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의 職業性 보장없이 國家安保 없다


임복진


   문민정부의 매는 ‘사랑의 매’가 아닌 ‘감정의 매’


   직업군인은 전쟁에 관한한 ‘프로’일 뿐만 아니라 건전한
직업의식으로 무장하여 국민의 신뢰를 받음은 물론, 통일시대에는 북한 동포로부터도
환영받을 수 있는 자질과 품성을 갖추어야 한다. 지금 이점이 소홀히 취급된다면
통일 이후 한반도 전역에서 걷잡을 수 없는 비극적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우리의
중장기 國防人力政策의 방향은 단순히 현재의 軍을 ‘관리’하기 위한 인력 충원의
성격을 벗어나 통일 이후 민족안보를 책임질 자질높은 군인을 양성하는 것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論議의 패러다임 자체에 일대 革新이 요구된다. 군인의 ‘직업성’이 보장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정치.사회적 안정과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는 것이 民軍관계를
이야기하는 모든 論客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軍의 현실은 어떠한가?
대다수의 군인들은 안정된 직업성 보장을 위한 정책적 배려를 받지 못한 채, 무조건적인
충성만을 강요받고 있다. 대다수의 초급간부가 조기전역을 희망함으로써 인력수급에
차질이 빚어지는가 하면, 부대관리에서 조차 많은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평소에 부대관리조차 안되고 지휘통솔에 어려움이 산재한 軍이 과연 전쟁을 치룰
수 있겠는가? 입으로는 국가안보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안일한 정책만 고수하는 文民政府는 깊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文民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軍內 私組織 척결’과 ‘정치군인 숙정’이라는 정치
이벤트의 무대로써 軍을 활용하는데만 집착하였다. 직업군인의 사명감과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조치들은 무시됨으로써 文民政府의 매는 ‘사랑의 매’가 아닌 ‘감정의
매’가 되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총체적인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 안보정책의 二重性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軍의 하부구조 시급히 강화해야


   軍의 전력자원은‘인간’과 ‘무기’이다. 우리 국방정책은
경제와 산업수준에 비해 많은 무기를 도입하면서도 인력관리와 양성은 방치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아무리 좋은 무기가 많더라도 이를 다루는 사람이 부실하다면 무기가 제
성능을 발휘할 리 없다. 수백문에 달하는 발칸포가 배치 후 제 수명도 다하지 못하고
관리부실로 못쓰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불란서제 미스트랄 지대공 미사일은
배치 후에도 다룰 줄 아는 전문인력을 양성하지 못해 창고 속에서 수년을 썩었다.
한국의 전차부대는 조종수가 대부분 징집된 사병인데도 불구하고 직업군인이 조종수인
독일의 전차부대보다 운영비가 더 많이 들어간다. 우리 전차부대는 사병들의 오조작으로
전차가 자주 고장나는 데 반해 독일에서는 그런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관리가 안되고 있다. 직접 장비를 다루고 함정에 승선하는 등 궂은 일에 종사하는
전투요원들이 빈약하고 부실하다면 21세기를 향한 과학군, 선진군 건설은 공염불일
뿐이다. 특히 우리 군의 하부구조라 할 수 있는 직업군인, 초급간부의 실상을 눈여겨
본다면 우리의 국방이 자칫 ‘모래 위의 城’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들의 열악한
생활상과, 군복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회의 軍에 대한 통념은 또다른 ‘安保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대표적인 것만 살펴보면, 초급간부의 48%가 생활, 문화, 교육
등 모든 환경이 불비한 격오지에서 생활하고 있고, 연중 근무시간의 63%가 비상대기,
훈련, 철야로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불가능하며, 결혼한 군인의 20%가 별거하고 있다.
10년 근무하는 동안 평균 8번을 이사해야 하고, 군인자녀는 평균 3번을 전학해야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 사명감 하나로 버티기에는 월급봉투가
너무 초라하다. 평균 보수수준은 사회의 70%이나 실제 체감되는 생활수준은 사회의
60%도 되지 않을 것이다. 장교의 60%, 하사관의 74%가 전역을 희망하고 있다. 우리
軍의 하부구조가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軍의 ‘허리’에 해당되며 전체
군 간부의 54%를 차지하는 하사관의 경우는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10년 근속자를
기준으로 자가 보유한 하사관은 47%에 불과하며, 보수수준이 사회의 62%에 불과하다.
조기에 전역한다 하더라도 하사관의 취업율은 23%밖에 안되며 취직되더라도 보수수준이
낮은 생산직이 대부분이다. 우리 軍 장병들의 ‘삶의 질’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는
실정을 방치한 채, 군 紀綱 확립을 부르짖고 안보태세 강화를 강조한다고 해서 과연
국가안보가 증진될 것인가?


   전근대적 신분구조를 철폐해야


   하사관을 비롯한 초급간부에게 직업의 가치와 일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책임과 권한의 배분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군의 인력구조는 사실상 이와는 배치되고 있다. 우리 軍의 인력구조는 과거 일본군의
전통을 답습한 신분제 사회의 특성을 아직도 내포하고 있다. 우선 ‘下士官’이라는
명칭 자체가 그렇다. 미국에서는 하사관의 의미가 ‘준장교’, 또는 ‘장교가 되기
前 과정’이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그러나 ‘아래 下’字를 쓰는 우리의 하사관 개념은
장교보다 아랫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하며 평생을 장교의 머슴처럼 부림을 당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또한 장교-하사관의 보수격차 역시 심각한데, 장교초임에 비해 하사관
초임은 85%, 10년 근속자는 69%, 20년 근속자는 71%로 하사관은 오래 근속하면 할수록
장교와 격차가 심화된다. 이와 같은 신분제적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명칭을 ‘管理官’으로
바꾸고 부대관리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대폭 이양한다면 이들의 직업성은 대폭 증진될
것이다. 전군의 원사, 상사, 중사 5만 명에게 부대관리의 책임을 부여하며 별도의
관리수당을 지급한다면 장교와의 보수격차도 줄고 신분적 격차도 상당부분 완화될
것이다. 현 국방예산 내에서도 이들에게 월10만원씩, 총 6백억 원의 재원을 염출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렇게 함으로써 장교는 보다 전술적인 연구에 치중하고
하사관은 부대관리에 전념하는 역할분담이 이루어져 수평적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유지하면 전투력은 더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 여러 가지 생활적 여건을 개선하는 일도 시급하나 무엇보다
직업을 통한 ‘자기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스로우는 인간이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는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서 자아존중과
자아실현 등 사회적인 욕구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피라밋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았다.
필자는 자아실현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배움의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본다. 이제는
軍도 자체에 권위있는 대학을 하나 갖는 것이 필요한 단계이다. 그러나 軍은 여기에
대해 검토한 바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軍에 와서 학사, 석사 학위도 취득할 수
있는 여건이 되고 군인과 군인자녀 누구든지 다닐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한다면 직업성은
획기적으로 증진될 것이다. 지금껏 軍은 소수의 군 장교 양성만을 위한 교육기관을
운영해왔고, 여기에서의 학문풍토 역시 사회와 많은 차별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육군사관학교가 본고사를 위주로 하는 대학입시에서 현 고등학생에 적합한 본고사
문제를 출제할 능력이 없어 외부 교수를 초빙하는 지경에 이르렀겠는가? 미8군 영내에서
운영되는 대학은 이 정도로 사회와 격리된 지식만을 가르치지 않는다.


   변화할 줄 모르는 軍


   軍이 이토록 어려움이 가중되고 우리 軍의 지휘통솔 방식이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 지금은 외형적 전력지수는 높아졌을지 모르나 무형전력은 약화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무형전투력의 구성요소인 지휘.통솔능력, 사기 및 군기, 교육,
훈련 수준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군이 변화할 줄 모른다면
역동적인 21세기 안보환경에서 생존을 위한 창의적인 국방전략은 수립될 수 없다.
軍에서도 하사관이란 용어를 없애겠다고 95년부터 대국민 약속을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여태껏 연구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한때 말장난에 불과했던 일이다. 최근 몇 년
동안에 부쩍 많아진 <종합복지대책>이니, <개선대책>이니 하는 것도
사실 군 사기·복지 ‘증진’을 위한 대책이라기 보다는 사기·복지가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특히 이런 대책들은 대형 군기사고가 터졌을 때
남발되는 경향이 짙다.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이 부재하고 근본적인 발상의 변화가
없이 그때 그때의 미봉책으로 일관해옴으로써, 오늘날 軍은 심각한 동맥경화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 아닌가?


   변화를 두려워하고 변화를 주도할 리더쉽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최고 정책결정자로부터 군 수뇌부에 이르기까지 이런 풍조는 깊이 만연되어 있다.
더 이상 안일한 정책이 용납될 수 없도록 군장병 스스로가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인식은 선거를 통해 정치집단에 전달될 수도 있고,
군 수뇌부로 하여금 새로운 조치를 강제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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