步兵과 矛盾
박경석
군대의 꽃은 보병이다. 두말할 나위없이 승리의 최종 결정은 보병의 점령으로 이루어진다. 걸프전 당시 미국의 막대한 초현대 군사력을 집중하여 이라크를 강타하였지만 결국 후세인을 완전히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명료하다. 보병이 바그다드에 진주하여 결판을 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보병의 역할은 전쟁의 주역으로서의 위치에 변함이 없다. 육군의 다른 병과들이나 심지어 해군이나
공군도 내막을 알고보면 보병의 전투수행에 조역에 불과하다. 아무리 전투병과라고
하여 기갑, 포병, 공병, 통신병과들을 추켜 세울지라도 결론은 보병의 지원역량일
뿐이다.
그렇다고 하여 보병이 연극무대의 주연급 배우이거나 불후의 명작인 영화의 주인공과는
다르다. 그들의 호화로움과 각광을 받는 행위와는 달리 늘 죽음과 함께 걸어야 하는
위험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전쟁의 성격에 따라 변동은 있지만 일반적인 분석에 의하면 보병의 전사율은 다른
모든 병과나 해군 공군의 합산된 전사율보다 무려 10배에 이른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기계화 보병의 출현은 보병이 장갑차의 보호를 받는 형태로 진전되어
속도나 위험도에서 어느 정도의 혜택을 입는다 해도 최후의 승리는 그 장갑차에서
내려 땅을 밟음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따라서 보병은 공격형이어야 되고 능동적이어야 하는 전제가 있다. 보병의 방어형태는
전쟁발발 이전 상태이거나 힘에 부쳐 정비의 필요성이 있을 때에 한정된다. 그러므로
보병은 정체가 아니라 다이나믹한 역동성이 생명이다. 보병이 죽치고 앉아 있기만
한다면 그 보병이야말로 전장의 장애물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보병에
대하여 조언을 해주고 싶다.
나는 31년간의 보병근무중 세개의 병과뱃지를 달았던 경험이 있다. 하나는 지금의
뱃지가 아닌 총과 총을 X자로 한 미군의 보병뱃지이고 두번째는 총과 칼을 X자 표시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보병뱃지였다. 그리고 맨 나중에 부착했던 것은 방패와 방패를
X자로 하여 단도 같은 형태의 아리송한 칼을 세운 지금의 뱃지이다.
나는 마지막 방패뱃지를 바꾸어달 때 아마 갓 대령으로 진급할 때였는데 새 뱃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 새 뱃지는 다름이 아닌 모순이기 때문이었다. 모순이란
서로 부정하여 그 중간에 제삼자를 용인하지 않는 것으로 모순이 있는 한 이론적
사고(思考)가 불가능하며 모순이 없다는 것이 논리적 사고의 필수적 요소이다.
옛날 중국의 초나라에서 창(矛)과 방패(盾)를 파는 자가 있었는데 이 방패를 어떠한
창으로도 뚫리지 않는다고 자랑하다 다음에는 창을 가리키며 이 창은 어떠한 방패도
뚫는다고 으쓱대었다. 그 곁을 지나가던 사람이 그 광경을 열심히 보고 있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러면 당신 창으로 당신 방패를 뚫어 보시오'라고 말하자 대답이
막혔다는 고사에서 모순이 유래되었다.
그런데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군대의 보병이 모순을 달고 다닌대서야 말이 되겠는가?
더구나 칼은 하나인데 방패는 둘씩이나 되니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난센스다. 1968년
대령시절, 월남전 한국군 교리 강의차 자유중국 참모대학교에 파견되었을 때 우리
보병 뱃지가 웃음거리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잘못된 것이 인정되면 빨리 고칠수록 현명한 처사이다. 세계 어느나라 군대의
보병도 방패를 달고 다니는 경우는 전무하다. 미국 군대의 보병뱃지는 소총 둘을
X자로 표시한 것인데 그런 형태의 보병뱃지가 세계의 보병뱃지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제정된 보병뱃지는 총과 칼을 X자로 한 것이다. 미학의 측면에서
볼 때도 손색이 없다. 더욱이 구한국 군대나 광복군 군가에서도 총칼이라는 가사가
자주 눈에 띈다.
우리의 보병뱃지였던 총칼은 세계화 추세에도 맞고 우리의 주체성에도 합치된다.
따라서 나는 우리 군 당국에 보병뱃지 환원을 제의하는 바이다. 그리고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 총과 칼의 보병뱃지를 달고 우리의 선배와 후배 전우들이 한국전쟁에서
또한 월남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그 전쟁에서 순국한 영령들이 국립묘지에
잠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보병은 모순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