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개방이 곧 통일



강경식



우리는 어떤 통일을 바라는가



우리민족이 해결해야 할 21세기 최대의 과제는 통일문제일 것이다. 남북한을 통틀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치 통일에 대한 염원은
절실하다. 그러나 통일을 이렇게 열망하면서도 서로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일마저
잘 되지 않는다.


통일에 대한 여망의 절실함이 오히려 남북한의 관계를 풀어나가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통일에 대한 우리의 염원을 공허한 구호로 남아있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붕괴할 날만을 기다리면서 지낼수는 더욱 없는
일이다.


우리가 그렇게 염원하는 ‘통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부터 분명히하는
것이 그출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분단이전 사회로의 ‘복귀’가 통일인가. 남북한이
합쳐지기만 하면 된다는 ‘통일지상주의’가 올바른 해법인가. 그밖의 다른 방식의
통일은 있을 수 없는가. 분단반세기가 지나고 21세기를 앞둔 지금은 남북관계의 현상타파를
위한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할 시점이라 생각된다.


이제까지 우리는 남북이 한 나라로 통합되는 ‘영도적, 정치적 통일’을 당연한
목표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정부당국자가 아닌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통일은
이와는 다를 수 있다.


이산가족이 통일을 바라는 것은 고향과 친지를 자유롭게 방문하고 서로 소식을
주고 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며, 기업인들로서는 북한에서 기업활동을 안심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으면 된다. 금강산이나 백두산 관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서는 안심하고
자유롭게 관광을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같은 나라로 통일이 되면 좋지만 이런
바램이 충족된다면, 내왕하는데 비자를 받는다든가 환전을 하는 등의 불편쯤은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통일이 되면 남북간에 전쟁의 위험이 없어지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막대한 통일비용부담이나 통일과정의 혼란과 무질서
등의 문제에 대한 뚜렷한 생각은 별로 없다. 그러면서 통일이 되어 ‘강대국 대열’에
들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다. 이런 일반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정치적 통일이 없이도
이루어질수 있는 일들이다.


우리는 이제 ‘통일효과’를 실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변화는 남북한간의
경쟁은 사실상 북한의 완패로 끝났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쉽게 붕괴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우리쪽도 ‘흡수통일’을 감당할 준비마져 아직
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설사 북한이 붕괴된다고 하더래도 일국가 2경제로 상당 기간 가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세계화의 진전등으로 통일의 의미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통일효과’는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남북간의 경쟁은 북한의 완패로 끝났다



남북간의 경쟁은 이미 끝났다. 경제적 격차는 북한이 앞으로 따라잡기 불가능할
정도로 크게 벌어진 것이다. 이런 현실은 남북관계를 근본에서 바꾸어 놓고 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이제 남한 체제의 위협요소가 아니다. 한반도에서도 이제
냉전은 끝났다. 경제력 격차의 원인이 북한의 공산주의체제에서 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오랜 동안 우리를 괴롭혀온 ‘적색 콤플랙스’에서 완존히 벗어나게
된 것이다.


경제력의 격차는 북한의 전쟁 수행능력도 크게 약화시키고 있다.


북한의 일인당 소득을 천달러라고 하더라도 경제규모는 우리의 1/20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한국과 미국과의 격차에 해당되는 것이다.


중국의 북한전문가는 5백달러 정도로 말하고 있어 사실상의 격차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하긴 식생활도 해결하지 못하는 ‘기아경제’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규모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북한의 붕괴는 없다.



북한이 식량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에 북한사회가 곧 붕괴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사회를 우리사회를 보는 시각에서 본 결과이다.
북한의 경제난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북한의 특수한 주민통제체제와 페쇄사회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쪽이 보다 현실적인 판단일 것이다.


특히 인접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북한이 붕괴하는 것을 결코 방관하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의 붕괴는 중국에게는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접경하는 것은 주한 미군과 바로 대치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안보면에서도 이를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북한이 붕괴될 경우 3백만명이상의 북한 노만크라투르(Nomenklatura,
특권계급)들이 두만강과 압록강은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들 ‘난민수용’에는 엄청안
재정부담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붕괴하지 않을 정도의 식량이나 석유
등을 지원하는 쪽이 난민수용보다는 골치도 덜 아프고 재정부담도 적을 것이라는
계산쯤은 당연히 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이제까지도 중국은 알게 모르게 식량과 석유 등을 계속 지원해 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쪽도 통일준비는 아직 멀었다.



북한이 붕괴되어 ‘흡수통일’이 불가피할 때를 대비해서 그때 소요될 자금을
‘통일기금’으로 적립해가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돈을 따로 쌓아두자는 발상은
사리에 맞지 않고 또 비현실적이다. 통일대비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충실한 경제를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튼튼한 경제가 바로 ‘통일기금’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소요될 통일비용을 따로 쌓아 두기 보다는 우리들 마음의 자세가 통일에
따르는 희생을 감내할 수 있게 되어 있는지를 냉정하게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는 지역갈 등을 비롯해서 계층간,
세대간, 노사간등 이해관계에서 오는 분열과 반목문제를 아직 제대로 해결하지 목하고
있다. 해결하기 보다는 ‘집단이기주의’로 각자 이익 챙기기에 골몰하면서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이 될 경우, 화합과 발전의 계기를 만들기 보다는 또하나의
엄청난 갈등과 반목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과연 가난한 북한주민을
끌어안고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남한 사람 두사람이
북한 사람 한 사람을 챙길 수 있을 것인가. 냉정하게 말해서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할
자신이 없다.


북한을 흡수 통일하려면 북한사람들의 마음부터 우리쪽으로 쏠리도록 해야한다.
그럴려면 우선 북한쪽과 긴민한 관계에 있는 연변의 조선족의 마음부터 사야하는
것이다. 최근 사회문제가 된 연변의 조선족을 대상으로 한 취업사기사건을 들먹일
것도 없다. 오죽하면 ‘한국은 없다’라는 책을 쓰게 되었겠는가.


탈북자 3천명도 수용하지 못하면서 어찌 북한 동포 2천 4백만을 받아들일수 있을
것인가. 높은 이상의 실현과 사람으로서의 도리에 따른 희생을 감내하는 마음없이
어떻게 통일후의 남북화합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인가.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라도
법정에 세우는 한국사회 현실을 볼 때, 북한의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이 어찌 통일후의
신변안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흡수통일이 되면 모두 죽는것을호 생각할
것이 틀림이 없다. 아마 통일을 저지하기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이며, 승산없는 전쟁이라는 생각이 들더래도 일전을 불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짚어볼 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흡수통일 운운할 ‘자격’을 제대로 각추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국가 2경제



이렇게 준비가 되어 있지않는 상태에 있더라도 만일 북한이 갑자기 붕괴된다면
통일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볼 것없이 통일부터 이루고 볼 일이다. 그런 경우가
되어도 우리는 곧바로 독일식의 ‘한국가, 한 경제’로의 통합은 어려울 것이다.
여러 가지면에서 독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실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북한인구가 우리의 1/2인데 반해 동독은 서독의 1/4밖에 되지 않았고, 또 서독의
경재력은 세계 최강의 하나이고, 동서독간의 일인당 소늑격차도 1/3수준으로 남북간의
1/10내지 1/20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는데도 갑작스런 통일은 엄청난 어려움을
가져왔던 것이다.


동서독 환율을 1대1로 하는 경제통합은 구동독을 화폐를 수백 %평가절상하여 동독산업의
가격 경쟁력을 일거에 상실하게 만들었고, 동독산업을 일시에 몰락시켰던 것이다.
산업황폐화와 임금 수준의 급상승은 동독 지역의 실업율을 60%가 넘는 상태로 몰고
갔던 것이다.


서독의 TV를 자유롭게 시청하고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었던 동독의 경우에도 통일후의
법체제나 행정질서의 상이에서 오는 적용문제가 심각하였던 것이다. 외부세계가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정보가 완전히 봉쇄된 채 지내고 있는 북한의 경우 새로운 체제나 의식주등
일상생활의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의 혼란은 극심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시키는
데로만 살아오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자기 생각에 따라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생활로 바뀌기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은 물론이다. 70년대초와 지금의 한국사회가
하루 아침에 뒤섞인다고 상상하던 그 혼란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서적이나 정치적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북한이 붕괴되더라도 상당기간동안은
‘1국가, 2경제’체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경제운영방식도
달라야 하고, 발전단계의 차이만큼의 임금수준의 차이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통화도
따로 만들어 시장환율을 적용해서 교환하는 등 독립된 두경제로 상당기간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체제가 붕괴되더라도 별개의 경제체제가 되어야 한다면 통일에 앞서 남북한간의
격차를 줄이고 생활면의 차이를 없애가는 노력을 해야한다. 즉, 분단상태에서도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것이 오히려 통일을 원할하게 이룰 수 있는 기틀을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선통일, 후동질화’냐, ‘선동질화, 후 통일’이 양쪽을 두고 선택을 하라면 당연히
후자쪽이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성급한 ‘통일지상주의’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할 것이다.



북한은 적대 관계에 있는 세력



우리는 남북관계에서 무조건 ‘통일냐, 평화냐’를 선택한다면 당연히 평화쪽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현재의 북한은 우리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적대세력으로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북한은 언젠가는 통일을 할 ‘동포’, 통일논의를 하는
상대로서가 아니라 평화구도정착을 위한 협상대상인 것이다. 군사적 위협과 내부교란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를 위협하는 ‘적대국가’로서 대응해야만 평화에 대한 논의가
현실성을 띄울수 있는 것이다. 그런뜻에서 한반도평화 구조정착을 위해서는 ‘분단상태의
안정’이 더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일각에서 ‘민족이 동맹에 우선한다’는 논리나 ‘민족내부의 특수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냉엄한 안보현실을 호도하는 이적논리(利敵論理)인 것이다. 같은 민족이라도
우리 체제를 위협하면 이는 용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체제를 부정하는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관용보다는 당연히 체제부정이라는 쪽으로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국태민안’이라는
국가의 기본 임무는 통일보다 앞서는 것이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동란을 두고 ‘화해할 수 없는 상대’라고 언제까지나 매도만
하고 있는 것도 바람직 하지 않다. 한때의 적이라고 해서 그 원한을 언제까지나 안고갈
수는 없는 것이다. 동족이기 때문에 원한관계를 풀어가기가 더 어려울 수도 있지만,
미래의 평화체제구축을 위해서 ‘해원’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북한주민이 기아선상에서 헤메이고 있기 때문에 식량원조를 해야
할 것인가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북한당국이 주민을 굶길 정도로 무능하다고
볼 수는 없다. 지난번 우리가 보낸 쌀이 ‘군량미’로 쓰였다는 설이 있고, 북쪽이
우리를 적대시하고 있는 것을 아울러 감안할 때, ‘무상원조’는 매우 신중히 해야
한다. 경제원칙에 따른 교역이나 투자등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



세계 신질서에의 성공적인 적응이


한민족의 과제다



세계는 지금 엄청난 변화속에 있다. 국경의 의미가 크게 퇴색되면서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지구촌화(Globalization)와 정보화 사회로의 문명사적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운 질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체제라는 두축을 근간으로 짜여지고
있다.


변화와 개편에 대한 성공적인 적응여부는 21세기 우리민족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우리민족의 1/3에 해당하는 2천 4백만의 북한동포가 이런 세계적
변화와는 담을 쌓고 있다는 사실은 21세기 우리민족의 앞날에 엄청난 제약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통일보다 북한의 개방화와 정보화야말로 우리 민족의 명운이 걸린
최우선 과제인 것이다. 19세기말 ‘개국과 쇄국’의 선택을 잘못한 결과 식민지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을뿐 아니라 분단의 멍에를 지금껏 벗지 못하는 대가를 우리는
치르고 있다. 올바른 선택은 그만큼 역사의 냉엄한 논리로 전개되는 것이다.


북한경제 낙후의 원인은 체제에 있다. 따라서 북한은 체제개혁을 더 이상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흡수통일’을 하게되면, 이런 전환은 일거에 이루어 질 수 있다.
통일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의 타당성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방안은
북한이 개방정책을 채택하도록 유도하는 일이다.


우선 중국의 경제특구방식의 개방정책이라도 채택하게되면 체제개혁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그간 나진·선봉지역을 특구로 개방하고자 했지만 위치선정에 문제가 있어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남포나 해주등 서해안쪽에 특구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개방정책을 채택하면 체제붕괴가 촉진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오히려
그반대이다. 잘 살 수 있는 기대를 가지게 하고 이를 실현해 보이는 것 보다 더 나은
체제 안정장치는 없기 때문이다. 개방을 통한 소득증대는 이를 실감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길인 것이다. 이는 개발초 우리가 경험한 것이고, 동남아와 중국에서도 그대로
실증된 일이다.


북한이 개방정책과 시장경제방식을 수용하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 중국과 미국등
주변의 여러나라들도 모두 바라는 바인 것이다.


‘북한의 개방화’와 ‘체제전환’을 위한 국제협력체제의 구축은 북한을 위해서는
매우 다행스런 일이라 할 것이다.


어떤 형태와 경로에 따르든 북한이 개방만 한다면 우리로서는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북한경제가 안정되어 남북간의 격차가 줄어드는 일은 평화정착에 도움이 되고
남북간의 동질화에 기여하며 궁국적으로는 통일을 앞당기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체제는 개방화가 이루어지면 경제에서부터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정치
민주화를 선행한 인도의 경우나 정치와 경제개혁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러시아의
경우보다는 선경제개혁후 정치 민주화의 길을 가고 있는 한국의 선례를 북한도 따를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도 선경제개혁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우리가 먼저 서두를 것은 없다. 급한 쪽은 북한인 것이다.
북한이 개방정책을 채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다리던 것이다. 통일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지 않게 되면 자연히 이런 자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개방체제에서의 통일은 문화적 통일성의 유지



세계화로 국내외를 구분하는 의미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국경이라는 울타리가
점점 낮아져가는 개방체제에서는 ‘같은 국민’이 되어야만 ‘통일’을 이룬다고
생각할 것은 없게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의 수가 5백만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는 그수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이들 해외동포와 통일문제를 두고 고심하지 않고 있다.
같은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왕래와 교류에 아무런 현실적인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어느 나라 국적이든 취득하여 살 수 있는 것이다. 또 기업의 경우 이미
국적이 없어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앞으로는 2중,3중 다국적 활동이 당연시될
것이다.


따라서 국적보다는 동족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을 어떻게 유지하는가가
더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함께 지니는 ‘문화의 뿌리’를 어떻게 튼튼히 하는가의
문제가 된다. 민족통일은 결국 우리 민족의 ‘문화적 통일성’을 어떻게 지키고 가꾸어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남북통일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폐쇄사회의 교포들은 지난날의 삶의 풍습이나 의상 등을
거의 원형대로 유지하고 있는데반해, 선진서구사회교포들의 생활을 보면 현지화되어
모국어마져 잊어버릴 정도로 동화되고 있다. 어느 쪽도 한민족의 터전인 한국과는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통일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듯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생활문화의 차이를 줄여가고 공유부문을 넓혀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남북한 사이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보다 쉽게 풀어갈 수 있다. 개방체제만 된다면 한국가로
통합하지 않고서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이 지낼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
주민들이 상대방의 ‘교포’가 되면 분단상태에서도 사실상 통일이 이루어진 것과
같아 질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바탕에서 국가통합은 장기적 과제로 삼아 느긋하게
추진해 갈 수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의 정착은


민족의 과제



우리민족의 과제는 국토통일이나 정치적 통일보다도 우리 민족 모두가 세계적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것, 즉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라는 틀을 제대로
갖추어 가는 일이다. 특히 북한에서 민주화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룩하는 일은 21세기 우리민족의 앞날의 명운을 판가름하는 관건이 된다.


분단상태에 있더라도 이런 세계적 변화에 동참하고 그럼으로써 남북한 주민들이
마치 한국가에 사는 것과 큰 차이없이 서로 내왕하면서 생활할 수 있다면 그길이
보다 바람직 할 수도 있다. 전쟁 위험이 없이 평화가 보장되고 따라서 높은 군사비를
경제발전을 위해 돌려끌수 있게 된다면 더욱 그러하다.


우리는 21세기 세계사의 중심에 서서 인류발전에 기여하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세계의 다른 나라의 발전도 기여하는 일을 할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이 우리보다 뒤늦게 경제개발에 착수한 여러나라들의 모델이
되고 있다.


이제 서구적 합리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북한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면, 그 경험은 바로 서구 이외의 문화권의 여러나라들의
발전에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남북한 관계의 발상전환과 새로운 통일의 모색은 비단 우리민족 내부의
문제일뿐 아니라 인류발전에도 심대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한민족의
세계사적 역할에 대한 시험(Test)을 치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이 21세기 세계의 중심국가적 역할을 하려면 우리만 잘 사는 것으로는 안된다.
인류발전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통일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가의
문제는 우리 민족의 문제인 동시에 세계적 발전을 위한 새로운 해답으로 되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통일문제는 21세기를 앞둔 우리민족 최대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