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는 나라꽃 무궁화를 심자


명승희


군자의 나라 동녘땅에 아침이슬 듬뿍 머금고 찬란히 피었구나.


님의 자태여 고결한 멋이여 여인의


옷자락 감고감아 맴돌듯 맴돌듯


수줍게 피었구나.


님의 향기여 순결한 절개여 오!!


그 향취 삼천리에 드높구나.


영원히 피어라 대한의 꽃이여


찬란히 빛나라 대한의 얼이여


(필자의 자작시임).



민족의 혼으로 표상되는 ‘겨레얼 무궁화 정신’을 오늘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새롭게 조명하고 인식하는 일은 어떠한 일보다도 우선되고 뜻있는 과제이다.’무궁화’가
나라꽃(國花)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무궁화를 심고 가꾸거나
알고있는 인식의 정도는 미약하다 못해 개탄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까지 무궁화 선양인들이 사회일반에 그릇 인식된 기풍을 씻고, 나아가 관심도를
더욱 높이고자 많은 노력과 정열을 불태워 왔다.


그러함에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진전이나 진작된 풍토는 조성되지 않으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필자는 평소 ‘나라꽃 무궁화’ 선양운동에 25년이란 세월을
보냈고 지금도 나라꽃 무궁화 운동을 하고 있다.


나라마다, 그나라를 상징(象徵)하는 국기(國旗)와 국화(國花)를 가지고 있듯이,
우리 겨레도 나라의 상징으로 태극기(太極旗)를, 민족 혼(民族 魂)의 표상(表象)으로는
무궁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 겨레가 무궁화를 나라꽃.겨레의 꽃으로 복돋아 온 것은 2,000여년전 고대국가(古代國家)
시대임을 문헌(文獻)에의 기록(記錄)으로 알 수 있다. 이토록 오랜 세월동안 배달겨레와
그 맥락(脈絡)을 이어 온 무궁화 이건만…


오늘에 있어서의 그 위치(位置, 品格)와 애호 비중 은 이름뿐만인 ‘나라꽃’에
불과하다.


‘무궁화 정신’을 우리 민족의 혼으로서 만이 아니라 ‘한국. 한국인. 한국의
혼’으로 내세우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연구(硏究)와 정립(定立)은 커녕, 심지어는
진딧물 운운하면서 무궁화 한 그루 심는 것 마저도 꺼려온 것은 부인(否認) 못할
엄연한 현실(現實)이다.


일제(日帝)는 민족문화(民族文化)를 송두리채 앗아버리고자, 민족의 혼으로서
독립정신(獨立精神)의 표상이 되어온 무궁화를 갖은 왜곡(歪曲)과 날조(捏造)로서
짓밟아 버리는데 혈안(血眼)이 되어 온 것도 겨레 모두가 겪어온 민족 수난(民族受難)의
역사(歷史)가 아닌가!


심지어는 겨레의 선각자(先覺者)인 한서 남궁억 선생을 무궁화를 보존하고 나라안
곳곳에 보급함을 구실삼아 체포, 구금하여 갖은 탄압과 고통을 일제(日帝)는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일들은 결코 수천년, 수백년이 지난 먼 옛날의 역사가 아니고, 겨우 수십년전의
생생한 민족독립을 위한 항일독립운동 투쟁사(抗日獨立鬪爭史)였다.


오늘에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옷깃을 여미고 새로운 자세로 나라꽃 무궁화 겨레얼
무궁화 정신에 대한 보다 애정어린 인식과 재조명이 있어야 할 줄로 여긴다.


광복과 건국이 되자, 정부(政府)는 정부의 상징으로 무궁화를 선택, 결정하고
관계부처의 령(令)으로 이를 제정, 발표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부등 기관. 단체.
직장마다의 각종 행사에서는 빠짐없이 무궁화가 나라와 겨레 얼의 상징과 표상으로
쓰여져왔으나, 한 그루의 나라꽃 무궁화를 올바르게 알며 심고 가꾸는 일에는 너무나
소홀하였음을 우리로서는 정녕 부끄럽고 수치(羞恥)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루속히 이토록 잘못된 심성을 바로잡아 나라꽃 무궁화를 심고 가꾸며 겨레얼 무궁화
정신을 일상 생활화하는 정신풍토를 굳건히 다져야만 할 것이다.



나라꽃 무궁화의 논쟁



일본의 극심한 압박 아래에서 우리가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갈 때에는 무궁화의
미적(美的) 여부와 또 관상 수목으로서 장단점(長短點)의 유무를 공식적으로 대결해서
토론한 일이 전혀 없었다.


봄철에 제일 먼저 전국 각 도시의 공원과 학교. 군부대. 관공서. 공공기관의 주위에는
어느 곳이든, 온통 벗꽃으로 뒤덮히게 되었는데, 뜻 있는 사람들은 그 꽃이 일본의
국화인 관계로 인해서, 푸짐한 봄 소식을 제일 먼저 안겨다 주는 그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도, 문인이나 학자들이 벚꽃 예찬의 시나 글을 쓴 일이 없었다. 그리고,
벚꽃의 원산지가 우리 나라의 제주도라는 것이 학문적으로 밝혀지면서부터 벗꽃에
대한 저항감을 억지로 달래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일본인으로서는 벚꽃을 일본 무사(武士)의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꽃이라고
해서 그 애호의 열이 식을 줄을 몰랐다. 그런데 우찌무라 간조오(內村鑑三)라는 교수가
공공연하게 사꾸라를 보잘 것 없는 꽃이라고 호되게 깎아내린 일이 있었다. 우찌무라는
독일의 종교 개혁자 루터에 이어서 제2의 종교 개혁을 하였다고 일컬어지는 세계적인
인물로서 군국주의를 극단적으로 배격하고 인류 평화의 길을 높이 부르짖던 인물이다.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전국의 일본인들이 기고 만장하던 시절에
홀로 그 전쟁을 반대하였고, 군벌을 정면으로 비방하였던 경골한(硬骨漢) 이었다.
그는 한때 천황에 대한 불경죄(不敬罪)로 미국에 쫓기어 나가 있기도 하였다.


그가 사꾸라 꽃을 비꼬는 시는 이렇다.



사꾸라


피었네, 피었네, 사꾸라 피었네


일본혼(日本魂)이 피었네


아! 그 아름다움 어찌 다 말로 하랴


피었네, 피었네, 사꾸라 피었네


사흘도 못 가서, 몽땅 떨어져 인축(人蓄)을 먹여 기를 열매 한 개 없고나


피었네, 피었네, 사꾸라 피었네


일본혼이 피었네


그러나 꿈에도 사꾸라 되고 싶지는 않네


밤, 검, 떫은 감도 좋고, 능금, 가시 있는 탱자 따위가 되려네



또 청년들에게 이런 노래도 지어 주었다.



올부터 봄이 오면,


알아 두어라


사꾸라 떨어지는 꼴


배우지 말 것을.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벗꽃(사꾸라)는 일본혼의 상징으로, 특히 활짝 한꺼번에
피었다가 꽃잎이 눈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지는 것을 일본인들이 더없이 좋아한다.
그런데 우찌무라는 사꾸라를 호되게 비꼬았다. 유망한 젊은이 들에게 사꾸라가 지듯이
경박하게 되지 말라고 타일렀다.


속이 얕고, 겉치레만 좋아하고, 꾸준함이 없는 일본 국민에 대하여 온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요란스럽게 피었지만, 사실은 아무 실속없이 허명무실한 사꾸라를 비유로
들어 경고한 것이다.


이 사꾸라 시는 그가 특히 붓으로 써서 유묵집(遺墨集)에도 남아 있게 된 작품이다.


그러나 일본 안에서 누구 한 사람 우찌무라를 반박한 사람도 없었고, 또 그의
시로 인하여 사꾸라의 인기가 떨어진 일도 없었다. 그 당시 일본 국민들은 이 시를
쓴 우찌무라가 일본의 참 애국자이며, 정의의 인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풋나기 문인이 이런 글을 일본의 명치 시대에 썼다면, 아마 남의 손에 죽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호되게 비난을 받아 매장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국화 개정론 (國花 改正論)



우리 나라에서 나라꽃으로서의 무궁화가 좋으니 그르니 하고 글로써 공개 논란되기
시작한 것은 1956년쯤인가 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수도 서울시의 이름을 고치라고 제안하였었다.


자기의 호인 우남시(雩南市)로 고치기를 바라고 그러한 뜻을 밝힌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이 대통령에게 아부하던 그 많은 권력자들 중에서도, 대통령이 직접
주관하는 각의에서도 서울시를 우남시로 하자고 제의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고,
누구나 꿀먹은 벙어리 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서울시의 이름을
바꾸자는 대통령의 공식 담화가 나온 다음에, 국기를 바꾸자느니 무궁화가 국화가
될 수 없다느니 하는 엉뚱한 방향으로 불이 붙어 나갔다.


조동화(趙東華)씨는 한국일보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요지의 의견을 발표하였다.


국기, 국가는 수도의 명칭 같은 정신적인 것이므로 다소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남북 통일 전까지는 그대로 아무 말 않는 것이 상식으로 여겨져 왔으나, 이번 대통령의
담화야말로 이런 불합리한 것들을 공론에 붙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전제하고 나서 무궁화가 국화로 굳어지게 된 이유는 조선 왕조의 상징인
오얏꽃(李化)에 대한 민중의 반감과, 한국이 일본에 병탄(倂呑)된 후에는 일인들이
무궁화재배를 억압하므로 인해서 무궁화가 국화의 위치로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라고
보고, 무궁화가 국화로서 적합하지 못한 점을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다.


첫째, 무궁화의 자생지가 전국적이 못되고 경기. 충남. 전남. 전북. 경북. 황해의
6도에 국한되어 있다.


(정태현(鄭台鉉)저 삼림도감(森林圖鑑)인용.


둘째, 원산지가 인도(印度)이므로 외래 식물이 국화가 될 수 없다.


셋째, 진딧물이 많이 붙고, 꽃이 단명허세(短命虛勢)의 표본으로 인용되고 있다.


넷째, 휴면기가 너무 길고, 봄에 싹이 늦게 돋는 태만한 식물이다. 그리고 꽃잎이
시들어 떨어져서 추하여 화랑(花郞)답지 못하다.


얼마 후에 식물학자 이민재(李敏載)씨가 조선일보에 무궁화가 국화로서 적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궁화가 국화로 지정된 일도 없고,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일도
없는 꽃이라고 하였다. 국화가 될만한 전제 조건으로서 다섯 가지 조목을 제시하였다.


1. 전 국토에 분포할 것.


2. 한국 원산지로 민족을 상징할 수 있을 것.


3. 꽃 모양이 아름다울 것.


4. 민족과 더불어 애환(哀歡)을 함께 했을 것.


5, 다른 식물보다 일찍 필 것 등이다.


그리고 국화의 후보 식물로서 진달래를 들었다. 이민재 씨는 함경북도가 고향인데
서울에 유학하러 오기 전에는 무궁화를 한 번도 본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4월에는 나라꽃 무궁화를 심자.



가정, 군부대, 학교, 마을마다 식수철인 4월에는 나라꽃 무궁화를 심자. 무궁화는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민족과 대한민국을 상징해 왔다. 꽃으로서의 무궁화는 꽃피는
기간이 길고 불사조와 같이 생명력이 강하며 씨앗이나 가지 또는 뿌리를 통해 어떠한
방법으로도 번식이 가능한 꽃나무 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라꽃에 대한 존엄성과 숭고한 민족정신 함양의 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범국민적 보급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그 어느때 보다 나라꽃에 대한
새로운 정신.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함으로써 전진하는 국민총화운동을 전개하려 한다.
나라꽃 무궁화 보급은 전통한국의 역사적 국화보전의 의의가 있으며, 특히 민족 본연의
소박한 아름다움과 우리겨레의 본바탕인 성실과 끈기, 신의와 굳센 의지를 일깨워
주는 범국민운동이 될 것을 나는 확신한다.


무궁화 보급은 또한 우리민족의 창조적 예지를 발휘하는 동기가 될 것이며, 이
운동을 통해 각자의 노력을 총동원하여 세계 속의 새로운 한국화 운동을 우리 다함께
추진해 나아가자.


그리하여 금년에는 삼천리 방방곡곡에 무궁화 화려동산이 되기를 필자는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