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역사를 찾아서
숨겨진 역사를 찾아서
여운건
우리민족사연구회를 창립하게된 동기
92년 6월중순경 오랜동안 소식이 끊겼던 한 친구가 찾아와서 대뜸 하는 소리가
“이완용보다 더 악질적인 매국노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누구냐”고 반문했더니 이병도라고 그는 주저없이 답변하면서 흥분된 어조로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먹었지만 36년만에 되찾았다. 그러나 이병도는 우리 역사와 민족을 일제에
팔아먹었는데 반세기가 가까워지도록 찾지못했으니 이완용보다 더 악질적인 매국노가
아니냐!"고 도리어 나에게 반문하였다. 몇일이 지난 후 바로 6월25일 저녁에
몇 명의 재야 사학자들을 만나 정말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대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단군조선 이전에 구리시대의 수천년역사가 있었으며 그 시대의 왕릉이 중국의
산동성에 실재하고 있다. 둘째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니고 한족의 지배를 받은 것도
아닌 약 2천년의 동북아 최강국가였으며 한족의 최초국가인 하(廈)나라보다 백여년
앞선 나라였다. 셋째 구조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들의
주활동지역은 한반도를 포함한 현 중국과 만주대륙 이었다..
넷째 을지문덕과 김유신장군의 전쟁터는 한반도가 아닌 현 중국땅이었다. 위와같은
사실들이 기록된 중국의 정사가 25사와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중점들을 하나 하나
근거를 나에게 제시하며 밤늦도록 토론을 하였다. 아마 우리 국민사에 우리 민족사가
일제에 의해서 왜곡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어렴풋이
아는 사람도 있도 또 만주는 우리민족사의 고구려땅이었다는 말과 중국의 동부와
남부지역이 백제와 신라의 통치지역이었다는 내용을 거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한국이 70-80년대를 지나면서 경제발전의 영향으로 유형적인 외적성장은 물론이고
무형적인 면에서도 아낌없는 투자를 하여 가문의 족보를 새로 정리하고 묘소를 단장하여
마치 왕릉처럼 꾸며서 자기 조상들의 업적을 찬양하는 일들이 마치 유행병처럼 번져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왜 우리 민족의 무형자산은 찾지 못하고 있는가. 일찍이 우리 선조들은
그 나라의 역사야 말로 그 민족의 혼을 일깨워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역사 잃은
민족은 살아 있어도 죽은 민족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일제가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최초로 시작한 식민정책이 우리의 역사말살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기록을 통하여
알고 있다. 이러한 일제의 만행으로 50여종-20여만종의 우리 고대사서가 불에 타고
일본으로 옮겨지면서 총대신 펜을 들고, 탄환대신 역사책을 내세워 우리민족을 산시체로
만들어 놓게 되었다. 그러한 일제의 유산이 지금까지 우리곁에 남아 숨쉬고 있으므로
우리의 민족혼은 땅에 떨어질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곁에는 살아있는 학자들이 보이지 않은 어두운곳에서 우리 역사를
찾는데 피땀어린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 내용인즉 1974년부터 한국고대사학회를
구성하여 왜곡된 우리역사를 찾는데 재야학자들이 힘을 모으기 시작했고 1978년에는
국정교과서 오류시정 및 정사확인소송과 1981년의 국회청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과 뜻있는 인사들이 수년동안 많은 시간과 물건은 물론이고 형언할 수
없는 고애속에서 외로운 투쟁을 해왔지만 역사자료의 결핍과 재정적 한계, 현 사학자들의
자기 만족을 위한 부정적 시각 그리고 물질지상주의에 함몰된 가치관의 상실에 의한
배타적 무관심등으로 인하여 역사의 진실은 좀처럼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고
있는 실정에 있다.
이러한 상황아래서 우리 민족사의 흔적들은 하나하나 사라져가고 있고 중국의
「이십오사」(二十五史)도 그들의 국가이익에 따라 그 내용이 수정되고 있으며 심지어
우리의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인 고구려를 중국의 변방국가였다고 그들의 교과서가
바뀌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이나 일본 등 우리주변 국가들은 그들의 기국사와 고대사를 마음대로
꾸며서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는데 비하여 우리는 위대한 조상들의
역사도 스스로 외면하고 있으며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실정에 놓여있다.
이러한 실태를 관심없이 넘겨버릴 수 있겠지만 재야학자들의 간곡한 부탁과 역사의
진실을 찾아야한다는 감동 그리고 누군가는 해야될 우리 민족의 절대적인 과업이
아니냐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93년 4월에 역사연구회를 만들게 되었다.
물론 나는 역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고 또 연구회를 운영해 나갈만한 재력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결국 고민 끝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과 도움으로
회원제를 실시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 지금은 약 5백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 민족사학연구회는 3년여에 걸친 연구를 통하여 대략적인 국가의 계보와 그때
그때의 연역을 찾아낼 수 있었고 지금은 연구내용을 정리중에 있다. 또 연구내용을
매월 강좌를 통하여 회원들에게 알려주고 있으며 격월로 회원의 날을 제정하여 현
연구회사무실에서 친목을 도모하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 민족사연구회는 연구영역을 확대하기 위하여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대정부 로비를 실시하면서 더 많은 회원을 확보토록 하고 또 학위를 가진
현 전문사학자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도록 대화의 문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이와 병행하여 가능한 한 많은 국민들에게 이를 홍보하여 자랑스러운 우리 조상들의
면모를 인식토록 함으로서, 어지럽게 널려있는 우리의 민족혼을 찾아 질서를 유지하고
가치관을 확립하며 사랑으로 뭉쳐진 동이족(東夷族)의 대동단결을 이룩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번에 새롭게 간행되어 발전과정에 있는 군사세계에 지금까지 우리 민족사연구회에서
찾아낸 숨겨졌던 역사의 내용을 국민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관계 여러
사람에게 마음깊이 감사하면서 크게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소개할 내용은 매회 시리즈로 엮어 20여회로 게재하려고 한다. 이 내용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큰 충격이 될 것이고 또 어떤 독자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가능한한 한계를 명시할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
근거서적을 개인이 갖고 있지 못하므로 당 연구회 사무실을 항상 개방하여 함께 공부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한다. 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