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름 : 김진욱     번호 : 178
게시일 : 2004/04/21 (수) AM 07:00:07  (수정 2004/04/21 (수) AM 07:04:09)    조회 : 263  




법정스님이 오랜만에 속세에 나와서 법문을 했다.

“용서가 있는 곳에 신(神)이 계십니다. 본래부터 원수는 없습니다. 순간순간 업(業)을 쌓음으로써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허물을 들추고 꾸짖고 나무라서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사랑과 이해의 통로인 용서가 사람을 정화시킵니다. ”

우리 민족은 사실 용서의 민족이다.
사랑과 이해의 민족이다. 누가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그 인간을 사랑하기에 그만 그 잘못까지도 그 죄까지도 덮어 버린다. 아마도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불교의 가르침을 받아왔고 또 유교의 이상을 실현해 왔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바로 그런 것이 우리 사회를 더 혼탁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죄와 사람을 구분해 주어야 무엇이 잘못인지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용서되어야 하는지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스님은 “봄날 만물이 소생하는 것은 훈훈한 봄기운 때문이요, 가을날 잎이 지는 것은 차디찬 서릿바람 때문”이라며 “인간의 허물은 훈훈한 봄기운처럼 용서하면 저절로 고쳐진다”고 말했다. 그는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 다만 나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만을 보라’는 법구경 구절을 소개하며 “허물을 가지는 것이 중생계의 속성이며 그것을 용서해 삶의 찌꺼기인 업을 맑히는 것이 또한 신앙과 수도생활”이라고 말했다.

어떤 잘못도 어떤 죄도 사랑과 자비로 대하면 결국은 눈녹듯이 사라진다는 이야긴데 그것이 100년 1,000년을 본다면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런데 죄와 사람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그런 개념의 혼란이 우리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혀 왔다. 중생들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없이 그저 좋은 법문, 좋은 이상이나 설파하고 그것이 세속에서 어떻게 적용이 되고 있는지 방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업이 아니고 무엇이랴.

사람이 아니라 죄 그 자체가 용서되고 잘못 그 자체가 용인되고 허물이 잊혀지고 하는 그런 풍토를 악용하는 악인들에 의하여 선한 중생들이 당하는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스님은 “이 봄날,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무엇이든 드나들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람이 꽃피어 나는 소식이 가득하도록 하자”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업의 그물에서 벗어나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내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니, 나머지는 눈부시게 피어나는 저 나무들에게 들으시기 바란다”고 했다.

그렇게 좋은 말 해 놓고 또 자연에서 배우라고 해놓고 그는 또 훌쩍 산으로 들어갔다. 그의 말을 정치 몰이배, 언론 몰이배들이 아전인수격으로 끌어다 쓸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욱 더 황폐하게 만들어 왔다. 차라리 그런 종류의 법문보다도 요즘 유행하는 어떤 외설 코미디언들의 말속에서 더 지혜를 찾을 수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은 존중하되 죄는 가려야 한다. 태생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 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고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의 유일한 해답임이 분명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사람이 아니라 죄를 용서하고 허물을 용서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이런 혼탁한 사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