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도 법이 있다.


김병렬


   지난 2월 12일 북한의 황장엽 비서가 중국 북경의 한국대사관
영사부를 방문하여 정치적 망명을 요청함으로써 신문지상에 난민, 망명 등의 표현이
자주 쓰이게 되어 이에 대한 독자들의 많은 질문이 있었다. 이번 호에는 이 문제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혼동되는 개념들


   우리가 흔히 혼동하기 쉬운 개념으로 난민(難民), 피난민(避亂民),
망명(亡命), 귀순(歸順) 등의 용어가 있다.


   난민(難民)


   난민(refugee)이라는 개념은 법적인 것으로 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
규정 및 1951년의 난민협약에 ‘그의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에의 소속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한 이유있는 공포 때문에
자기의 국적국(國籍國) 밖에 있는 자 및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 때문에 자국의 보호를 받기를 꺼리는 자, 또는 그러한 사건의 결과로서 일상적인
거소(常居所)를 가지고 있던 국가의 밖에 있는 무국적자(無國籍者)로서 당해 상거소를
가지고 있던 국가에 귀환할 수 없거나 또는 공포 때문에 당해 상거소를 가지고 있던
국가에 귀환하기를 꺼리는 자’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의에 부합된다고
하더라도 접수국 또는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이 난민 판정을 해주어야만이 난민이 되는
것이지 그 이전까지는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하여 대기중인 자에 불과할 뿐 난민은
아니다. 그리고 난민 판정에 있어서 ① 평화에 대한 범죄, 전쟁범죄, 또는 인도(人道)에
대한 범죄를 범한 자, ② 난민으로 접수국에의 입국허가를 받기 전에 접수국 밖에서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를 범한 자, ③ 유엔의 목적과 원칙에 반하는 범죄를 범한 자는
난민의 지위를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1951년 협약 제1조 F) 이러한 난민은 ①
결혼 등과 관련한 인적 지위, ②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고용에의 접근권, ③ 자신의
거주지를 선택할 수 있는 이주의 자유, ④ 여행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는 권리, ⑤
귀화의 은혜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다.


   경제적 이주자


   위의 정의에 의하면 ① 인종, ② 종교, ③ 국적, ④ 특정 사회집단에의
소속, ⑤ 정치적 견해의 5가지 이유로 박해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는 사람만이
난민이 될 수 있다. 만약에 이러한 이유가 아닌 경제적 요인만으로 이주하였다면
그는 경제적 이주자(economic migrant)이지 난민은 아니다. 따라서 경제의 빈곤 또는
일반적인 경제조치(즉 차별없이 전 인구에 적용되는 조치)때문에 국적국을 떠난 자는
그 이유만으로 난민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특정주민의 생존을 파괴하기 위한 경제조치(예컨대,
특정의 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의 교역권의 철회 또는 차별적 과중한 조세)로 인하여
국적국을 떠난 경우에는 난민이 될 수 있다.


   피난민


   피난민(displaced persons)은 ‘전쟁의 포화를 피하기 위하여
고향을 떠난 자’이다. 즉 실향민(失鄕民)과 같은 개념이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국적국민으로서의
지위를 가지며 국적국에 의한 보호를 받는다. 즉 A국과 B국의 무력충돌로 인하여
A국의 국민이 C국의 국경선안으로 들어왔다고 하여도 그들은 A국의 보호를 받는 A국의
국민이지 난민은 아니다. 그러나 B국이 A국을 점령함으로써 A국의 국민이 인종적
박해나 정치적 신념의 차이에 의한 박해를 우려하여 C국으로 넘어왔다면 난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주변상황, 고립상태, 국가안에 만연된 혼란상황 등으로
피난민에 대한 국적국의 보호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국제적인 구호기구에서 피난민을
난민과 동일하게 대우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원칙적으로 법적인 의미에서의 난민이
아니다.


   망명


   국제법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그로티우스(Hugo Grotius)
이래 망명권(asylum)은 정치적 또는 종교적 박해를 받는 자만이 주장할 수 있는 것으로
확립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특정한 국가를 제외하고는 종교의 자유가 부여되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인 박해를 이유로 하는 경우는 많이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망명자는
난민 보다도 좁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망명권은 개인에게 속한 권리라기
보다는 본질적으로 국가와 관련된 권리이다. 19세기 중엽이래로 대부분의 범죄인
인도조약에서 정치범 불인도의 원칙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개인에게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권한이 아니고 해당국가가 인정하는 경우에만 부여되는 것이다. 이때 접수국이
망명신청자의 국적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직접 망명을 허용하지 않고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의
도움(난민 판정)을 받은 후 망명을 허용할 수도 있다.


   귀순


   귀순은 난민이나 망명과는 조금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즉
난민이나 망명이 인도법(人道法)상의 개념이라면 귀순은 무력충돌법상의 개념이다.(무력충돌법도
넓은 의미의 인도법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즉 귀순자(deserter)는 ‘자발적으로 교전
상대국의 수중으로 들어간 자’라는 의미로서 ‘강제적으로 적의 수중에 떨어진 자’
즉 포로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귀순자나 포로는 교전 당사국 상호간의
문제이지 제3국과는 관계가 없는 개념이다. 따라서 북한의 주민이 탈북을 하여 중국이나
러시아에 난민 또는 망명신청을 한 후 한국으로 오기를 원할 경우 중국이나 러시아는(혹은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은) 이들에게 난민의 지위를 인정해 주고 한국으로의 이동을
허가(또는 묵인)하게 되며, 이들이 한국에 입국할 경우 한국정부는 이들을 귀순자로
대우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난민의 지위를
직접 인정해주기 보다는 통상 불법입국자에 대한 제3국 추방의 형식을 취했다)


다음 호에서는 예정대로 무력충돌법의 구성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