하면서
간곡히 권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몇가지 약속을 하자 했지요. 먼저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국민운동에 관해서 일체 개입을 말아달라. 내 의사대로 하나에서 백까지 운동을
해보겠다. ‘그래도 좋으냐' 그랬더니 ‘좋다' 하더군요. 두번째 나는 서울대 교수를
겸임해야 하는데 그것도 되겠느냐. 그랬더니 ‘그것도 좋다'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일단 6개월을 해보겠다. 6개월을 해보면 당신이 나와 약속한 대로 하는지 아닌지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 의지대로 되면 내가 줄곧 그일을 맡아서 하겠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군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지요. 군에 다니면서 강연도 하고 했으니까요.
군인들에게 불쾌하게 한 일도 적지 않게 많았지요. 당시 결혼식을 아주 요란스럽게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생활운동 본부장으로 있으면서 그게 가장 잘못된 일로
생각되어 결혼식에 있어서 들러리를 없앤다 축사를 없앤다 비싼 예물을 안한다 피로연도
안하도록 하자 그걸 강력히 추진해서 전에 몇시간씩 걸리던 결혼식을 한 30분으로
줄였어요. 한번은 군인이 결혼한다 하여 주례를 부탁해서 군인은 군복을 입으라 하고
신부는 한복을 입도록 해서 주례를 섰어요. 그런데 결혼식에 오신 손님들을 보니까
전부가 별자리에요. 객석이 은하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군인들을 꾸짖었어요. ‘군인은
나라를 위해서 잠시도 자기 자리를 비워서는 안된다. 결혼식은 엄연히 사사로운 일이다.
그래서 휴가때 참석하는 것은 모를지라도 이렇게 많은 장성들이 휴
전선을 지키지 않고 한사람의 결혼식에 다 몰려와서야 되겠는가. 이러면 군사혁명이
무슨 보람이 있겠느냐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랬더니 그 이후로 군인들이 나에게
주례 서달라 하지 않더군요. 또 한번은 육사 8기생 중 누구 동생이 결혼식을 하는데
내가 또 결혼식 간례화운동을 하고 있으니 한번 가보게 되었지요.
가보니 당시 행정수반이던 김현철이라는 분이 낮에 거기와서 주례를 하고 있더군요.
거기도 군인들이 많이 모여 있더군요. 그래서 결혼식이 끝나고 내가 나서서 신랑.신부
다시 들어와서 서게 하고 주례한 김현철 수반도 있는데 나가서 한마디 했지요. ‘군사혁명
정부의 수반이 대낮에 공무 제쳐놓고 나와서 주례를 선다는게 얼마나 잘못된 일이냐.
그러면 당신보고 주례 서달라는 사람이 한두사람이겠느냐. 그럼 누가 정치를 하겠느냐.
그래서 내가 거기 모인 8기생들도 꾸지람을 하고 김현철씨에게도 한마디를 했지요.
아마 김현철씨는 속으로 좋아했을 거에요. 주례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또 한 1년간 군 장성반에 가서 교육을 했어요. 뭐 주로 군인정신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관 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것 같아요. 나는 그때 이런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군인은 자기 목숨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군인은 군생활을 하는 동안은
그 목숨이 나라의 목숨이지 사사로운 자기의 목숨이 아니다. 그것이 진정한 군인의
자세다. 그런 자세로 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군인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내걸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죽을 자리에서 다 도망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게 무슨 군인이에요.
전쟁이 있든지 없든지 군인은 내 목숨은 나라의 목숨이다. 나라에 바친 생명이다.
군인의 신체는 나라의 재산이기 때문에 나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내가 군인이라면 나는 그런 생각으로 할 것 같아요.
군에서 제대한 뒤에야 뭐 사회인으로서 또 살아가야겠지만, 내가 국민운동 본부장을
일년 반 이상 하게 되었는데 박정희씨가 약속을 지켜주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재건국민운동을 정당으로 개편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런데 국민운동은
완전히 정치중립을 해야 하거든요. 여당의 국민운동이나 야당의 국민운동이 다를
수가 없는거죠. 전국민이 하나가 되서 생활을 개선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데 대한
바탕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나는 당시 선거할 때 약 2개월 동안 특수교육을 했어요.
개인자격으로는 몰라도 국민운동에 관련되어 있는 사람은 정치운동을 못한다고...
교육이 아주 철저하게 되어서 한 건도 물의를 빚은 적이 없었어요. 나도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게 여당 국민운동이 아니라 국민적인 운동본부구나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자꾸 나에게 재건국민운동본부를 통해서 공화당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들리더라구요.
나도 국민운동본부가 결국 정당이 되겠구나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제 제가 물러날 때가 됐구나 생각했지요. 그래서 일방적으로 사표를 내고
대학강의에 몰두했지요. 나중에는 박정희씨와 사이가 나쁘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군인들은 혁명공약에 있는대로 군으로 돌아가도록 해라. 과거의 정객들도 무서운
것을 알게 되고 제마음대로 떠들고 하지는 않을테니까 이제 그 사람들이 정치를 하도록
해 주자고 했지요.
박정희 대통령도 결심을 했었어요. 내가 박의장을 밤 12시에 만나서 이야기해서
그가 그렇게 결심을 해서 지금 세종문화회관 그 자리에서 정객들을 다 모아놓고 ‘자기는
정치를 떠나는 것이다'하고 선언을 했지요. 정치보복이라는 것은 없어야 되겠다.
나라를 정말 민주적으로 해가야 되겠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그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박대통령은 그런 결심을 했는데 내가 듣기에는 군 내부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사단장급 이상의 많은 장군들이 협박적으로 ‘군이
손을 떼면 혁명에 참여한 군인들은 다 보복을 당할텐데 당신 하나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군인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상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그분이 다시
번복을 해서 나서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나는 군사혁명이 다 끝나는 날 동아일보에 글을 하나 쓴 게 있어요. 군사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실패작이고 비극이다. 그런 제목으로 글을 썼었어요. 우선 먼저
혁명을 했으면 혁명공약대로 되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혁명공약대로 되지
않았다.
군인들이 나쁜 짓도 많이 하고 그래서 구악도 크지만 신악도 컸다. 민주국가에서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것도 역사적인 큰 과오이지만 한 것에 대해서 약속을 안 지켰다.
민주국가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하면 그것은 후세에 있는 사람들이 그걸 비극이라고
이야기 하지 결코 잘 되었던 일이라고 하지는 않게 되어 있다.
군인은 군력으로 나라를 지키는 것이지 그 힘으로 정치에 들어간다고 그 나라가
어떻게 발전하게 되겠느냐 그런 강경한 비평이 박 대통령을 불쾌하게 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후로 박 대통령하고 나하고는 멀어졌지. 한국에 신문이 여럿 있었는데 혁명이
끝난 뒤에 어느 신문 하나도 기사를 못 써요. 다들 무서워서 못 쓰는 거지요. 민주국가에서
언론이라는 것이 이런 중요한 일에 자기 표현을 못하면 그게 무슨 민주국가의 진정한
언론이냐. 어느 누구도 못한다면 나라도 욕을 먹더라도 한번 해야겠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쓴 것이지요. 그게 유일한 군사혁명에 대한 비판이었어요. 그때는 군에 대해서
잘 비판을 못했었어요.
사상계에서 함석헌 선생이 군에 대해서 자기의 소신을 말하는 그런 정도였어요.
함석헌 선생이 존경을 받는 것은 그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도 있는 그대로 말했다는
거에요. 그점이 우리 학생들, 젊은이들, 종교계에 있는 사람들도 그를 소중히 생각한
까닭인 것이지요. 용기있는 분이었지요.
나는 지금도 군에 대한 소신은 군이 대접을 잘 받거나 못받거나 어떤 경우에도
군인은 복무기간중에는 내 목숨을 나라에 바친 것으로 하고 근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진정한 군인은 그래야 됩니다. 군인의 신체는 나라의 재산인 것입니다. 물론
외국의 다른 나라 직업군인들은 일반 월급장이와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직업군인은 아니거든요.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에 들어가 복무를 하는 것이니까 더욱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못지않는 그런 모범을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요.
서중령: 선생님의 책가운데 必死卽生 이요, 必生卽死 라고 써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군인이 기를 쓰고 살려고 하면 국민은 죽고 군인이 죽기를 각오하면 국민은 산다는
설명이었어요.
류박사: 그게 진정한 군인이지요. 임진왜란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국민들이
많은 피해를 받았어요.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렇게
많은 피해를 당했어도 역사에 충무공 하나 얻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임진왜란도 없었고, 충무공도 없었던 것보다는 임진왜란이 있었고, 충무공도 있었던
것이 오히려 더 좋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죽었어도
충무공을 얻은 것은 우리 역사에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만한 댓가를
지불했지요. 그때 그 전쟁이 없었다면 이순신이라는 위인이 나올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 꼬장꼬장한 사람이 어디가서 뇌물쓰고 벼슬할 사람이에요. 그러니 그냥 초야에
있었다면 그저 명포수 노릇을 했었겠지요. 명포수 였다면 그저 살아 생전에 노루
몇마리 잡고 명포수라는 이야기만 전해질 뿐이지 그 분이 역사에 이렇게 남을 수
있었겠어요. 한국 역사에 충무공 빼놓고 세종대왕 빼놓고 누구 있어요. 역사가 텅
비어 버리지. 충무공이 우리 역사에 있었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것이지요. 물론 비싼 댓가를 치루긴 했지만 정말 세계적으로 우리가 자랑할만한 위인을
얻었던 것이지요. 아마 세계 어느 나라에도 충무공 이상의 군인은 없을 거에요.
그 정신이나 능력에 있어서... 그는 군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훌륭한
분이었다고 봐요. 울돌목 전투에서 배 12척으로 일본의 주력함대와 싸웠는데 그런
전공이 세계 전사에 어디 있나요. 소설을 만들면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런 전쟁은
없었어요. 그이가 우리 역사에 있다는 것은 우리 후손들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몰라요. 나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6.25 전쟁후에 졸병으로 최전선에 나가 있었는데
나는 일선에 한번도 면회를 간 일이 없어요. 물론 우편으로 책을 보내주긴 했지만요.
그가 ROTC 로 군에 가고자 했지만 나는 그가 사병으로 가기를 바랬어요.그래서인지
그냥 사병으로 입대 했어요.
나는 군인은 당연히 고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생안하고 무슨 군인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어떤 사람들이 조금 손쓰면 당신 아들은 군대를 안 보낼수도 있고,편안한데
가서 있게 할 수도 있는데 라고 말해 내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꾸지람을 한 적도
있어요. 그리고 이건 또 하나의 일화인데 6.25후에 한국에 얼마나 비참했어요. 그래서
서울서 부산다니는 기차안도 어디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꽉 찼어요.
한번은 내가 부산을 갖다오는데 의자 하나에도 몇 사람씩 포개앉곤 했는데 어디선가
얼굴이 익은 젊은이가 앞에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수염을 길렀어요. 그런데 잘 보니까
내가 대학에서 가르친 사람이었어요. 날보고 누구라고 인사를 하더라구요. 그래 왜
수염을 기르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군에서 영장이 나와서 도망다니고 있다고 하더군요.그래서
내가 농담을 좀 했지요. 좋은 방법이 있는데 영장이 나와도 겁안나는 좋은방법이
있다고.그랬더니 눈이 신기가 돌아서 아 무슨 방법입니까? 라고 묻더라고요 내가
어디 부탁을 해서 군에 안나가도록 해주는 방법이 있나 그렇게 짐작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내가 그이를 끌어당기고 다섯자 밑에 가 들어 누워라.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 같더라구요. 땅 밑에 다섯자 밑에 들어가 누우면 영장은 안 나와 그렇게
살아있는 청년이 겁을 먹고 돌아다니면 어떡해 안전한 곳이 어디 있느냐 꾸지람을
했는데 그 다음에 군대 갔는지 안 갔는지 몰라요. 살아있는 것 자체가 모험인데 ..생명은
항상 모험속에서 사는것 아니에요. 죽을때까지…. 그런데 젊은 사람이 안전을 바라고
도망이나 다니니 …. 그런 일화가 있었다고.
우리집 아이들이 4남매인데 다들 한복입고 결혼했어요. 며느리도 한복 입으면,
며느리 삼고 한복 안입으면, 며느리 안삼을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전부들 한복입고
결혼했어요. 한복이 보기 싫으면 몰라도, 한복으로 말하면 세계에서 자랑거리 옷인데
왜 그런 옷을 안입고 돈을 많이 들여서 빌려 가장행렬을 하냐 말이에요. 또 한국
사람이 한복입고 결혼하는게 당연한거고. 내가 예전에는 주례도 많이 서고 했는데,
요즘에는 주례 서달라는 사람이 전혀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주례를 서게되면 신랑신부
모두 나한테 와서 약속을 해야해요. 처음에는 대개 신랑이 와요. 그럼 내가 이러이러한
조건으로 주례를 서도 좋으냐 이야기를 하면 남자들은 대개 다들 좋아해요. 그런데
신부들은 100% 다 싫어해요. 그리고 축의금 중 일부를 사회에 기증하라 이거에요.
양로원도 좋고 고아원도 좋고요. 그렇게 첫발을 내딛으라 이거예요. 이렇게 사회봉사로
출발을 내딛어야지. 축의금 받고, 그 많은 사람들 거기와서 시간 다 보내고, 그게
소문이 나서인지 나보고 주례서 달라는 사람이 많이 없어졌다고요.
나는 군인들도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군인들은 더군다나 종교를 가져
야 생사에 대한 신념도 생기고, 군인으로서의 본분도 다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일
없을 때는 종교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비장한 때를
당하면 종교있는 사람과 종교없는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르죠. 나는 종교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중동의 터어키에도 초청을 받아서 가본 일이 있는데 거기서는 종교가 있느냐는
질문에 불교든, 기독교든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존중해 주는데, 종교가 없으면 짐승대접이죠.
그런 생각은 참 좋은 생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군대 훈련문제에 있어 맹훈련 할때는 거칠게 다루기도 하는데, 나는
군인은 역시 거칠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칠게 다루기는 다루되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때릴 때 미워서 때리는 것은 아니죠. 그것은 사랑의
매죠. 군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거칠게 다루지만, 실상은 훌륭한 군인을
만들기위한 것이므로, 사랑의 애정을 가지고 한다면 통한다고, 봅니다
군의 지휘관도 덕장이 있고, 지장이 있잖아요.지장은 지혜가 있어 전술에 능하고,
덕장은 모든 사람들이 지휘관의 말을 마음으로 부터 받아들이죠. 나는 장교중에 최고는
덕장이라고 생각해요. 군인이 말을 들어주니까요.
어떤 군인이 날보고 그래요. 우리가 전선에서 싸울 적에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생각을 잊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싸울 때 자기와 목숨을 같이하는 장교를 위해
싸운다는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나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듯 합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전에 군인들과 요새 군인들과는
상당이 다르죠. 군인들도 자유분위기에서 민주군인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하죠. 이제
처음 입대한 사람은 너무 자유분위기로 훈련을 해서는 안되죠. 일단 군사훈련이니까요.
훈련이 힘들어도 그것을 잘 이해시키고 출발을 하면 괜찮은데, 그런 점에 대한 이해없이
하면 반항도 생길 수 있죠. 일부 우리 군인들이 해방 후에 졸병들이 먹을 것을 위에서
떼먹고. 잘 입히지도 못하고 해서 출발이 참 나빴어요. 처음부터 철저한 충무공 정신으로
했으면 좋았을텐데. 그런데 그때 역사성이 그러하니 어떡해요. 나는 전쟁이 없어도
군인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사훈련은 모든 국민이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질서를 지키는 것은 군훈련 이상 없거든요. 법을 지키고 규율을 지켜야지 인간사회에
질서가 없으면 엉망이거든요. 내가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3시간동안 쉬지않고 강의한
적이 있어요. 자세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군인은 역시 군인이구나 라고 느꼈어요.
서중령: 선생님 글에도 농업이 바탕이다. 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수입이 개방되며 어려워질텐데 선생님 말씀처럼 덴마크와같이 협동조합이 잘
운영이 되가지고 또 정부에서 잘 지원하고 하면 우리가 그런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생각되는데요.
유박사: 농민들이나 농업에 관게된 분들로부터 나에게 많이 잘문들이 오고 의견을
묻고는 하는데 나는 자꾸 안된다는 편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되는 편으로 생 각을
해라. 그렇게 말해요. 안된다 안된다 하면 될 것도 안되죠. 안될 것도 될 수 있다는
건설적인 사고방식으로 해야죠. 개방을 해놓고 참 말이 아니죠. 지금은 중국의 농산물이
막 들어오고 참 어려워요. 이런 시련을 겪으면 한국 농업이 기술적으로 많이 올라간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농업형태가 달라졌거든요. 옛날식으로는 다 굶어죽죠. 따라서 이
시련을 이겨내 기술이 세계수준으로 올라가야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실력만
있으면 한국의 농업기술에 의해 물건을 세계에 수출 할 수도 있어요. 지금은 화훼왕국인
화란서도 한국의 꽃을 사갑니다. 시련이라는 것은 발전하는데 좋은 자극제가 되죠.
사회: 끝으로 군에서 사회로 나와 제 2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니다.
유박사: 내 생각에는 군에서 전역하여 사회로 나오는 사람들을 위하여 어떤 기관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군에서 나온 사람들을 위해 직업교육이든지 무엇인가 했으면
좋겠어요. 전에는 군에 있던 분들을 위해 상당한 수준의 농업교육을 하던 때가 있었죠.전역하는
사람들을 잘 교육해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해야죠. 내 소신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해도 혼자서는 잘 할 수가 없어요.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지. 모래라는
것을 진흙과 비교해보면 진흙의 하나는 먼지가루란 말이지 그게 굳으면 덩어리가
되고. 그런데 거기다 세면을 넣으면 바위 덩어리처럼 되죠. 이때 세면이 덩어리를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 덩어리가 못되게 하는 요인이 이기주의죠.
전부가 나라는 어떻게 되든 돈만 벌면 된다
이거잖아요. 그게 바로 이기주의 입니다. 그런 것을 넘어서 덩어리가 되는 교육을
해야 된다 말이죠. 인간의 본질이 사회적 동물이 거든요 지구에 있는 동물중 인간보다
허약한 동물은 없어요. 왜 그러냐면 인간은 혼자 자립하는데 20년이 걸려요. 벌러지는
알에서 나와서부터 자립이죠. 그리고 동물들도 애미 뱃속에서 나와서 불과 20분이면
뛴다 말이에요. 사람은 일어서는데만 1년이 걸려요. 그리고 혼자 밥벌이 하는데는
20년이 걸리죠 그러니까 지구에 인간처럼 약한 동물은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이유는 사회적 능력 때문이죠. 우리가 강하게
되려면 어려운 경우일수록 사회적 능력을 발휘해야 됩니다. 사람도 이 세상에 나와서
값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가 지능이 위인 것보다 사회적 능력이 큰 사람이에요.
내가 늘 얘기하지만 현대그룹에 정회장이 강원도 산골에서 초등학교만 나온 분 이에요.
그런 세계적인 기업가가 된 것은 그분 자신의 지식만으로 그렇게 됐느냐 말이에요.
그분 자신의 지식과 더불어 다른 사람의 지식도 쓴 것이죠. 그분은 운도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사회적 능력도 뛰어난 분이에요. 내가 서울대학교에서도 정년이 다 되도록
있은 사람이지만 학생들을 보면 사회적 능력이 큰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큰 일을
하지 머리만 좋은 사람은 남의 밑에 가서 심부름이나 하지 창의적인 일을 하지 못해요.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제일 힘의 원천이 됩니다.
사회: 높으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젊은 사람 못지않게 건강을 유지하시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래 오래 건강하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 쫮
(◐ 편집능력 부족에 대하여 양해드리오며 향후 저희 월간 군사세계가 유달영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성천재단의 활동에 다소나마 일익을 담당할 것을 약속드리옵니다
아이 사남매인데 결혼시킬적에 다 한복입고 결혼했어요.며느리도 너 한복입으면
며느리삼고 한복 안입으면 난 며느리 안삼을 거야 한국사람이 한국 옷입고 결혼하는게
당연하고 또 한복이 보기 싫으면 몰라도 한국 여성의 옷이라면 세계에서도 자랑거리옷
인데 왜 그런 옷을 안입고 비싼돈을 들여빌려서 가장행렬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서 전에는 내가 주례를 많이 섰는데 요즘에는 주례를 서달라는 사람이 전혀
없게 됐어요. 왜 그러냐 신랑신부 될사람이 다 나 한테와서 약속을 하죠. 처음에는
대게 신랑이와요.내가 이러이러한 조건을 애기하면 남자들은 다 좋다고 하지만 .
신부들은 100% 다 싫다는 거예요 . 신부는 한복입고 면사포 안쓰고 결혼하고 결혼
할 때는 축의금 중 일부를 사회에 기증을 하라 이거죠 . 양로원도 좋고, 고아원도
좋고,봉투를 전하고 첫 발을 내 딛으라 이거죠 결혼을 해서 사회에 내딛는 첫 발이
거든요 .출발을 그렇게 사회봉사로 출발을 해야지 축의금 받고 전혀 사회에 기증없이
그많은 사람 거기와서 시간 보내고 나보고 주례 해달라는 사람은 없어졌다고 그게
소문이 나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뭔가 잘되가다가도 지구력이없어요 . 결혼식도 얼마나 그게 참바로
돤겁니까.
요새 일부 사람들이 피로연을, 예물등 수천만원씩 들여하는데 그것은 바람직 한것이
아닙니다. 그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았으면 그것을 전통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데 지구력이
없는게 그게 문제예요 .
나는 군인들도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인들은 더군다나 종교를 가져야
종교에대한 신념도 생기고 군인으로서의 본분도 다합니다. 아무일없는 평상시에는
종교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별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비장한 때를 당하면 종교있는
사람과 종교없는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르죠 .종교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강합니다.종교없는
사람은 아무래도 자기능력이라는게 얼마나 약하고 .그것으로 버텨 나갈 수 있나요.
그래서 군인들은 종교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중동에 터어키에도 초청을 받아서 가보곤 했는데 중동지방에 가서 당신종교가
뭐요라고 라고 물었을때 불교,기독교 등 다른 종교라도 있으면 굉장히 존중하는데
종교가 없다면 짐승대접 입니다.
거기가서 사업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나는 그런 생각은 참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 군인문제에 있어 맹훈련 할때에 거칠게 다루기도 하는데 나는
군안은 역시 거칠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루긴 거칠게 다루데 때리는 것은
미워서 때림니까, 자기 아들을 미워서 때립니까,그게 사랑의 매지 군인도 거칠게
다루지만 실상은 훌륭한 군인을 만들기 위한것이므로 그게 사랑의 애정을 가지고
한다면 통합니다. 군에도 덕장이 있고 지장이 있읍니다.
지장은 지혜있는 장수로 전술에 능하고 덕장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말을 마음으로
부터 받아들입니다. 장교중에 최고의 장수는 덕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군인이
날보고 우리가 전선에서 싸울적에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생각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싸울때는 자기를 거느리는 장교와 목숨을 같이하니까 그사람을 위해 싸운다는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생사고락을 가 같이하니 그럴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전에 군인들과 요즘군인들과는 상당히 다른데 군인들도 자유분위기에서
민주군인이 되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제 처음 입대한 사람은 그런 훈련을 해서는
안되죠. 일단 군사훈련이니까 그것을 잘 이해시키고 출발을 하면 괜찮은데 그것의
이해 없이하면 반항도 생기고 그런것 아니겠어요. 충분히 이해를 시킨다음에는 납득이
갈는지 모르죠 그러니까 우리 군인들이 해방후에 졸병들이 먹을것을 위에서 다 떼먹고
입히지도 않고 잘먹이지도 않고 그때 출발이 참 나빴어요.
처음에 철저한 충무공 정신으로 그걸 했으면 좋았는데 그때 역사성이 그랬으니
어떻겠어요 나는 전쟁이 없어도 군인은 있어야하고 국민이 군대에 가면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질서를 지키는 것은 군훈련이상 없거든요.
법을 지키고 규율을 지켜야지 인간사회에 질서가 없으면 엉망이거든 내가 육군사관학교에
가서 3시간 쉬지않고 강의 한적이 있어요. 3시간동안 자세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았어요.
군인은 군인이로구나 그런걸 느꼈어요.황영시 장군이 제3사관학교 교장했지요. 지금은
형무소 들어가 있지만 나는 그 분을 퍽 좋게 생각했어요. 군인으로서는 참 훌륭하다.
그것은 나와의 관계에서 내가 느낀건데 거기 졸업하는 마지막시간은 3시간인데 나한테
꼭 교양을 부탁하곤 했거든요. 내가 군인에 대해 바른 얘기도 하고 그분이 퍽 좋게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그리고 참모총장인가 하셨을때 군인들에게 역사교육을 해야
되겠다.그래서 ‘한민족의 용트림’이란 책을 쓰시지 않았어요.그래서 군인들이 내
사택에와서 의견을 많이 물어서 내 의견을 많이 반영하곤 했어요. 역사교육을 군인에게
할려고 하는 생각은 상당히 수준이 높은 생각이에요.
내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역사책은 역사를 바로만 쓰는 책이 좋은 책은 아니다.
역사책이라고 하는것은 사실만 기록하는 일기책과는 다른 것이다. 역사책에는 국민에
주는 교훈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 역사책에 의해서 인간을 만들고.조상을 소중히
알고 ,후손을 생각하고 역사책이란 그런 책입니다. 그러니까 학술적으로 쓰는 역사
책하고 일반 청소년들이 읽는 역사책하고, 군인들이 읽는 역사책하고 그 역사책을
쓰는 자세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인에게는 어디까지나 나라위해 목숨바치는
것이 소중하고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을 크게 부각시켜야 됩니다. 그 역사책 쓸때 내가
원고도 보고 내 의견이 거기 상당히 반영이 됐어요. 그래서 황장군은 참 좋은 군인이라
생각해요. 지금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나로서는 좋은 군인이라 생각해요.
역사의식을 군인에게 넣어줄려는 생각을 그렇게 성실하게 했다면 내가 보기에는 상당한
수준의 군인이거든, 아마 그 분의 댁에 내 글씨가 걸려 있을거예요. 그 내용이 군인정신에
관한 것인지 무엇인지는 몰라도,
서중령:선생님 글에도 농업이 바탕이다.이런 말씀도 있는데,앞으로 수입이 개방되고
어려워지는데, 선생님 말씀처럼 덴마크의 협동조합처럼 잘운영이되고, 현 여건하에서
농업이 발전될 수 있도록 하려면요?
유박사:나는 자꾸 안되는 편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되는 편으로 생각을 해야된다고
생각해요. 안된다 안된다 하면 될것도 안되죠. 안될것도 될 수 있다는 건설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해야됩니다. 개방을 해놓고 참 말이 아니죠. 지금은 중국의 농산물들이 막들어오고
참 어려워요. 이런 시련을 겪으면 한국농업이 기술적으로 많이 올라간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농업형태가 달라졌거든요. 옛날식으론는 다 굶어 죽어요. 그러니까 이 시련을
겪어 세계수준으로 올라가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실력만 있으면 한국의
농업기술에 의해 물건을 세계에 수출 할 수도 있어요. 지금도 가령 화훼왕국인 화란서도
한국의 꽃을 사갑니다.시련이라는 것은 발전하는데 좋은 자극제가 되죠.
사회:장군이든 사병이든 군에서 사회로 나와 사회생활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사회에 나와 적응을 하려면 군에 있을때 그분들이 어떻게 준비를 하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요?
유박사: 그건 내생각에 무슨 기관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군에서 나온 사람들을
위해 직업교육이든지 무엇이든지 했으면 좋겠어. 전에는 군에 있던 분들을 위해 상당한
수준의 농업교육을 하던 때가 있었죠.
사회:그런데 군에서 있던 사람들이 사회에 나와 푸대접을 받고,알맞은 대우를
못받는 경향이 있는데
유박사:그런데 그게 양면이에요. 그런 경우도 있고,반대의 경우도 있고, 결국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환영도 받고 푸대접도 받고. 일률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죠.
사회:군에 하사관 등 군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 군에 있을것인가 아니면 사회로
나와 새로운 출발을 할것인가 그런 갈등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 수 있는데요.
유박사:그런경우의 사람들을 위해 정부시책이 서야 할거예요. 그런경우의 사람들을
교육해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해야죠. 또 나온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잘 단결해야죠.
내소신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혼자서는 일하는것을 잘 할수가 없어요. 여러사람들이
힘을 합쳐야지. 모래라는것을 진흙과 비교해보면 진흙의 하나는 모래란 말이지.그게
마르면 덩어리가 되고, 그런데 거기다 세면을 넣으면 바위덩어리처럼 된다 말이지.세면이
뭐야 덩어리 만드는 요인이 되는 것이거든. 그런데 덩어리가 못되게 하는 요인이
이기주의죠.전부가 나라는 어떻게 되든 돈만 벌면 된다 이거쟎아요.그게 바로 이기주의
입니다. 그런걸 넘어서 덩어리가 되는 교육을 해야 된다 말이죠. 인간의 본질이 사회적
동물이거든요.
지구에 있는 동물중 인간보다 허약한 동물은 없어요. 왜 그러냐면 인간은 혼자
자립하는데 20년이 걸려요. 벌러지는 알에서 나와서 부터 자립하죠. 그리고 동물들도
애미 뱃속에서 나와서 불과 20분이면 뛴다 말이에요. 사람은 일어서는 데만 1년이
걸려요.그러니까 지구에 인간처럼 약한 동물이 없단 말이에요.그리고 혼자 밥벌이
하는데 20년이 걸린다 말이에요. 그런데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이유는 사회적 능력
때문이죠.우리가 강하게 되려면 어려운 경우일 수록 사회적능력을 발휘해야해요 사람도
이 세상에 나와 값있는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대개가 지능이 위인 것 보다 사회적
능력이 큰 사람이에요.
내가 늘 얘기 하지만 현대그룹의 정회장은 강원도 산골에서 초등학교만 나온사람이에요.
그분이 세계적인 기업가가 된것은 그분 자신만의 지식으로 그렇게 됐겠어요 남의
지식을 다 쓴것이죠. 그분은 운도 좋다고 할 수 있지만,사회적 능력이 있는 분이에요.
내가 서울대학교에서도 정년이 다 되도록 있은 사람이지만, 학생들을 보면 사회적
능력이 큰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큰일을 하지 머리만 좋은 사람은 남의밑에 가서
심부름이나 하지 창의적인 일을 하지 못해요.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제일 힘의 원천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