欺의 終焉

이름 : 김진욱     번호 : 116
게시일 : 2003/09/03 (수) AM 03:30:02  (수정 2003/09/03 (수) AM 03:45:12)    조회 : 72  



전쟁에 이기고 지는 것은 결국 적을 얼마나 잘 속이느냐 하는데 달려 있다.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기(欺)의 싸움이요, 그 본질이 欺이기 때문에 군인은 欺에 능해야 한다. 전쟁은 정직의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의 게임이다. 그러므로 군인은 정직의 문제를 초월해 있어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전쟁을 치루는데 있어서 전략적으로는 물론 정이어야 하지만 전술적으로는 현실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기가 필요하다. 따라서 전술적인 제대의 지휘관은 전략적인 제대의 정을 성취하기 위하여 기를 써야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제 다시 그 문제를 생각해 본다. 과거의 크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이야기하기에 또는 손자병법을 이야기하기에 이제 우리 인류가 사는 이 지구는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그 당시에는 국가가 오로지 선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었다. 국가를 넘어서면 거기는 이미 정의나 페어플레이의 영역이 아닌 약육강식의 원시 사회상태가 있었다. 적국과 아국이 뚜렷했고 국가가 이성을 실현하는 한 약육강식의 영역에 있는 상대국은 분명 비이성적이고 불의로 가득찬 악의 집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언론과 인터넷이 이 세계를 정의의 영역으로 바꾸었다. 오히려 국가라는 체제가 과연 이상적으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체제인가 하는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고 봐야한다. 이런 변화된 상황속에서 전술가들은 '欺'의 문제를 다시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 '欺'는 과연 전쟁의 본질인가.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이 시대에 있어서 전쟁의 본질은 기가 아니다. 그것이 전술적인 제대이건, 전략적인 제대이건, 뭐 또 정치적인 제대이건 간에 기의 효용은 이제 없다. 단지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짧은 순간 효용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欺'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는 그 효용의 지속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지나면 '正'의 효용기간이 이어지고 그것은 영원하게 지속될 것이다. 적이건 아군이건 속이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안된다. 오히려 과거의 행태를 보면 적을 속이라고 가르쳤더니 그 재주로 아군이나 속이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군인에게 있어서 아군을 속이거나 국민을 속이는 것처럼 더 큰 범죄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