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이익과 위협에 대한 국민 공감대
military
2017년 10월 10일 12:17
조회 4232
국가이익과 위협에 대한 국민 공감대
명절에 가족들과 ‘남한산성’ 영화를 보았다. 청이나 명이니, 주화니 척화니 하고 이조판서 김명길과 예조판서 김상헌이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인조 임금은 처음에 척화파의 주장을 따르다가 급기야 주화파의 주장을 따르게 되는데 결국 굴욕적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치르고 소현세자를 비롯하여 죄없는 백성들 50만이 청으로 잡혀간다. 조정에서 정치하는 사람들의 잘못으로 선한 백성들이 무참히 도륙되는 모습을 보면서 필자도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그래서 이걸 화두로 발행인의 메시지에 써보려고 인터넷을 뒤져 보니 박원순 시장이 그도 명절에 남한산성을 보고 오늘의 우리의 상황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개탄하는 글이 떠있다. 박원순 시장이 예나 지금이나 상황이 똑같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때와 똑같이 또 미국이니 중국이니, 북한과 대화해야 하느니, 강경하게 맞서야 하느니 논쟁을 벌일 것이 뻔한 일이다. 우리 대통령이 이쪽 저쪽으로 갈지자를 걷다가 병자호란 때와 똑같이 선한 우리 국민들이 무참히 희생당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국제사회를 알만큼 알았다고 보는데 이제 뭔가 다른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때보다 더 발전된 생각, 더 전략적인 생각, 더 과학적인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말이다. 청이나 명이 아니라 백성의 이익이 먼저고, 미국이나 중국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이 먼저가 아닌가? 청이 압박을 하건 말건, 명에 대한 명분이 있건 없건, 임금이 대신들과 함께 백성의 이익을 정확히 가려 단호하게 대처했어야 했던 것처럼 지금도 국가의 장단기적인 이익을 정확하게 가려 단호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백성의 이익, 국가의 이익이라는 근본을 생각하지 않으니 예나 지금이나 파당이 지어지고 당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중국이 압박을 하건 말건, 미국과 동맹을 하건 말건, 철저하게 국가의 이익을 가려 국가의 이익에 반하면 대척을 하는 것이고, 국가의 이익에 맞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 대통령과 박원순 시장과 같은 정치하는 이들이 이념이니, 노선이니, 명분이니 그딴 거 말고 객관적으로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국가의 장단기적인 이익을 잘 가려 대처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건, 중국이건, 일본이건 그들에게 우리는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아니고 오로지 우리의 국가이익, 우리 국민들의 이익에 따라서 결정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라 말이다. 그래야 그 친구들도 ‘아~ 한국도 이제 파당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이익을 철저히 계산해서 거기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는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야 그들도 우리의 어느 파당의 주장에 흔들리지 않고, 또 대통령을 비롯하여 어느 정치인에 의존하지 않고 한국의 국가이익, 한국 국민들의 이익을 고려하여 한국에 대한 그들의 장단기적인 정책을 결정하지 않겠느냐 말이다. 우리의 국가이익이 뭔지, 국민들에 대한 장단기적인 위협이 뭔지, 그것을 모든 과학적인 방법과 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우리의 내부에서 철저히 계산해내라 말이다.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갈등이나, 북한과의 대화냐 제재냐 하는 갈등은 우리의 장단기적인 이익과 위협에 대한 공감대가 이루어지면 저절로 해소되는 것이다. 그런 이익의 계산과 위협의 계산이 없으니 제대로 된 전략과 전술과 작전이 나올 리 만무하다.
영화 속에서 김명길은 ‘의리는 개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국가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제사회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일이다. 오직 나라의 이익, 국민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 이순간 우리나라의 이익에 반하면 우리의 적이고, 우리나라의 이익과 맞으면 우리의 친구인 것이다. 창군 이후 우리 군은 스스로 나라의 위협을 계산하지 않은 채, 모병을 하고, 편제를 하고, 무기를 갖추고, 훈련을 해왔다. 필자가 군에 있을 때, 육대 과정의 군사교육을 받으면서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던 것은 우리가 우리의 위협을 분석하여 우리의 전략과 전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위협에 따른 미국의 전략과 미국의 전술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의 어떤 전술적인 측면이 한국에게는 나라의 운명을 가르는 치명적인 전략적 요소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또 미국의 어떤 전략적 측면이 한국에게는 실질적으로 하나의 전술적 차원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우리의 위협을 스스로 분석하고 우리의 위협을 막을 수 있는 우리의 전략과 우리의 전술을 스스로 짜기를 주저하고 있으니 오호통재(嗚呼痛哉)로다.
필자가 처음 군에 입문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 장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훈련 교관에게 장갑을 잃어버렸다고 보고하니 내가 보고를 잘못했다며 기합(지금은 얼차려라고 쓰고 있다)을 주었다. 그들은 장갑이 아니라 ‘수갑을 분실했다’고 다시 보고하라고 했다. 일본식 표현을 써야 ‘군기가 잡힌 보고’라는 어처구니 없는 교육이었다. ‘장갑을 잃어버렸다’는 순수한 우리 말은 군기가 빠진 사제(私製)말이고 ‘수갑을 분실했다’는 일본식 표현이 육군사관학교의 기초군사훈련 생도들에게 강요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필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그때부터 도대체 어떻게 우리 군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연구하였고, 미 군정의 bamboo plan과 한국군의 창군과정을 확인하면서 그러한 상황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박원순 시장과 같은 정치하는 이들이 남한산성을 보고 그의 표현대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또 분노가 치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철저하게 연구하고 대책을 마련해 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