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김덕홍 주요 진술내용

황장엽·김덕홍의 안기부 진술내용 공개  

1. 개요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황장엽 (74세)과 북한 여광무역연합 총회사 총사장 김덕홍(58세)은 97. 2.12 우리 북경대사관 영사부에 들어와 망명을 요청하였다.  
■이들은 우리 북경 영사부에서 34일간 머무르다가 3.18 필리핀 ‘바기오’지역으로 옮겨 33일간 체류한 후 4.20 필리핀 특별기편으로 서울에 도착하였다.  
■국내입국 이후 이들은 안기부가 마련한 안가에서 생활하면서 조사에 적극 협조해 왔으며 동창·지인·귀순자 등 외부인사를 면담하고 국내산업시설과 시장·백화점 등 생활현장도 참관하였다.  
■안기부는 이들에 대한 완벽한 신변보호 조치를 강구한 가운데 북한의 전쟁준비 실상 및 정치·경제 등 각 분야에 대해 신문을 실시하는 한편 국민들의 의혹사항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를 실시해 왔다.  
■황장엽과 김덕홍의 향후 활동문제와 관련 정부는  - 기본적으로는 ‘북한이탈 주민보호 및 정착지원법’의 규정을 기준으로 하여 본인의 능  력과 기여정도에 따라 대우하면서 필요한 지원을 하게 될 것이며 - 통일에 기여하겠다는 본인들의 희망에 따라 연구에 전념토록 배려하면서 대한민국 국  민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해 나갈 계획이다.
다음은 황장엽 비서와 김덕홍 사장이 안기부에서 진술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1. 북한의 전쟁준비 동향  

가. 전쟁준비 관련사항  

(1) 김정일의 전쟁관 및 전쟁 의지  
<김정일의 전쟁관>
■김정일은 군대가 많고 수십년간 전쟁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전쟁을 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한국군을 겁내지 않고 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50%밖에 독립시키지 못했다면서 자기대에는 무조건 무력통일시키겠다고 하며 “통일조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적 야욕을 가지고 있다.
■북한은 전쟁을 6개월 이상 끌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물자를 6개월분만 비축하고 있다. - 북한 특수부대원들에게 한국군 군복을 입혀 북측지역에 침투한 것으로 위장한 후 한국군이 먼저 도발했다면서 서울에 5-6분 동안 포를 쏘아 잿가루로 만든 다음 미군이 증원되기 전에 부산까지 밀고 내려가고 - 미국이 개입하려 할 경우 동경 등 몇개 일본도시를 미사일로 타격하여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개입을 저지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김정일의 전쟁 의지>
■김정일이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70년대 초부터 모든 부서는 전쟁준비에 주력하도록 해왔으며 특히 91. 12 김정일이 최고사령관이 된 이후에는 전쟁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김일성 사망이후 김정일은 수시로 “조국통일의 주력은 군대다. 믿을 것은 군대뿐이다. 모든 힘을 다해 군대를 지원하라”는 지시를 수시 하달하는 등 오직 전쟁준비에 광분해 왔다.
■김정일을 포함한 지휘부는 전쟁시 승리를 100% 확신하고 있으며 일반 주민들은 남한군을 ‘허재비’ (허수아비)로 인식하고 있다.
■김정일은 “북한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북한이 망하게 되면 세계와 함께 자폭하겠다”고 극언하였다.
■북한의 김정일 및 당·정·군 고위간부들을 경제력 등은 남한이 월등하나 군사력은 북한이 우세하여 외부간섭(미국)만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한편 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차라리 전쟁이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2) 전쟁준비 실태  
■62.10 쿠바사태시 김정일은 “형님 지갑돈은 내 지갑돈만 못하다. 항상 내지갑에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쟁준비를 시작,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한다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김정일은 64년 김일성 대학을 졸업한 후 국방건설 현장을 돌아 다니면서 직접 지휘하였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군사분야에 관여해 왔다.
■북한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무기생산은 100% 자체 해결하고 있고 전투헬기·미사일·방사포도 대대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63년 김일성을 수행, 평강지구 (5군단 사령부)를 방문했는데 갱도에서 모든생활이 가능하고 대포출입이 가능케 되어있는 등 완전 지하 요새화가 되어 있었다.
■산업분야의 전기공급이 아무리 부족해도 지하군사시설에 사용되는 전력은 절대로 다른 곳에 전용할 수 없다. 쪹평양근교 지하 군사시설의 경우 조명·급수·환기 장치 등이 완비되어 있다.
■92년 창군 60주년 군사퍼레이드시에 본 모든 장비는 자행식(自行式)이었으며, 군내에서는 남한을 3번 “잿가루”로 만들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한다.
■북한의 특수전 부대들은 부대별로 남한내 미사일기지·공항등 주요 전략시설에 대한 타격목표를 선정해놓고 있으며 유사시 항공육전대(공수부대)나 쾌속정으로 들어가서 타격하도록 되어 있다.
■중앙당 간부를 비롯 전 주민들은 군대에 ‘헌납미’를 바치는 등 적극 지원하고 있으며 중앙당에서 군에 대한 간부들의 지원실적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지원활동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3) 전쟁 도발 시기  
■과거 북한이 도발의 호기라고 보았던 시기는 ‘4.19’라고 생각하였으나 소련과 중국이 반대했으며 또한 전쟁복구 건설이 겨우 끝난시기였기 때문에 내려오지 못했으며 지금은 대선문제로 상당히 노리고 있을 것이다.
■한편 전쟁위기가 높았던 시기는 푸에블로호 사건 (68.1)·EC-121 격추사건 (69.4)·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76.8)때로서 주민들을 모두 소개시킨 채 ‘들어오면 하겠다’는 분위기여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았다.
■미국과 중국의 태도가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정정이 더 혼란상태에 빠지는 때가 도발의 최적 시기가 될 것이며 남한내 지하조직을 이용, 혼란을 조성하는 한편 미국의 군사력이 여타 분쟁지역으로 몰린 때 도발할 것으로 예상한다.
■김정일을 비롯한 지도부는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민심도 불안해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믿을것은 무력밖에 없기 때문에 전쟁이외에는 출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4) 전쟁지휘 체계 및 군사 전략·전술  
■전쟁 지휘체계는 종래‘김일성쭭인민무력부장쭭총정치국장쭭총참모총장’체계로 되어 있었으나 김일성 사망이후에는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김정일쭭총참모부 작전국장’으로 바로 지시가 내려갈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등 김정일의 독단적 명령에 의해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
■북한은 전쟁 발발시 평시체제를 그대로 전시에 적용하는 전시형 국가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별도의 전쟁지휘 기구가 필요없음
■북한의 전쟁 시나리오는 ‘전격전‘전략에 입각, 십수만명의 특수부대원을 사전에 투입시켜 미사일 기지·비행장 등 주요시설을 타격하는데 이어 기동전을 통해 남한전역을 장악한다는 것다.
■특히 김일성 사후 미사일·방사포 등 화력을 통해 단시간내 서울을 비록한 전략지대를 타격·파괴시킨후 협상을 추진한다는 전법을 세워두고 있다.
■김일성은 김일성 사망 2년전에 최고사령부 ‘작전조’와 함께 남침 시나리오를 작성하였으며, 동 시나리오를 본 군 지휘관들이 당장 실천에 옮기자고 하였으나 김일성이 인민생활부터 먼저 해결한 다음에 해야 한다면서 유보하였다.
■전쟁이전 단계에서는 우선 남한을 미·일·중·러 등 큰 나라와 이간시켜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미군철수를 유도하는 것이다. 쪹김일성, “미군만 철수하면 제주도를 떼어주어도 좋다”고 언급
■미국이 개입할 경우에는 ‘인간어뢰’와 항공기에 의한 자살특공대등으로 미 항공모함을 몇 척 까부셔 미국여론이 조선전쟁 참여를 반대토록 유도하며 또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 하겠다고 위협하여 미국이 물러서도록 유도할 것이다.
■북한은 동맹조약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불침시에는 중국이 북한을 지원해 줄 것으로 믿고 있다.  

(5) 김정일의 군부 장악 정도 및 측근 군사인물  
■김정일은 최고사령관 (91.2)과 국방위원장 (93.40에 취임, 명실공히 군통수권을 장악한 이후 대규모 장성진급 및 3선 감시체계 (지휘·정치·보위부)등을 통해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총참모장 조차 김정일의 지시사항만 수행하고 있으며 사소한 반대의견이나 제안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군을 장악하고 있고, 조명록(총정치국장), 김영춘(총참모장)·원응희(보위사령관) 등이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다. - 조명록 총정치국장은 공군사령관을 하다가 김정일이 마음이 곱다고 해서 군 정치책임자로 발탁하였다. - 김영춘 총참모장은 정치적인 감각이 없으며 전략을 쓸만한 인물이 못됨 - 오극렬 작전부장은 무력부내에 기반을 갖고 있고 머리가 명석하며 김일성이 총참모장직에서 해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이 당작전부장으로 재기용 했다.  

나. 군사력 증강 관련 사항  

(1) 무기개발·생산 및 기술도입 실태  
■북한의 잠수함 건조는 러시아가 해체한 잠수함에서 회수한 강판을 도입하여 사용하고 부품은 외국에서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전자부품 및 장비는 일본에서 도입하고 있다.
■김정일은 중국의 무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으로 부터의 무기 또는 무기개발 기술을 도입하고 있지 않으며 소련의 신형무기를 얘기해도 “그런 것은 다 낡은 것”이라고 무시하면서 설명서를 보지도 않는다.
■북한은 무기개발을 위해 필요한 외국 기술자 초청은 인민무력부가 외교를 통해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  

(2) 경제난 불구 군수부문 우대정책 지속  
■67년 제4기 15차 당 전원회의시 경제·국방 병진정책을 제시한 이후 군수부문 우대정책을 지속 실시하고 있다. - 동 회의에서 주변국가들의 정세를 분석한 후 무력통일을 자체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 그후부터 각 공장·기업소 생산량은 일정 부분을 군수부문에 공급토록 하였다.
■김정일의 군수공장 우대 실태를 보면 - 각 공장·기업소는 민수에는 일체공급하지 못하더라도 군수부문에는 계획대로 최우선 공급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군사재판에 회부토록 하였다. - 군수공장은 정무원과 별도로 당중앙위 군수공업부(비서 전병호)에서 관장하고 있으며 모든 민수공장에도 군수생산 직장(부서)을 설치하였으며 여기에 대한 검열도 군대가 하고 있다.
■군수생산계획 집행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당중앙위 군사위원, 정치국상무위원, 도당 책임비서, 공장·기업소 당비서 및 지배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 중앙군사위원회 명령 총화회의’를 개최하여 실적 부진자는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문책하고 있다.  

(3) 전쟁물자 비축  
■군수동원총국에서 전쟁물자 비축을 총괄하며 동 총국은 행정적으로 호위총국과 같은 독자적인 기구로서 정치위원이 중장으로 편제되어 있는 등 중요시되는 기관이다.
■전쟁물자의 수입은 2경제위원회가 외화벌이를 해서 조달하며 정무원 등 다른 부서에서는 관여하지 못한다.  

다.핵·생화학·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1) 핵개발 문제  
■김일성은 64년 중국의 핵실험에 대해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는 말들이 많은 데 어떻게 된 것이냐” 고 물으면서 NPT가입을 종용한데 대해 - 황장엽은 “그런게 있겠는가”하는 식으로 대응한후 이를 김부자에게 보고하자 김부자로부터 “묵살하라”는 지시를 받은 바 있다.
■김영남 외교부장은 85.12 NPT에 가입하고 핵안전협정을 체결(92.4)했으나 군수담당 관계자들은 “NPT 가입으로 골치가 아프게 되었다.”면서 김영남을 비판한 바 있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비록 핵무기와 관련시설을 직접 본적은 없으나 92년 IAEA 특별 사찰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NPT를 탈퇴 (93.3) 했다는 점에서 모든 당비서들이 그렇게 믿게 되었다.  

(2) 미·북 핵합의 관련동향  
■미·북 핵협상시 모든 전력은 김일성이 강석주를 통해 직접 지시 했으며 여타기관은 여기에 관여하지 않았다.
■북한이 화력발전소 대신 경수로 지원을 요청한 것은 화력발전소는 완공후 유류 등 원료공급 능력이 없는 반면 경수로는 연료인 우랴늄이 대량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경수로 건설 관련 남측인력의 대규모 방북시 신포인근을 철저히 통제, 북한주민과의 접촉을 최대한 차단할 것이다.  

(3) 핵관련 북한내 동향 및 기타사항  
■91.12 ‘한반도 비핵화선언’에 합의한 동기는 대외적으로 평화이미지를 과시하고 남한 내부의 핵관련 정책분열을 조장키 위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85.12 NPT 가입은 구 소련으로부커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지원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85.12 구 소련과 440MW 경수로 4기 공급협력협정 체결)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한 것과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 (94.10)등은 모두 시간을 벌기위한 전략에서 추진되었고 그결과 북한은 경수로 건설,매년 50만톤 중유 획득 등의 이득을 보게 되었으며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일부 고위층 간부들은 92.4 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 이후 핵사찰 문제로 인해 대북한 국제정세가 긴장하게 돌아가자 자승자박한 것이 아닌가 하고 외교부에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4) 화생방무기·미사일 개발실태  
■높은 수준의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화학무기 금지협약’에도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북한의 확고한 입장이며 상층부에서는 생물무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은 남침시 미국의 개입을 방지하고자 화학무기가 장착된 장거리 미사일로 ‘일본을 초토화’시키겠다고 위협할 것이다.
■항간에는 포에 장착하여 발사하면 부근의 산소가 없어져 모든것이 죽는다는 폭탄(기화폭탄 추정)이 개발되었다는 소문이 있다.  

라.대남 군사태도  
(1) 한국군·주한미군에 대한 인식  
■북한권력 핵심층과 군 간부들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이 세계 4위 수준이며, 화학무기는 세계적 수준으로 약점이 없는 부대라고 생각하고 있어 한국군의 능력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미군만 없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 남한의 함정·항공기 움직임을 적시에 식별·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 남한 국방비가 북한보다 많다고 하지만 이에 상관없이 수도권에 대한 5-6분 정도의 포공격으로도 잿가루가 된다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의 전쟁에서는 미국땅에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앞으로 북한과의 전쟁에서는 미국은 결코 후방이 될 수 없다고 하면서 북한 특공대가 남한과 같이 미국에도 임의의 시간에 침입할 수 있는 것처럼 주민들에게 선전하고 있다.
■미국이 침공할 경우 인적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함정·항공기 등을 몸으로 직접 막게되면 미국이 물러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걸프전은 전쟁이 아니라고 하면서 미국과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한다.
■91년 걸프전 이듬해 김정일은 미국 무기의 약점을 분석하고 이를 격파하는 영화를 제작, 군내 작전국등 지휘부 간부에게 시청케함으로써 미군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고취 교육을 실시하였다.
■美 순양함 1척을 자폭해서라도 폭파시키면 미국내에 반전여론이 만연되어 학국을 포기하게 될것이며,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만으로도 남한인민들을 전쟁공포로 떨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2) 팀 스피리트(T/S)훈련에 대한 인식  
■북한 당·정 간부들은 T/S훈련의 목적이 ① 훈련을 진행하다 북한의 방어태세가 허술할 경우 북침하거나 ② 한반도에 전쟁 분위기를 조성하여 북한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동 훈련기간중 적군의 군사장비들이 상시 기동태세를 유지함으로써 유류난 속에서도 막대한 유류소모가 불가피하고 군 병력의 경제건설 활동도 중단됨으로써 북한경제에 미치는 피해가 상당함
■특히 93.3 T/S 훈련은 핵사찰 문제로 인해 ‘준전시 상태’를 선포하는 등 최고조의 긴장태세를 유지하였는바 - 김정일은 집무실 지하에 설치된 작전상황실에서 집무를 하였고 - 중앙당은 각과별로 1명씩 당중앙위원회에서 비상근무를 하였으며 모든 차량을 징발하여 대기시키고 군대를 갱도에 투입하였다.  

2.김부자 관련사항  
(1)김정일의 건강·성격  
■최근 김정일의 건강은 양호한 편이며 금년 1.1 ‘금수산 기념궁전’참배시 만났을 때에도 건강에 이상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김정일은 일을 하거나 파티를 하기 위해 밤을 새는 일이 잦으며 새벽 3-4시에 건설현장이나 행사준비장에 갑자기 나타나거나 간부들에게 전화를 하는 등 거의 잠을 자지 않고 일한다는 것을 과시하고 있다.
■김정일은 김정일이 포용력이 크다고 자랑하였으나 사실은 소심하며 좋고 싫은 것에 대한 감정의 변화가 지나칠 정도여서 아부하는 부하를 편애하다가도 조금이라도 의심의 소지가 생기면 내팽개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2) 김정일의 계모 및 형제관계  
■김정일은 친여동생 김경희를 끔찍히 사랑하여 “김경희의 충실성을 따라 배우라”고 강조하기도 하고, “우리 경희는 나와 같은 급으로 대우하라”고 지시하기도 하였다.
■김경희는 현재 당 경제정책 검열부 산하 경공업부문의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나 경제정책검열부장 겸 당비서인 한성룡의 지시를 받지 않고 김정일과 직접 사업을 하고 있다.
■김정일은 김성애와 이복동생들에 대해서는 ‘곁가지 무리’라고하여 이를 반대하는 ‘내부 교양사업’을 철저히 시행, 완전히 고립시키고 있다.  

(3)김정일의 호화사치 형태  
■김부자 특각 건설공사는 평양 ‘백두산 건축설계연구원’이 설계를, 시공은 중앙당 건설국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특각에서 쓰는 물건들은 주로 오지리에서 구입하고 총련에서도 들어오고 있다.
■김정일은 매주 금요일까지는 강동·용성등 평양근교에 있는 특각에서 보내며 동행 인사는 맘에 드는 사람들을 골라가는데 주로 김기남, 김용순, 김국태 등 당비서와 기쁨조를 대동한다 한다.
■김정일은 중국·러시아 등 해외에도 호화저택을 구입해놓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다른 사람은 사용하지 못하며 김정일 서기실에서 근무하는 간부들이 특수물품 구입을 위해 안다니는 데가 없다.  

(4) 김정일의 통치형태·지도자 자질  
■본질적인 면에서는 ‘김부자’가 다 개인독재로 다를 바가 없으나 김일성은 스케일이 크고 폭이넓어 인민들을 기만해도 무난했는데 김정일은 무계획적이며 조급하다.
■김일성은 정책결정시 간부들의 의견을 묻기도 했으나 김정일은 독단으로 결정하여 자기의 정책이나 노선에 대해 의견을 제기하면 가차없이 처벌함
■김정일은 사소한 일까지도 일일이 간섭을 하여 당비서 주택을 몇층 몇호로 배정하라거나 선물을 보내는 것까지 직접함  

(5) 김일성의 권력장악 과정  
■김일성은 6.25전후 국내파(남로당)⇒ 연안파⇒ 소련파⇒ 빨치산내 반대세력 (갑산파·군사파)의 순으로 단계적 숙청을 진행하였으며 전쟁직후 이승엽·박헌영 등 남로당 계열을 ‘간첩죄’로 몰아 전쟁책임을 덮어 씌우면서 제거하였다.
■50년대 후반 김일성이 동구권을 장기 외유중(56.6-7일) 최창익·윤공흠 등이 반김일성 음모를 꾸민 소위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연안파·소련파를 제거하였다.
■60년대 후반 갑산파·군사파·제거에는 삼촌 김영주의 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김정일이 관여하기 시작하였다. - 69-70년중 허봉학·김광협 등 군사인물 숙청과정에는 김정일과 친하게 된 오진우가 주도하엿고 김영주의 세력 약화가 목적이었으며 60년대말부터 김정일이 당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 김일성은 60년대 후반의 2차례에 걸친 빨치산직계 패거리들에 대한 숙청으로 권력층내 절대적 충성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때 부터 간부들은 김정일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였다.
■60년대 반대파 숙청이후 김일성 1인독재가 심화되었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여지는 말살되었다. - 60년대까지는 당내 토의과정에서 형식상이나마 ‘거수가결’도 행해졌으나 김정일이 70년대초 유일사상체계를 강조한 이후는 절대지지 일색이었다. - ‘수령의 말씀은 곧 법’으로 100% 내리먹일뿐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 의한 간부들의 창발성은 허용의 여지가 없어졌다. - 이때부터 김정일이 오진우를 비롯한 일부 군 간부와 함께 군대를 2배로 늘리는등 중국의 도움없이 전쟁에서 이길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아래 군국주의를 강화하였다.  

(6) 김정일의 권력장악 과정  
■김정일은 아동시절에는 ‘수상놀이’를 하고 학생시절에는 ‘김일성 업무에 조력’하는 등 권력 지향적 행태를 표출하였다. - 어린시절 놀이하는 모습을 보면 김정일이 자신은 수상 노릇을하고 다른 아이들은 상(장관)을 시켜놓고 호령을 하곤 했으며 - 청소년 시절에는 김일성의 관심사안을 연구하는 등 김일성에게 잘보이려고 무척 노력했다.
■59.1 황장엽은 김부자를 수행하여 소련 공산당 21차 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그때 김정일(17세)이 김일성의 일정을 주도해서 짤 정도로 맹랑한 모습을 보였다.
■김정일은 중앙당 근무시작(64.6)이래 인사문제 및 숙청에 관여하고 김일성 우상화를 주도하는 등 정치력을 발휘하였다. - 64.6 중앙당에 지도원으로 처음 들어와서는 놀기를 좋아해서 인지 선전·예술분야의 일을 맡아 보더니 점차 사람을 끌어 모으고 조직부의 인사문제에도 관여하였으며 - 60년대 후반 김일성이 같은 빨치산파이나 직계가 아닌 세력을 숙청하는 과정에도 개입하는 등 충실성을 과시했다.
■73.9 김정일이 김영주의 조직비서직을 가로채고(선전비서 겸임), 74.2 정치위원에 오름으로써 후계자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한편 93.12 김영주를 평양(부주석)으로 다시 불러들인것은 김정일의 권력이 확고한 상황에서 김일성이 “저렇게 오래 버려두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때문이며 김영주는 ‘허재비’(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김정일은 당 장악과정에서 전국에서 벌어진 모든 내용을 일보체계로 종합했으며 중요한 문제들이 발생할 경우에는 시·군당 이라도 당중앙위에 직접 보고하는 직보체계로 만들어 놓았다.  

3.북한 정치분야  

(1) 독단적인 정책결정  
■당·정·군 등 각 조직은 계선을 통해 정기적으로 자체보고를 하고 있으나, 토의 등을 통한 정책결정은 없으며 오직 김정일 자신의 판단에 따라 정책을 결정·지시함으로써 독단이 지배하는 체제임 - 93년초 ‘MPT 탈퇴선언’도 사전 간부간 협의가 없었으며 향후 전쟁을 일으킬 경우에도 유·불리점에 대한 논의는 있을 것이나 ‘개전시기’는 독단적으로 결정할 것으로 예상
■김정일에게 비위를 거슬리는 내용을 보고할 경우 파직을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어느누구도 제대로 보고를 하지 못하며 모든 간부들은 ‘옳소 부대’이며 다만 김기남(당 선전선동 담당비서)정도가 '“~좀 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2) 권력 승계문제  
■3년 탈상 후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을 승계할 것으로 보이며 총비서의 경우는 당 전원회의에서 선출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김정일은 황장엽에게 “내가 국가주석을 하는것이 좋겠는가”라고 질문한 바 있고 김기남이 “주석제 유지를 건의하였다.”는 점등으로 보아 주석직 승계여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것 같다.  

(3) 김일성 사망 등 위기상황시 지도층 분위기  
■루마니아 ‘차우세스크’처형(89.120당시 김일성은 “군대를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바 있으며 김정일을 최고사령관에 등용 (91.12)한 것도 군부를 확고하게 장악하려는 의도였다.
■김일성 사망시 지도부내에 불안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김정일이 그간 실질적으로 통치해 왔고 김정일 활동에 대한 ‘소감문’작성 등으로 들볶아 위기감 마저 느낄 여유를 갖지 못한 상태였다. 94.7 남북정상회담 추진시 김일성은 “내가 서울에 가면 수백만 군중이 환영할 것이므로 통일에 유리할 것”이라고 하는 등 흥분상태였으며 “연방제 통일과 남북 경제교류문제 논의”가 주목적이었다.  

(4) 북한 체제의 강·약점  
■김정일 우상화가 극단적으로 강화되고 있어 주민들은 그를 신처럼 여기고 있고 충성·효성을 기본으로 하는 봉건주의 사상이 흔들리지 않고 있다.
■고위간부들은 ‘도청장치와 숙청’의 공포를 느끼면서 생활하고 있어 파벌형성 소지가 없으며 아부하기에 급급함
■주민들의 반체제는 불가능하며 굶어 죽으면서도 ‘김정일 만세’를 부르는 실정임  
-체제의 취약점-
■북한체제가 사회주의가 아닌 ‘현대판 봉건주의’체제라는 현실이 가장 큰 취약점임
■주민들의 ‘비사회주의 현상’이 점차 확산되고 공산주의 도덕이 땅에 떨어졌으며 관료들의 부패와 주민들의 일탈행위가 만연되고 있다.  

(5) 당·정 기구관련 사항  
■국방위원회는 유명무실한 기구로서 군사에 관한 실권은 당 중앙 군사위원회에서 가지고 있다.
■사회안전부, 외교부등은 편제상 정무원 소속이나 실제로는 총리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있으며 인민유력부, 국가보위부와 함께 김일성이 직접 지휘하는 부서들이다.
■김용순비서 (대남)는 대남담당부서중 통일전선부만을 관장하고 사회문화부·대외정보조사부 등은 김정일이 직접 관장하고 있다.  

(6) 최근 정책 중점사항  
■96년초 당·군·청년보 ‘공동사설’에서 사상·군사·경제 등 소위 ‘3대 진지’강화를 촉구한 이래 이를 지속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당면한 북한의 대내외 정세가 어려운 사정임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 김정일이 ‘3대 진지’ 운운하며 한마디 한 것을 밑에서 체계화 한 것으로 정책노선이라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 - 현재 사정이 어려우니까 강조하고 있는 것이며 경제진지야 엉망일지 몰라도 군사·사상진지는 튼튼하다고 할 수 있다.
■ 최근들어 3대 혁명소조부를 폐지하는 등 흐지부지 되었으며 그 대신 대학졸업후 무조건 지방의 생산현장에서 3년간 노동해야 하는 ‘대학생 현실체험’제도로 바뀌었다. - ‘소조운동’이 김정일의 정책추진을 쥣바침하는데 목적이 있었는데 반해 ‘현실체험’은 평양인구 분산과 주민통제에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7) 권력구조 재편 전망  
■김정일의 변덕스런 성격때문에 공식승계후 인사개편 방향에 대해 확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
■경제인민회의 대의원들도 선거한지가 오래되어 많이 바뀔 것이며 선발기준은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이 절대적인 고려 기준이다.  

(8) 김정일 정권 붕괴가능성 및 타도 가능세력  
■북한은 지금 경제가 마비상태에 빠지고 인민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등 파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북한은 오랫동안 쇄국정책을 실시하면서 전제주의적 통치기반을 강화해 왔기 때문에 북한체제가 1-2년내에 쉽게 무너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임
■다년간 이중 삼중의 감시하에 귀를 막고 눈을 가리운 채 개인숭배 교육을 받아온 북한 사람들은 독재자의 명령을 무조건 따를 뿐이며 김정일을 거부하는 세력은 있을 수 없다.  

(9) 북한권력 핵심층의 동요징후  
■최근의 경제난·식량난 등과 관련하여 일부 간부들이 “큰일인데..”라고 종종 말하고 있으나 뚜렷한 대책없이 서로 걱정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고위간부들은 ‘도청장치와 숙청’에 공포를 느끼면서 생활하고 있어 김정일에게 충성경쟁을 할 뿐임  

4.북한 경제분야  

(1)경제난 원인  
■북한경제가 파탄상태에 직면하게 된 원인은 기본적으로는 - 물질적 자극을 무시하고 정치적 자극을 우선시함에 따라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 평가받지 못하고 있어 “죽도록 일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이 일반화 되었으며 - 생산물 가격을 수요와 공급, 그리고 가치법칙을 무시한 채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획일적인 계획경제 체제에 연유함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요인으로는 - 67년이래 경제·국방 병진정책의 지속적 추진으로 군수공업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 민수부문과의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어 지고 있고 - 김부자 개인 독재정치의 후과로 비경제적인 대기념비 창조물건설 등에 너무 많은 재원을 낭비함으로써 자원을 탕진한데다 - 소·동구권 붕괴로 이들로 부터의 원조중단과 경화결제 요구에 따른 원자재 획득이 곤란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2) 경제난 실상  
■북한의 현 경제는 일제시대 보다도 더 악화된 ‘마비상태’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함
■완충기(?94-?96)는 기만에 불과하고 차기 경제개발계획 수립은 아예 생각할 수 없는 상태로, 우선은 지속되는 마이너스 성장을 정지시키는 것이 급선무임  

(3) 경제통계 과장 실태
■공산주의의 제일 나쁜 점은 진실성이 없다는 점으로 당의 이익과 선전, 주민 사기앙양을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대외발표를 기만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다.
■예산계획 수립시 각부서에서 요구하는 사항이 많아 예상 획득량을 기준으로 작성하기 때문에 계획자체가 과장되고 있다.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외에 공표하는 예산은 규모가 크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연말에 재정부가 당비서회의에 보고하는 것보다 항상 2배이상 과장되며 매년 그 과장 정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  

(4) 아편 생산 및 판매실태
■북한에서는 80년대부터 양귀비를 ‘백도라지’라고 명명하고 국가적차원에서 재배를 권장하고 있으며 마약제조·밀매는 비밀을 보장할수 있는 군·보위부·안전부 등에서 주로 관여하고 있다.
■아편정제는 청진 나남제약 공장에서 하고있고 기술부족으로 제품의 질이 아주 낮으며 무역상사 등을 통해 밀매하고 있다. - 94.6 정무원 마약담당 책임일꾼은 “동남아 사람들로부터 좋은 종자와 재배방법을 입수하고 판로를 개척할 것”을 지시한 바 있으며 - 96년에는 러시아에서 북한인이 아편을 판매하다 적발되어 국제적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다.  

(5) 최근 식량난 실태
■평양지역은 96년 1일 300g정도의 식량을 배급하였으나 지방은 배급을 중단한지 오래이며 부족식량은 신의주 등 국경지역을 통해 중국에서 들어오는 곡물을 구해 충당하고 강냉이죽에 풀을 섞어서 연명하고 있다.
■96.12 중앙당은 곡물생산량 부족에 따라 “3개월은 국가에서, 3개월은 수입 양곡으로, 3개월은 직장자체 해결, 나모지 3개월은 개인이 자체 조달”하도록 방침을 수립한 바 있다.
■95년 홍수피해 이전가지만 해도 김정일은 자존심을 앞세우면서 “항일 빨치산때 풀뿌리를 캐먹었는데 어디가서 구걸을 할것인가”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식량난 해결을 위한 아무런 대책이 없게 되자 외부에 홍수피해를 구실로 대외원조를 요청하게 된 것이며 일부지역에 대해서는 배급실태를 확인할 수 있으나 사전에 다 조작해 놓아 정확한 분배감독이 불가능함  

(6) 개혁·개방 문제  
■김정일은 “개혁·개방하면 사회주의가 망한다.”고 매일 말하고 있으며 중국의 개혁·개방에 대해 비난을 많이 한다.
■김용순·김기남·김국태·한성룡등 당비서들은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나 이를 이야기하면 반동으로 취급 당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 못함
■중국식 농업개혁은 비판받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 견학 후에도 나쁜 점만 보고하고 있다.
■작년에 실시한 분조관리제 개선안은 농민들이 자주 제기하던 문제로서 - 일정량만을 국가에 납부하고 나머지는 농민들이 나누어 갖는 제도로서 새로운 개혁조치가 아니라 과거부터 있던 규정을 그대로 적용한 것에 불과하며 - 과거 10년간의 평균 생산량을 기준으로 하여 목표량을 산정하였으나 비료를 주지않아 생산목표를 당성한 농장은 10개 미만이다.  

(7) 북한·중국간 경제협력 관계  
■김정일은 중국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부하들의 중국 모방을 사대주의로 매도하는등 중국과의 경제협력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한편 최근 중국측은 북한에 대해 신규거래에 앞서 기존거래에서 발생한 빚을 먼저 갚도록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측은 “북한 봉화화학 공장에 원유공급 계약기간(20년)이 95년에 종료되었으니 재계약을 하려면 빚을 다 갚고 하라”고 요구한바 있으나 실제 원유공급 중단 여부는 불분명함  

5.북한 사회분야  
(1) 주민 의식 성향  
■북한주민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김부자의 말·행동을 무조건 따르는 ‘환상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김정일을 응호·보위하고 총폭탄이 되는 것”을 삶의 근본적인 요구로 받아들이고 잇다.
■북한은 김정일을 정점으로 한 수직적 관계만이 존재하고 개인간 횡적관계는 철저히 차단된 봉건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난이 악화되면서 일반주민뿐만 아니라 주민 통제를 담당하는 초급 당 간부·안전원마저도 일을 하지 않고 오직 먹고 살기 위한 식량구입에만 매달리고 있다.
■최근 당간부 등 핵심계층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폐쇄정치는 망국의 길, 개혁·개방만이 살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나 아직 김정일의 잘못을 직접 거론하면서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2) 주민 통제 실태  
■북한은 계급이 없는 사회라고 주장하면서도 출신성분과 사회성분을 중심으로 ‘기본·복잡·적대계층’으로 구분, 철저한 차별대우를 하고 있다.
■6.25전쟁이후 ‘주민등록 그룹빠’를 조직, 출신성분·친척관계·전쟁경력 등에 대해 8차례의 주민성분 조사를 실시하였다.
■주민 감시조직으로 보위부(비밀)와 안전부(공개)가 있는데 김정일이 등장한 70년대 중반부터는 조직요원을 2-3배로 증원하는 등 완벽한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3) 평양 주민 소개사업 추진실태  
■평양시 주민 소개사업은 6.25전쟁이후 전쟁준비 및 인구조절 차원에서 중앙급기관 기구축소 명분으로 3-4년 주기로 실시하여 왔는 바 - 68년 프에블로호 납북사건 직후 평양시 주민들중 성분불량자들은 지방으로 대거 이주시킨데 이어 76년에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직후 평양시 주민들을 소개하였으며 94년도에도 ‘평양시민증’을 발급하면서 상당수 주민들을 지방으로 보냈음
■이같이 평양시 주민 소개사업을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이유는 직장변경자나 책벌자·행실불량자 등을 지방으로 보내고 있음에도 이들이 다시 평양으로 전입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4) 인권 탄압 실상  
■김정일은 “국제사회에서 핵문제·화학무기에 이어 다음에는 인권관련법률을 형식상으로 만들어 놓았을뿐 인권자체가 없다고 보아야함
■‘통제구역’은 56.8 발생한 ‘8월 종파분자사건’ 에서 유래한 것으로
■김일성이 “종파분자들은 머리꼭대기까지 잘못돼 있어 가족들과 함께 산간벽지로 보내 격리시켜 살게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 최초의 통제구역이 설치된 지역은 58년말 평남 북창군 소재득장 탄광이었으나 그 이후에 평양 승호리 등 여러 곳에 설치하였으며 - 처음에는 종파분자만을 통제구역에 보내다가 나중에는 김부자비난 등 정치범들을 수용하였다.
■60년대경 김일성이 “닌쟁이들이 종자를 퍼뜨리면 안되기 때문에 한 곳에 모아두라”고 지시함에 따라 함남 정평군에 난쟁이 수용소를 설치하여 집단 수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공개처형이 전국에서 집행되고 있는데 92년도에 주민들이 공무중인 안전원들을 구타하자 김정일이 “이제부터는 총소리를 내야겠다. 안전원에 손을 대면 무조건 쏘아버려라”고 지시함에 따라 확대되었으며 95년에 외화벌이 명목으로 포르노 영화를 만든 것이 문제가 되어 영화부문 간부와 배우등 7명이 평양 형제산 구역에서 30만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공개총살된 바 있다.  

(5) 범죄 만연 실태  
■80년대 후반부터 사회주의 도덕성이 무너져 각종 범죄가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경제적 궁핍이 주원인이지만 젊은사람들이 군대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것만을 배워 온데에도 원인이 있다.
■범죄자 수용시설로는 각도에 교화소가 한개씩 있고 시·군안전부에는 ‘구류소’가 설치되어 있는데 수용인들은 대규모 토목공사 또는 공장지역에 강제노동인력으로 동원되고 있다. - 평양시의 경우 보통강구역에 수천명 수용규모의 제 8교화소가 있으며 평북도 신의주 교화소는 여자 죄수들만 수용하는데 미상시기에 남신의주로 이전하였다.
■한편 북한당국은 범죄예방·처벌을 위해 각 단위마다 ‘법무생활 지도위원회’를 설치하였는데 郡의 경우 군 당책임비서·행정경제위원장·보위부장·안전부장·검찰소장 등으로 구성되며, 동위원회에서 모든 범죄자를 처리하고 있다.  

(6) 당간부 생활 및 동향 감시실태  <생활 실상>
■김국태·김기남·조명록·김영춘·김용순·이하일·이창선 등 김정일 핵심측근들은 중앙당사 옆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이들의 아파트는 일반아파트 2채를 통합한 호화 주거지다.
■정치국 후보위원·부총리급 이상은 차량을 지급해 주고 있는데 부총리급은 벤츠 280형·정치국 위원은 벤츠 380형이다.  <동향감시 실태>
■당 간부들에 대한 감시는 일반주민들보다 더 심하며 심지어 집에 도청장치까지 해놓고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
■당 간부들의 조직생활은 군대보다 더욱 심한데 점심시간에 1분만 늦어도 생활총화시 자아비판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같이 고위간부들에 대해 엄격한 감시·통제를 하는것은 김정일이 반기를 들 가능성이 가장 많은 대상으로 의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부 비리>
■하부당으로 내려갈수록 비리가 더욱 심한데 군당은 집행기관이기 때문에 군당·리당 비서들이 주민들에 대해 왕노릇을 하고 있다.
■최근 간부비리가 가장 극심한 분야는 무역·외화벌이 부서와 주택배정·직장배치부서 등이다.  

6. 북한 대외관계  

(1) 외교정책·전략  
■ 소·동구붕괴 이후 북한 대외정책의 핵심은 ‘체제고수’라는 기본목표하에 내부를 공고히 하면서 대국(주변4각)들과의 마찰을 가급적 피하고 이들을 이용해 나가는 전략이다.
■ 외교정책 결정은 소·동구 붕괴이전에는 ① 외교부 수립 ②당 국제부 심사 ③ 김정일 비준 ④ 외교부 하달순이었으나 90년대 들어 김정일이 직접 관장한 이후부터 외교부가 주도하고 있다.
■ 외교정책 주도인물로는 김영남·강석주 등을 들 수 있는데 외교부가 주관한 대미 핵협상 이후 강석주가 김영남을 제치고 김정일에게 직접 보고하는 등 신임을 받고 있다.
■ 북한지도층은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 경제난국을 타개하려고 했는데 일·북 관계에 진전이 없자 미국과의 관계가 먼저 개선되어야 함을 깨달았다.
■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에 주력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간섭을 견제하면서 대미관계 개선을 통해 일본을 따라오게 하고 한국과 미국을 이간시키기 위한 것이다.
■ 김정일은 UN을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부속기구로 보고 있으며 대 UN 외교활동 중점을 주한미군 철수와 국제기구로부터의 지원획득에 두고 있다.  

(2) 해외 주체사상연구소  
■ 70. 10 김일성과 단독 면담하여 주체철학 확립사업을 승인받고 4년간에 걸친 집필활동을 통하여 김일성 명의로 주체사상을 집대성 하였다.
■ 최근까지 주체사상 연구소 활동을 위해 연간 100-120만불의 예산을 사용해 왔다.
■ 주체사상의 세계전파를 위해 78. 4 동경에서 주체사상 국제연구소를 창설(초대 이사장 야스이 카오루, 현재는 이노우에 슈하치)하고 매년 자금을 지원해 왔으나 최근에는 북한의 자금난으로 2년 전부터 조총련에서 지원하고 있다.
■ 현재 지역별 주체사상 연구소는 인도, 불란서, 페루, 나이제리아에 있으며 동 조직에 대한 자금지원을 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에는 아주 주체사상연구소(인도)에 매년 3~4만불, 중남미 지역 1만불, 불란서에 5천불 정도 지원한 바 있다.
■ 해외주재 북한대사가 주체사상 전파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있으며 일부지역에는 전담요원이 파견된 바도 있으나 이들 조직의 활동 보고를 받거나 평가를 내리지는 않았다.

(3) 주요국과의 관계  <미·북 관계>
■ 김정일의 대미접근 의도는 -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시간을 벌면서 ‘평화적’이라는 대외명분도 세우려는 것으로써 -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는데 대해 골탕을 먹이고 남한을 고립시키는 등 여러 책략을 기본고리로 미국과 상대하려는 것이다.
■ 김정일은 미국을 타도대상인 적인 동시에 이용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어 미국과의 수교가 상당기간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보며 수교시 주한미군 철수문제가 제기되고 북한의 남한 고립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 내부적으로 ‘미·북 핵합의’를 “신출귀몰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승리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으며 대부분 주민들은 정보가 차단되어 있어 모두 이를 믿고 있는 실정이다.  <일·북 관계>
■ 김정일이 “일본에 대해서는 고자세를 취함으로써 일본을 끌어 당기라”고 지시한 바 있으며, 대일관계 개선 목적은 단지 사죄와 보상금을 얻어내는 데 있다.
■ 일본과의 수교회담은 처음에는 일본과 직접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차츰 미국의 승인없이는 안된다고 생각하게 되어 대미 관계 개선에 우선을 두고 있다.
■ 일·북 수교회담이 조만간 재개될 가능성이 있으며 100억불 정도의 보상만 받을 수 있으면 당장이라도 수교할 것이다.  
<중·북 관계>
■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는 계속 유지될 것이며 북한은 미국과의 접근을 원치 않는 중국을 자극하여 보다 많은 지원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 북한은 한·중 수교 이후부터 중국을 자본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으며 외교적 사안을 전혀 통보하지 않는 등 다소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북한은 소련붕괴 이후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도 벗어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측에서 김정일을 수차 방중 초청해도 거절하고 있다.  <러·북 관계>
■ 북한은 남쪽을 무력으로 통일시키는데 러시아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
■ 러시아가 한국의 자본과 러시아 기술을 이용하여 북한의 공장을 정상화시키려고 할 경우 북한은 설비는 받아들일 것이나 남쪽 인원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기타 국가들과의 관계>
■ 북한은 대만에서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대만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 북한은 홍콩의 중국반환에 대비하여 보위부 반탐국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작년 여름 총영사관 설치문제와 관련하여 홍콩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 91년경 김일성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줄 때 뿐이며 자본주의 국가나 남조선에서도 받아먹고 있어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면서 “이제부터는 동남아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 김정일도 21세기를 태평양 시대라고 보고 동남아를 중요시하면서 필리핀·호주 등과의 수교를 추진하고 있다.
■ 김일성은 91년경 교시를 통해 동남아 다음으로 브라질, 페루 등 중남미 국가 야당과의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는데 이는 이들국가의 여당은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4) 조총련의 대북송금 실태  
■ 김정일은 조총련의 송금을 최대의 명줄(중요자금원)로 간주하고 있으나 - 80년대에는 송금액이 6억불 정도였으나 지금은 정확한 액수를 알 수 없으며 빠찡코, 부동산 등의 수입이 감소하여 많이 줄어들고 있다. - 또한 북한은 조총련에 교육비 명목으로 선전차원에서 자금을 보내기는 하지만 직접 투자는 하지 않고 있으며 - 지난번 일본 지진시 북한이 위로금을 보냈을 때 ‘황’이 “뭐 그렇게 많이 보내느냐”고 하자 통전부 간부가 “보내면 몇배로 되돌아 온다”고 대답한 바 있다.
■ 지난 91-92년도에 일본과 수교교섭시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100억불 이상 받아낼 계획이었다.
■ 김일성 생존시에 배상금을 쓰는 문제에 대해 조금 논의를 했는데 경제부문이 아닌 다른부분에 쓰려는 것으로 들은 바 있다.  

7. 대남 및 남북관계  

(1) 북한의 대남 기본전략(무력적화 통일)  
■ 과거 김일성은 대남혁명전략으로 남한내 이른바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일으킨 다음 연방제로 통일하는 평화적 방법과 전쟁이라는 비평화적 방법을 병행하였다.
■ 김정일은 오직 무력에 의해서만 통일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남한에 비해 경제력은 열세이나 미국과 일본 등 외부간섭이 없으면 100% 힘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 극심한 식량난에도 아랑곳없이 군사력 강화는 물론 무력통일을 위한 사전 기반조성의 일환으로 주한미군 철수·남한 내부와해 및 지하당 조직 공작을 추진하고 있다.
■ 특히 최근에는 남한과 해외의 군사정보 수집을 위해 별도 공작기구를 설립하는 등 군관련 공작에 주력하고 있다.  

(2) 연방제 통일전략 (합작 통일전략)
■ 북한의 기본 대남전략은 ① 남한을 내부적으로 와해시키고 ② 무력으로 밀고 나가자는 것이며 현재 ‘남한정세가 정치적 문제·학생 데모 등으로 혁명의 좋은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 북한이 대남 강경노선을 유지하는 것은 김정일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 무력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결정한데 따른 것이며 남북관계에서 온건파가 발붙일 자리는 없다.
■ 북한의 연방제 통일전략은 외국 등 외부의 간섭을 배제한 가운데 남한내에 혼란을 일으키고 인민 봉기에 의한 정권을 수립한 후 합작하겠다는 것으로 속임수에 불과하다.
■ 김정일은 개방을 하면 체제가 무너지고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식권력승계를 하더라도 대남정책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3) 대남정책 입안 및 집행절차  
■ 대남 공작사업은 대남사업을 전담하는 당 소속 통일전선부·사회 문화부·작전부·조사부와 인민무력부 정찰국에서 각각 자체 계획을 수립, 김정일의 비준을 받아 집행하고 있다.
■ 공작부서간 상호 업무협조는 김정일의 직접적인 통제아래 이루어지므로 김정일 이외에 어느 누구의 지휘나 협의·조정없이 자체적으로 수행한다.  

(4) 남북 대화  <협상관>
■ 북한은 남북대화를 ‘적과의 전쟁’으로 간주하여 모든 전략을 金正日의 결재하에 추진하고 있다.
■ 남북대화 전략은 노동당 통일전선부에서 수립하며 동 전략에 따라 조평통·정무원 등 관계자로 구성된 회담대표단이 이를 수행한다.
■ 90년 남북 고위급 회담에 응했던 것은 남한을 안심시키고 국제적 이미지를 좋게 하자는 의도였으며 당시 연형묵 총리는 로보트에 불과했다.  
<정상회담>
■ 94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은 김일성이 서울을 방문할 경우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며
■ 회담목적은 연방제 통일과 남북 경제교류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었다.  
■ 4자회담은 잘 응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쌀을 준다면 나올 수는 있겠으나 딴 이야기나 하며 시간을 끌 것이다.
■ 북한이 ‘3+1’ 회담을 주장한 이유는 중국의 조선문제에 대한 간섭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 북한 고위인사 대부분중 대미협상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으며 대미 협상이 김정일의 권위와 위상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4자 회담 참석에는 반대하고 있다.  
<민간급 접촉>
■ 조선기독교연맹 위원장 강영섭은 통일전선부 사람들이 작성해 주는 것을 읽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며, 북한에서 종교를 믿으면 곧바로 통제구역으로 쫓겨났다.
■ 민간급 접촉은 김정일의 지시로 통전부에서 전담하고 있으며 남한 사회를 교란시키기 위해 재야단체 등을 반정부 투쟁에 끌어들이려는 유인술책이다.
■ 또한 당국간 대화 거부입장을 정당화하여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고 국내 일부단체의 대북접촉을 부추겨 통일국론을 분열시키면서 경제지원 등도 얻어내보려는 속셈이다.  
<남북 경협>
■ 남북경협은 대외경제위 산하 ‘대외경제협력 추진위’가 주관하고 있으며 동 기구는 크게 나진·선봉투자, 금강산 개발, 남한 기업인 접촉 등 3가지 업무를 담당한다.
■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비단섬을 경제특구나 관광특구로 개발하려고 하는 것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1일 관광을 시키는 정도일 것이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 북한이 나진·선봉지역을 개방한 것은 폐쇄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국제적 비난을 모면해 보기 위한 것으로 남한기업의 투자는 원하고 있지 않으며 남한기업인에게는 경영권을 절대로 주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