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관. 배주간. 이국장


박정아 (본지 취재부 차장)


필자는 여성이다. 병역 의무가 없는 여자이기 때문에


병역(兵役)문제 칼럼을 쓴다는게 모순 같지만,


요즘 외무장관 사퇴뉴스 등이 담긴 신문 기사들을


보고 생각나는게 있어 이 글을 쓴다.



대학 졸업후 사단법인체 사무국장일을 보던 내게 기자의 길을 걷도록 한 사람이
당시 그 법인체에서 발행하던 월간지 주간(主幹)을 맡아 보던 배 모(某) 선배 기자였다.


배 주간 고향이 전남 함평이었기에, 이번 공장관의 인민군 근무지가 함평·영광이었는데
기사와 관련해 묘한 감상이 떠 올랐다. 외무부장관 사퇴사유에 대해 건강 악화설,
인민군 복역설, 업무 마찰설 등이 여러 추리로 보도되면서 인민군 전력설엔 중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피동적일 수 밖에 없었다는 당시 상황에 대한 동정론이 제기되는
논조도 있다. 인민군 복무전력은 사실이지만, 어린 나이와 정황이 불가피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다.


배 주간은 육군 하사로 만기전역한 것으로 안다.


그가 운명론적으로 제기한 화두(話頭)속에는 농부였던 부친이 전시에 인민군과
일면식의 접촉이나 조우한 일도 없었는데 당시 그의 부친은 마을 이장(里長)으로
리스트에 올라 본인은 물론 그 후손인 배 주간까지 연좌제에 묶이게 되었단다.


행세깨나 했던 당시 부역자들은 붉은 활동에 대한 예방책을 세웠지만 우매한 백성은
하늘을 우러러 죄없음만 알 뿐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리스트에 올라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후일마저도 예측치 못한 죄(?)가 되었단다.


어릴땐 누구나 신동이라고 자랑했지만, 배 주간은 정말 그 곳 지방에서 명문교였던
모(某) 중학의 특수반(우수반) 학생이었지만 연좌제에 묶인 사람은 “5급(현재 9급)공무원도
못한다."는 원죄(?)를 알고선 판·검사의 꿈을 포기했었다.



그 연좌제의 위력은 그가 대학시절 학생회장 (학도호국단시절이라 문교부의 임면동의가
필요했던 시절) 취임도 거절당한 에피소드가 말해준다. 불가피론으로 변명할 수 있는
전력가는 장관까지 지내고도 동정을 받아야 되지만, 연좌제로 우매한 백성은 말단
공무원의 응시기회마저 운명적으로 박탈당했던 게 우리의 이데올로기 현실이 아니었던가?


배 주간과 함께 월간지 근무시 그의 고교동창인 모(某) 기관 李 某 건설과장이라는
사람이 사무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


“야 임마! 가장 친했던 니놈이 왜 한번도 날 안찾아 오니, 다른 놈들은 뻔질나게
찾아와 내 소스를 얻어 돈도 잘 벌고 하는데……"


“나는 너같은 친구를 둔 적이 없어."


그가 돌아간 후 배 주간이 그를 냉대한 사연은 간단했다. 존경했던 은사님께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고교시절 절친한 친구였고 이(李)의 부친은 그
학교 도덕 선생님이었다.



대학 재학시 입대 신검을 받게 되어 입소한 부대에서 다른 대학에 재학중인 이
모라는 친구도 함께 만나게 되었다. 그런 그가 도덕 선생님의 시골 면사무소에 뻗힌
빽으로 무학(無學)사유의 병역 면제판정을 받는 것을 보고 먼 친구가 되었단다.행정고시에
합격, 노른 자리라는 부서의 장을 거쳐 지금은 국장(局長급의 중앙부서장의 이력에
과연 그의 무학(無學)의 기록이 남아 있을까?


출세를 위해 무학의 병역 면제자가 대학원 졸, 석사.박사로 다시 둔갑되지 않았을까?


불행한 우리 민족의 수난사가 공장관, 배주간, 이국장 세 사람의 인생을 제멋대로
바꾸는 요술사 역사이기도 한 것일까?


“머슴이 배(裵)씨 주인 성을 기억하기 위해 먹는 배가 둥그렇다고 생각해 동그라미를
그려 두었다가 꼭지가 빠진 그림을 보고 공(孔)대감이라 불렀다"는 지난 날
배주간의 농담이 묘하게 떠오른다.



요즘, 국회의원의 3분의 1, 장·차관 등 고급 공무원 다수가 병역 미필자라는
기사를 보면서 이런 회상을 떠올린다.


오히려 작대기 하나 이등병이 이들보다도 정말 애국자들이다. 추운 날씨에 조국의
안녕을 위해 고생하시는 우리 군인 아저씨들 화이팅!



주(註): 시론(時論)칼럼이기에


외무장관 사퇴파동시 쓴


글이었으나 지난호 편집시 누락으로


이번호에 게재하니 독자양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