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축선(統一軸線)」을 다시 만들자


盧 熙 相 (本誌 主幹)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마차진리 188번지. 위도상으로 38도
선에서 88㎞나 북쪽으로 올라간 곳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북단의 지명이자 [통일전망대]가
위치한 곳의 주소다. 서울 한남동 경부 고속도로 기점에서 승용차로 5시간 걸려 350㎞를
달려야 가볼 수 있는 곳. 군대생활을 해 본 사람이면 옛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아련한
안보의 추억 장소! 대관령을 넘기 전에 속초 쪽으로 가도 좋으련만 필자는 동해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눈에 담아오고 싶다는 욕심을 버릴 수가 없어 허위허위 대관령을
넘었다. 강릉을 지나 오른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동해의 푸른 물은 말 그대로 옥(玉)을
녹여 부어 놓은 듯 파랗게 눈에 와 닿아, 세파에 찌든 머리를 청량하게 해 주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 보고 싶어하는 꿈의 바다였던가. 필자는 가슴 아픈 유월이
오기 전에 한 번 찾아보리라 마음먹고 출발한 것이 백번 잘했다고 몇번이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차를 몰아 일로 북으로 달려 올라갔다. 속초-주문진-간성-고성-거진-대진으로
이어지는 동해안 국도는 북쪽으로 한없이 뻗어 나가다가 민통선에 걸려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곳에서 [통일관광주식회사] 직원의 안내를 받아 8㎞ 쯤 들어가다가 발을 멈추니
[통일전망대]가 눈앞에 들어왔다. 더 이상 북상이 허용되지 않는 곳, 길은 있으되
민간인은 올라가지 못하는 길, 외줄기 [군인의 길]만이 철조망을 따라 가늘게 누워
있어 보는 이의 눈을 아프게 한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동해바다 그 푸른 물이 한눈에
들어오고, 왼편으로는 멀리 해금강(海金剛)의 수려한 자태가 한폭의 산수화처럼 자리잡고
있다.


   지난 84년에 국민의 안보의식을 높일 목적으로 만들어진 통일전망대는
87년에 재향군인회로 이관되어 10년 동안 국민 안보 계도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근년 들어 이곳을 찾는 방문객 수를 보면 94년 128만 명, 95년 140만 명, 96년에
105만 명으로 연평균 120만 여명이 이곳을 찾아와 북쪽을 바라보며 망향의 가슴을
달래고 통일의 열망을 가다듬고 있다. 97년 들어서도 3월말까지 16만 여 명이 찾았다.
필자가 찾아간 4월 중순 토요일에도 가족 단위로 혹은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인하여
한적한 어촌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만큼 이곳은 국가 안보의 산 교육장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더구나 새로 부임한 홍 윤택(洪潤澤) 사장이 전개하고 있는
경영 혁신운동으로 130여 명의 직원들이 어느 때보다도 사기가 올라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 든든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군인처럼 1년 365일 최전선에 근무하고 있는 민간인들,
보수나 대우도 시원찮은 이들이 무슨 힘으로 이런 고생을 감내하고 있을까. 오랜
군생활을 경험한 필자의 눈에도 기이할 정도로 이들의 사명감은 높았다.


   이제는 [통일의 길]로 가다듬어야


   필자가 둘러본 이곳은 국민 안보교육장으로는 최상의 곳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북한땅을 바라보는 장소’로서 그치지 말고, 앞으로는 통일로 나아가는
보다 구체적인 접근로로서의 기능을 중시해야 할 때라는 인식을 강하게 가질 수가
있었다.


   한반도의 통일을 지리 심리적(地理心理的)으로 생각해본다면,
세 개의 축선을 상정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서부축선으로 서울에서 개성 평양을 잇는
경의축선(京義軸線)인 정치축선(政治軸線)이고, 그 다음은 중부전선 백마고지에서
금화-평강-철원에서 원산을 잇는 이른바 경원축선(京元軸線)인 군사축선(軍事軸線)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국토를 종단하는 통일의 열망을 완전히 전략화했다고 볼 수는
없는 문제이다. 그리하여 필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동부축선(東部軸線)이다.
강원도 속초로(束草)로부터 원산(元山)에 이르는 동해안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이
축선은 정치와 군사를 약간 무시하고 민간인들이 북한과 접촉 교류할 수 있는 의미있는
축선이 된다.


   왜 이곳이 가능한가.


   서부의 정치축선은 북한측에서 볼 때는 체제 유지상 매우 취약한
축선이기 때문에 북한으로 하여금 항상 위험 부담을 안고 남북대화에 임하게 압박해왔다.
그러므로 이 축선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몇 번의 인물 교환 외에 별로 없다.


   두 번째 중부지역의 군사축선인 경원축선은 군사적인 긴장으로
인하여 그 가능성이 정치적인 결단 이후에나 가능한 곳이다. 다시 말하면 이 중부축선은
북한군의 붕괴라는 극적인 상황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한반도에서 맨 마지막으로 조성될
군사 대화적인 선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남북간에 정치적인 해결 없이는 민간 간의 교류와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정부의 부분적인 참여와 일부 묵시적인 동조로 이루어질
수 있는 순수 민간 차원의 남북대화나 교류는 없을까? 만약 이 질문에 해 줄 대답이
없다면 우리 민족의 자율적인 남북교류는 언제쯤 어떤 방법으로 가능케 될까. 이
문제는 통일의 단계적 접근을 위하여 매우 의미있는 하나의 민족적 화두(話頭)일
수밖에 없다.


   제3의 통일 축선


   그런 생각의 갈피를 모아 정리해 본 것이 통일의 동부축선-민간교류
축선이다. 지역적으로는 동해안, 북한의 금강산과 남한의 설악산을 잇는 백두대간의
동부로 뻗은 긴 길을 이어서 [민간 차원의 통일로]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 축선의
설정 가능성은 이곳이 6,25 이전에 북한 지역이었고, 국군이 북진하여 수복한 지역이라는
점과 더불어 함경남도 원산과 마주한 최근접 지역이라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이
지역은 해방후 북한 지역에 편입되어 살아본 사람들의 삶의 보금자리이고, 그로 인하여
바로 북쪽에 친 인척을 두고 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지역적 정서가 다른 지역과는
다를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


   아울러 이 동부축선은 주민의 생활 정도가 서부 지역에 비하여
북한에게 큰 충격을 줄 정도로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큰 부담을 느끼지 아니하고 교류에 응할 수 있는, 통일로 가는 데
있어서 인적 물적 지리적 잇점을 지닌 지역이다. 통일이란 어느 한쪽이 심하게 기운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기피하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동부축선은 북한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그들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해 낼 수 있는 유효한 지역이라고 판단된다.
필자는 이 제3의 통일축선인 동부축선을 이용함에 있어서 몇가지 단계적인 접근을
주장하고자 한다.


   1단계로 현재 통일전망대에서 더 북쪽으로 들어간 비무장지대,
이를테면 해금강 주변에 남북 교류의 장을 만들고, 그곳에서 남북 주민들 간에 장을
마련하여 문물교류를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통일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그 장은 5일장을 기본으로하여 전통적인 장마당을 열게 하고, 남북한 양쪽에서는
그 장마당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신청을 받아 허가증을 주도록 하되 그 일을
통일전망대를 관할하는 현지 민간업체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그렇게하여 수년 동안
남북한 통일장을 열어 교류를 확대한 뒤에 보다 구체적인 교류를 위하여, 2단계로
북한의 원산과 속초지역까지 자유 왕래를 허용하여 상업에 종사토록 허용한다면 좋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로 인하여 쌍방은 큰 교역 성과를 올릴 수 있고, 북한 주민에게
자본주의를 학습시킬 아주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앞으로 남북 교류는 정부나 관 중심에서 벗어나 민간 차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상업적
교류를 통할 때 가장 효과가 크다. 그리고 가장 접근이 용이하며 상대방이 취약하다는
인식을 갖지 않도록 하는 지역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해안 중심의 제3의 통일축선의 효용성에 대한 진지한 정책적인 검토와 함께 [통일전망대]의
기능이 발전적으로 재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