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韓 軍備競爭 比較
신영진
남.북한의 군사력 증강과정을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첫째, 남.북한간 군비경쟁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며, 둘째, 왜 그같은 경쟁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가를 분석함으로써, 남.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南.北間 軍費競爭을 比較한다.
한반도는 1945년에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 해방의 기쁨을
충분히 맛보기도 전에 분단의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이후 지난 50여년 동안
한반도에서는 끊임없는 군사화 과정이 전개되어 왔으며 그 첨예화된 표현이 한반도의
군비경쟁이었다. 이러한 군비경쟁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심화시켜 나갔으며 또한
분단체제의 모순을 더욱 강화시켰다.
따라서 한반도에서의 진정한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남.북한간의
군비경쟁에 대한 철저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남.북한간의 군사문제에 대한
기왕의 국내외의 연구들은 그 대부분이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을 위한 공격적인 군비증강과
그로부터 제기되는 한국의 안보적 위협의 증대라는 측면에서 그 분석의 초점들이
두어져 왔음에 따라 한국의 군사력에 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극히 희소한 실정이며,
더우기 그동안 한국의 세부적인 군사력 현황이 비밀로 취급된 부분이 많고 또한 우리
군사력의 노출이라는 문제 등으로 한국의 군사력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극히
稀少한 실정이었다. 더우기 남.북한의 군사력 증강과정을 총체적인 脈絡에서 眺望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1) 다만 국방부와 각군 본부 또는 국토통일원에서 발간한
국방관계 공간 책자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남.북한간의 군사적 문제에 대한 포괄적이고 객관적이며 체계적인 검토와 평가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硏究는 이러한 시각에서 벗어나 남.북한의 군사력 증강과정을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검토하여, 첫째, 남.북한간 군비경쟁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이며,
둘째, 왜 그같은 경쟁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가를 분석함으로써, 남.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 연구에 활용된 자료 즉, 남.북한의
군사력에 관한 자료들은 상대방에게 노출 시키지 않으려는 자세로 인하여 그 정확성에
한계를 가진다. 물론 본 연구가 비밀 연구서로 작성이 된다면 문제는 없으나 평문으로
작성되기 때문에 자료의 정확성에 상당한 한계를 부과하는 제약 요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평문으로 작성된 국방사(1.2.3집), 국방백서(1988년부터
매년 발간), 평문의 各軍 部隊史,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매년 발간하고
있는 Military Balance와 스톡홀름에서 발간하고 있는 SIPRI Yearbook에 나타난 무기
이전에 관한 자료, 기타 각종 신문, 잡지 등 제반 국내외 자료들을 종합하였다. 공개된
이들 평문 자료들중 일부는 기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비문자료와 공개된
일반자료간에는 얼마간의 오차가 있으나 40여 년간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추세’를
분석하는 데는 그런대로 타당성이 있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北韓의 軍事力 增强過程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정을 살펴 볼 때, 그들은 지속적인 군사력
증강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증강의 단계를 구분짓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증강의 과정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연속적인 증강의 과정속에서도
대략 네(4)번에 걸쳐 집중적으로 증강의 시기를 분별하여 볼 수 있다. 즉, 북한의
군사력은 1953년 7월 停戰 이후 舊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전후 복구를 실시하고2)
駐北韓 中共軍의 북한으로부터 撤收에 따라 1956년이후, 특히 1958년부터 전후 최초의
물량적 擴張이 이루어졌으며,
이와 같은 戰後 集中的인 軍事力 增强은 1960년에 一段落되고
있다. 그 후 북한의 군사력은 1964년까지 별다른 증강을 나타내고 있지 않고 있다가
1965년을 起点으로 다시 증강을 가속화시켜 1975년경에 군사력 증강의 단계를 단락지우고
있다. 그후 북한의 군사력은 현재까지 빠른 속도로 물량적 팽장을 지속하고 있으나,
1985년 이후 북한의 군사력은 같은 증강의 脈絡속에서도 또 한번의 가속적 증강을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네번에 걸친 집중적인 증강의 시기마다 북한의 군사력은
그 形態와 수준에서 각기 다른 발전의 단계를 거쳐왔다. 本 章에서는 이들 네번의
시기를 중심으로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정을 다음과 같은 네개의 단계로 구분짓고,
각 단계별 증강 상황과 이에 관련된 배경 요인들을 분석 고찰하고자 한다. 第1期
(1953.7-1960): 戰後 基本 軍事體制 整備段階 第2期 (1961-1975): 攻擊型 戰力基盤
造成段階 第3期 (1976-1984): 攻擊型 戰力體系 轉換段階 第4期: (1985-1993): 攻擊型
戰力體系 强化段階
第1期(1953.7 - 1960):
戰後 基本 軍事體制
整備段階
北韓의 軍事力은, 1953년 7월 停戰協定調印 以後 1960년까지
약 7년간의 기간은 3년간의 戰爭으로 인해 거의 완전히 괴멸된 軍 組織의 整備와
戰鬪力의 再構成을 위한 기본적인 物量的 基盤의 造成이 추구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있어서 北韓 軍事力의 변화를 살펴보면 대체로 전후 1956년까지는 주로 병력수준의
조정 및 군사조직의 재편성 등 軍隊의 기본적인 體制整備가 이루어졌고, 장비증강은
주로 소련에 의존하여 이루어 졌으며, 특히 1958년부터는 중공으로부터 집중적으로
이루졌다.
이 기간중의 구체적 軍事力 增强內譯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이 기간중의 총병력의 수준은 도표 #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休戰後 2년간의
급속한 증가와 1956년의 감축, 그리고 그 이후 대략 1960년까지 감축된 규모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도표 #1 北韓의 總兵力 變化(1953-1960)년도1953.719541955195619571958
인원275380450370380383 단위: 천명 資料: 國防大學院(譯), 戰後世界軍事資料(1945-1969),
1982, p. 375. 防衛年鑑刊行會, 防衛年鑑, 東京,1957,P.461 防衛年鑑, 1958, P.483
1959, P.440, 1960, P.444
1958년 이후 기간 말까지 北韓의 總兵力은 대략 38만명에서
40만명 선을 유지하고 있으며, 休戰 이후 韓國의 兵力이 대략 60만--65만명 수준이었음에
비추어 보면, 이 시기에 있어서 北韓의 總兵力 水準은 韓國의 70%미만을 유지하는데
머무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58년 北韓 駐屯 中共軍의 완전 철수로 休戰線을
전부 北韓軍이 담당하게 됨에 따라 1956년 해체되었던 일부 部隊를 재편성, 편제상으로는
韓國과 대등한 18-20개 師團을 유지하는 한편,3) 1959년 1월 4일 勞動黨 군사부 예하에
약 40만명의 勞農赤衛隊를 창설하여 韓國에 대한 병력상의 열세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러나 正規軍 총 兵力 규모에는 별다른 변동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간중 장비 증강을 살펴보면, 우선 地上戰力의 중심을 구성하고
있는 戰車는 1956년까지 대략 450대 수준으로 전후 별다른 증가가 없었으나, 1956년부터
1958년사이에 약 140대 이상이 증가되어 585대로 강화되었고, 기간말인 1960년에는
대략 600대 수준을 확보하고 있다.
地上火力에 있어서는 1956년까지 주로 박격포, 대공포 등 소구경
화포의 증가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1956년 이후 대구경 화포의 집중적 증가를 보였다.
1960년 10월 26일 북한 군사력에 관한 한국 정보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북한은 2,513문의 야포와 916문의 고사포, 그리고 1,220문의 박격포를 보유하고
있으며,4) 특히 핵탄두를 발사할 수 있는 203밀리 포와 200밀리 로켓포 등 장거리
대구경 화포를 휴전선 일대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5) 또한 前線 전지역에 걸쳐
고사포를 집중 배치하여 대공화력을 상당히 강화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6)
이 시기에 있어서 북한 지상화력은 주로 1956년에서 1960년사이에 기갑력과 화력에
있어서 일단 숫적(數的) 규모의 확충이 이루어 졌으며 결과적으로 지상화력에 있어서
전쟁전 보다 훨씬 강화된 무장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도표#2 참조)
도표 #2 戰爭 前後 北韓의 地上戰力 比較 구 분1950.6 1953.71960
병력196,680명275,000명383,000명 화포(75밀리 이상)472문1,050문2,513문 대공포(37밀리
이상)36문619문916문 전 차T-34(242대)450대600대 SU-76(176대)(SU-76 포함) 자료:
육군본부, 북괴 4반세기 분석, 1972,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요약), 1986
동아일보, 1960년 10월 26일 북한문제연구소, 북한군사론, 1978,P.278
다음 전후 북한의 해군력은 1956년 減軍을 통한 군의 체제정비가
완료된 직후부터 본격적인 체제정비가 시작되고 있다. 또한 아래 도표 #3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이, 중공 및 소련으로부터 도입된 장비의 내역을 볼때, 전후 7년간 북한의
해군력은 사실상 지상군보다 집중적으로 강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도표 #3 戰後 北韓의 海軍 裝備 導入 內譯 구 분 수량(척)
명칭비고 년 도 19544경비정소련제 1954-19568소해함소련제 195612어뢰정소련제 1957-196024소해정(연안)중공제
19592경비정소련제 계50 자료: SIPRI: Arms Trade Registers: Arms Trade with the
Third World, 1975, pp,10-11.
결과적으로 휴전 당시 소형 함정 수십척에 총 2,500톤에 불과
했던 북한의 해군력은 기간말경에는 140여척에 18,000톤으로 증강되었다.7) 기간중
도입장비의 내용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바와 같이 대체적으로 북한의 해군력은 주로
小艦 위주의 전력구조를 指向하고 있었으며, 특히 이 시기에는 공격함 보다는 어뢰정과
소해함(정)을 중심으로 하는 연안 경비능력의 보강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56년에서 1959년사이에 도입된 소련 함정들은 당시로서는 현대식
함정들로서 한국 해군이 1963년에 가서야 처음으로 현대식 함정을 도입한데 비해
북한 해군의 현대화는 한국보다 앞서고 있었다.8) 한편 이 시기에 있어서 북한 군사력중
가장 집중으로 강화시킨 부문은 공군력 분야다.
도표 #4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북한의 육.해군 전력강화가 1956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데 비해, 북한의 공군력 강화는 휴전 직후부터 추진되었다. 도표
#4 北韓의 空軍 裝備 導入 內譯(1953-1960) 구 분 수 량 장 비 명 비 고 년 도 1953100대MIG-15
5대IL-28 70대La-11소련제 2대IL-28U 15대Yak-17Uti 15대MIG-15Uti 1954 10대Yak-11소련제
1955 30대IL-28〃 1956-1958100대MIG-17〃 1957 4대Fong Shou No2중공제 1958 80대MIG-15
중공에서 제공 1958-1959 40대IL-28〃 4대IL-28U〃 20대ShenYang(Yak-18)〃 1958-1960300대ShenYang
F-4 MIG-17의 중공 모델 1959-1960 20대MIG-19 중공에서 제공 자료: SIPRI: Arms
Trade Registers: The Arms Trade with the Third World, 1975, pp.10-12.
이와 같이 집중적인 강화 결과 전후 거의 완벽하게 괴멸되었던
북한의 공군력은 1960년에 이르러 약 990대 이상의 항공기를 보유하게 되었다.9)
그리고 당시 증강된 공군기들은 MIG-15/17 그리고 MIG-19 등 600기 이상의 제트 전투기와
IL-28을 주종으로 하는 경전폭기 130기 등 당시 기술 수준에서 거의 최신형의 전폭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10) 따라서 이 시기의 북한 공군력의 증강은 숫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대폭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전후 최초의 군사력 증강 단계인 이 시기에 있어서
북한의 군사력 증강은 병력의 규모에 비해 군사장비에 보다 치중된 것이었으며, 지상군에서는
기갑과 화력, 해군력에 있어서는 小艦 위주의 연안 방어능력, 그리고 공군력에 있어서는
양적, 질적으로 압도적인 對南 우위를 달성함으로써 戰後 최초의 증강단계에서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있으며, 특히 공군력에 있어서는 현격한 양적, 질적인
우위를 확보하여 이후 남.북한간의 군사력 균형의 기본적 형태를 결정지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까지 조성된 북한의 군사력의 형태 및 규모를 한국과
비교해 볼 때, 북한이 이 기간중의 집중적인 증강을 통해 일단 전반적인 戰力 要素上의
숫적 우세를 확보하고 있음은 사실이나, 그 절대적 규모나, 병력상의 현격한 對南
劣勢, 육.해.공군간의 전력구조상의 불균형 등 전반적인 전력구조의 측면에서 공격이나
방어 등 특정한 전술적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 전력 수준에 도달했었다고는 볼 수
없다. 또한 북한의 군사력이 전반적인 對南 우위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분적으로는
한국의 중요한 전력 증강에 反應치 못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 시기의 북한 군사력
증강의 제한적 측면을 나태내고 있다. 즉, 주한 미군은 1959년부터 어네스트 존(Honest
John)地對地 미사일 등 전략적 차원의 장비를 한국에 배치하였으나 북한이 이에 상응할
만한 地對地 미사일을 보유하게 된 것은 1971년에 가서였다.11)
결국 휴전후 1960년까지 북한의 군사력 增强樣相은 전체적으로
볼 때, 주요 군사력 구성요소 전반에 걸처 대남 우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具現된 군사력의 수준은 전쟁으로 괴멸된 군사체제의 정비와 전투력의 재구성을
위한 기본적인 물량적 기반의 조성이라는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第2期(1961-1975):
攻擊型 戰力基盤 造成段階
휴전 이후 대략 1960년까지 전후 일차적인 전력체계의 재정비를
끝낸 북한의 군사력은 1962년 4대 군사노선의 표명 등 군사력 강화에 대한 명백한
정책적 의지의 표명에도 불구하고, 1965년 이전까지 약 4-5년간 별다른 증강을 보이지
않은 채 소강 상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1965년 이후 부터 북한의 군사력은 육.해.공군력
전반에 걸쳐 또 한번의 집중적인 강화가 나타나고 있으며, 1965년부터 증강하기 시작하여
이후 약 10년간에 걸쳐 이어졌으며 대략 1975년경에 일단락되고 있다. 이 기간동안
북한의 군사력 증강양상의 특징은 이전까지 구축된 기초적인 물량적 기반을 보다
확충하는 한편, 육.해.공군간의 전력구조상의 균형과 체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며, 이로 인한 전반적인 전력의 강화와 함께 期間 末頃부터 부분적으로 공격능력의
강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북한의 총병력 규모는 도표 #5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기간 초기에는 계속 40만명 이하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60년대 중반 이후 점차
병력 수준의 증가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이에 따라 1965년까지 35만명으로 한국의
60만명에 비해 25만명 정도의 열세였으나. 이 기간중 계속 병력을 증가하여 1975년에는
46만여 명으로 한국과의 병력 차이를 14만여 명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한편, 병력규모와 관련하여 북한의 지상전력에 있어서의 특징적
변화는 60년대 중반 이후 특수전 병력의 급속한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1966년 124군부대의
창설을 시작으로 북한은 특수전 전문부대를 육성하기 시작하였으며, 1968년 이후
각종 특수부대를 특수8군단에 통합하였다.12) 이같은 특수전 전담병력은 1971년에
2개여단 규모의 특수8군단과 전방 각 군단에 소속되어 있는 24개 경보병 부대으로
편성되어 총 3만 5천여 명 수준에 도달하였으며, 1974년에는 5만 9천여 명으로 증가되었다.13)
다음 이 기간중 북한의 지상전력은 기갑전력과 화력에 있어서
약 2배가량의 증강을 보이고 있다. 1950년대 후반 이후, 약 500대 수준을 유지해오던
전차는 1966년부터 1968년까지 경전차로 분류할 수 있는 PT-76, 150대가 도입되었으며,
1967년부터 1970사이에 T-54/55, 320대가 도입되었다.14) 그리고 1972년부터 1973년
사이에 T-55, 50대가 추가 도입되었으며,15) 1974년에는 數未詳의 T-59 전차가 도입되었고,
1975년에는 T-62, 50대가 도입되었다.16) 따라서 기간말인 1975년에 북한의 전차
보유대수는 1,100대 수준으로 강화되었다.17) 또한, 화포 역시 각종 곡사포 및 평사포를
포함하여 1950년대 후반 이후 약 2,500문 수준에서 1965년 이후 약 3,000문 수준으로
증강되었다. 특히 1960년대 중.후반 ZSU-57 등 자주포를 강화하고 있으며, 화포는
大口徑砲가 강화되고 있다.18)
해군력에 있어서는 도표 #6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역시 1965년
이후, 특히, 1967년 이후 1975년까지 최신 장비가 더 집중적으로 도입되었다.
도표 #6 北韓의 海上武器 導入 內譯(1961-1975) 구 분 수 량
TYPE명 칭 비 고 년 도 19632T-43소해정소련제 9P-4어뢰정〃 2W잠수함〃 7MGR포 함〃
19673PTF어뢰정〃 4Shanghai경비정중공제 18P-4어뢰정소련제 19684PTG포 함〃 1971-197214OSA,KORMA급경비정〃
1972-19732W급잠수함〃 19732Romeo-L급〃 중공과 합작 19742〃〃〃 19753〃〃중공제
자료: SIPRI, Arms Trade Registers, pp.10-11 SIPRI, Yearbook, 1972-1976. 상기
도입장비의 내역을 보면 우선 드러나는 특징은 잠수함전력의 증강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967년에 w급 잠수함 2척, 1972-1973에 역시 w급 2척 그리고 1973년과
1974년에 Romeo-L급 2척씩 계4척 그리고 1975년에 Romeo-L급 3척이 도입되어 기간중
총 11척의 잠수함이 도입되었다. 북한은 6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잠수함
전력을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이같은 초계용 형태의 소형 잠수함 10척정도의 보유만으로
북한 군사력의 전력구조가 공격형 전력체계로 전환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한국의 補給線이 궁극적으로 해상 루트에 의존해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이 기간중 강화하기 시작한 북한의 잠수함 전력이 한국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심리적, 그리고 실질적 위협을 가중시키는 것이였음은 사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간중 북한의 해군력은 1960년까지 대체로 정비된 기본 전력체계를 바탕으로
잠수함, 소형 고속함정 등를 집중적으로 보강, 전체적으로 보아 기본적인 해상방어
능력을 구비하고 있었으며, 의도에 따라서는 부분적인 공격능력도 발휘할 수 있는
전력수준과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기간중 북한의 공군력은 도표 #7에서 보는 바와
같이 100대 이상의 MIG-21과 28대의 SU-7의 도입으로 전후 또 한번의 전력 증강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도표#7 北韓의 航空機 導入 內譯(1960-1970) 1965년: MIG-21
FL: 14대 IL-14 : 15대 MIG-21UTI: 3대 1966년: MIG-21 : 21대 MI-4(Hel): 20대 1965-
1966년: AN-2 : 5대 1965- 1968년: SU-100 : 100대 1968- 1971년: MIG-21 : 65대
SU-7 FGA : 28대 자료: SIPRI, Arms Trade Registers,1975, p.11.
이러한 도입 내역중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시기에 북한 전투기의
超音速化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AAM(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여 항공전력의
현대화가 진전되었 다는 점과 수송기 분야에서의 전력증강이다. 특히 AN-2기의 경우
1970년대 초까지 대략 20-30대 정도의 수준을 유지하여 왔으나 1972년을 고비로 급속히
증강되어 1975년에는 150대로 증강되고 있다.19) 이 AN-2기의 증강은 60년대 이후
강화되기 시작한 북한의 특수전 전력과 함께 한국에 대해 상당한 위협 요소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있어서 북한의 군사력에는 다음과 같은 유도무기가
도입. 배치되었다. 이들 유도무기중 SA-2/7 등의 SAM은 한국의 F-5/4 도입에 대한
대응의 일면이라고 볼 수 있으나, FROG-5/7 등은 실상 한반도라는 전장의 규모를
고려할 때, 전략적 차원의 공격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표#8 北韓의 誘導武器 導入 內譯 1966년 : SA-2 SAM; 360대
1971년 : FROG-5 SSM ; 40대 1972- 1973년 : SA-7 SAM; 200대 FROG-7; 20대 자료:
SIPRI, Arms Trade Registers,1975, p.11.
결과적으로, 1965년 이후 대략 1975년까지 약 10년간에 걸쳐
전후 2번째로 시도되고 있는 집중적인 군사력 증강은 전체적으로 볼때, 군사력의
전반적인 체계적 강화와 함께 부분적으로 공격력의 강화가 추진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기간중 북한의 군사력은 한반도 군사력 균형에서 가장 중요한
공군력에서의 停滯 등 으로 보아 한국에 대한 공격능력을 확보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유일하게 한국에 대한 열세를 나타내고 있었던 병력의 강화,
해상전력에서의 잠수함 및 고속 미사일 등의 강화, 그리고 공군력에서의 AN/2기,
헬기 등의 증강 및 FROG-5/-7 등의 유도무기의 대량 도입 등은 제한된 수준에서나마
공격능력의 강화가 부분적으로 시작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