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군단(ROTC) 출신장교들의

학군단(ROTC) 출신장교들의


대성을 바라며



송택구



·전 미국무장관 마샬(Marshall, George


Catlett 1880-1959)장군도


학군단 출신이었다.



우리나라의 학군단 일반개요



1961년 6월2일 우리나라에도 학도군사훈련단(ROTC=Reserve Offiicer`s Training
Corp)


이 창설되고 그로부터 2년후인 1963년 2월20일1기생 2642명이 육군소위로 임관
되었다.



그후 1996년 34기에 이르기까지 학군단 출신장교로 임관된 수는 모두 110,247명이나
된다. 이들중 1기생 박세환의원(신한국당)은 제2군사령관을 역임 육군대장으로 예편
하였고, 2기생인 김진호장군은 4성장군인 육군대장으로서 현재 제2군사령관으로 보직
근무중에 있고, 3기생인 서경석장군은 3성장군인 육군중장으로 현재 제6군단장으로
보직되어 근무중에 있다. 이밖에도 약30명의 현역장군이 배출되어 주요 부서에서
남달리 우수하게 복무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예편한 장군 20명을 합치면 학군단 출신 장군의 배출이 50명이 넘는 실정이다.
많은 인원이 예편하고 지금 현역에 머물러 있는 장교는 약 12,000명인데 이중 약
9,500명이 중,소위로서 대부분이 소대장으로서 보직되어 근무중에 있으며, 나머지
인원중에서 약간의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직위에서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후방각처에서 국토방위의 숭고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학군단 출신 장교들은 모두 지식 수준이 높은 가운데 군사훈련은 물론이고, 부대운영을
위한 인사행정, 정보, 작전교육, 군수 그리고 각 병과 모든 분야에서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전역한 장교들은 정치계의 15대 국회의원 17명(전국회의원,
지구당위원장 30명),교육계는 초,중, 고교 교사 3,560명, 교수 2,840명 합하여 6,400명,
경제계에는 기업체장 7,100여명, 이중34.1%가 100대 기업임원, 금융계에는 약 7,400명
근무자중 지점장이 467명, 언론계에는 1,200여명 근무자중 부국장급이상이 40여명,
건설계에는 9,000여명 등 이외의 각계각층 전분야에서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일반예비군 또는 동원 예비군으로서 국가의 전쟁위기시에는 언제든지
참전 할 수 있는 태세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학사학위를 소유한 학도군사훈련단 출신
장교들은 군의 지휘관으로서 덕성과 군사지식을 쌓고 있으며 육군사관학교 출신 못지
않은 능력 있는 장교들을 많이 발견 할 수 있다.


군에 소질있고 필요로 하는 장교들은 장기복무지원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하게
요구되나 군에서 유능하다고 인정되는 자는 사회에 나가서도 유능하다는 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분들은 조기 전역을 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커다란
일꾼이 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참된 삶을 살고저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장기복무를
신청하는 것이 좋을 상 싶어 여기에 마샬 전미국무장관의 빛나는 생애를 소개 하고져
한다.


이제 우리군은 창군 51주년을 맞이 하였으며 그 동안에 찬란한 역사와 전통도
수립되었고, 학군단이 창설한지도 36년이 지났으니 청년기가 지나 장년기를 맞이
하였음으로, 질서정연한 가운데 안정되고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우리군은
창설시절과는 달리 특히 학군단제도가 발족된 시점에서 획기적으로 발전·향상되어
최신 무기체제로 편성정비 되었고, 양호한 보급에 안락하고 행복한 병영생활을 위하여
각종 편의시설도 거의 완벽하리 만큼 되어있


어 우리나라의 중산층 수준이상에 달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같은 좋은 환경과
여건하


에서 모름지기 그 누군가가 순풍에 돗을 달고 생애를 마친 마샬장군과 같이, 그리고
우리나라의 박세환의원(예비역 육군대장),김진호 제2군사령관(육군대장),서경석 제6군단장(육군중장)같이
출세가도를 달려 볼 수 있을테니, 학군단출신장교들도 장기복무를 희망하여 군을
바탕으로 대성하여 출세 할 수 있는 길을 모색 하였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이글을
쓴다.



마샬장군의 생애



마샬장군은 제2차세계대전중 미국의 국군및 공군의 편성과 교육훈련을 지휘하였던
미국의 육군장관이었다. 그후 국방장관으로서 근무하였으며 전후 유럽회복계획(Marshall
Plan for European Recovery)의 창작자가 되었고 1953년 고귀한 평화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그는 1880.12.31. 펜실바니아(Pennsylvania)에 있는 유니온 타운(Union Town)에서
태어났으며 렉싱톤(Lexington)에 있는 버지니아 군사연구소(Virginia Military Institute)를
1901년에 졸업, 1902년 2월에 육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1902년 2월 그는 임관되던
날부터 소위계급으로 필리핀에서 첫번째 군복무를 약1년간 실시하였다.


그후 그는 누진 진급하여1944년 12월 군의 최고계급인 육군의 원수(元帥)가 되었다.
그는 군에서 가장 높은 5성(星)장군으로서 돌아갈때까지 그가 맡은 임무에 적극적이었으며
충실하였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시에는 제1군사령부 작전처장 그리고 제8군단 사령부
참모장으로서 근무하였다. 그는 성 미하이엘 작전(The St, Mihiel Operation)계획을
초안 하였고, 그리고 그후에 500,000명 이상의 병력과 2.700


문 이상의 야포를 메우세 알곤네 전투(The


Meuse Argonne Battle)를 위해 알곤네 전방으로 이동시키는 문제의 임무를 부여
받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제1차세계대전후 그는 1919년부터 1924년까지 퍼싱(John
G. Pershing)장군의 전속부관을 지냈고, 1924년부터 1927년까지 중국 천진에 있었던
보병 제 15연대에서 근무 하였다.


1927년부터 1932년까지 그는 훠트베닝 죠지언(Fort Benning Georgia)에 있는 육군보병학교에서
교장보좌관으로 교육분야에서 일하였고 그는 브레들리, 코린스, 리치웨이, 스틸웰,
베델 스미스,홋제, 그리고 볼테(Bradley, Collins, Ridgnray, Stillwell, Bedell
Smith, Hodge, and Bolte)독일군에 의해 폴랜드에 침략이 시작되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때 그는 1939년 9월1일부로 미국의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 되었다. 그로부터
6년간 마샬장군은 새로운 사단의 편성, 부대교육훈련, 신무기체계 및 장비의 개발
발전,그리고 고급지휘관의 선정·임명·조치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때 일본으로부터
진주만 기습공격을 받았다.


그는 루즈벨트대통령의 전략에 관한 고문으로서 카사블랑카, 퀘백, 테헤란, 얄타,
그리고 포츠담회의에 파견되었다. 이어 마샬장군은 1945년 11월 21일에 합참의장에
보직된지 몇일 후에 중국대사의 직위로서 트루만 대통령의 특별대표자로서 임명되었다.
당시 중국의 내란을 조정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이윽고 1947년1월21일 트루만 대통령에 의해 미국 국무장관으로 임명되었고 그다음
2년간은 모스코바,리오데쟈네로, 보고파, 파리, 런던, 그리고 뉴욕등의 국제회의에
우두머리로서 활약하였다. 1947년 6월 5일 하버드대학에서 마샬계획으로 잘 알려진
유럽회복계획(European Recovery Plan)을 제안 하였는데,이것이 1948년 4월에 법률로서
제정되었다.


그가 국무장관으로 있는 동안 그리이스와 터어키에 대한 원조계획, 이스라엘 신정부의
승인,그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최초로 토의하여 조약을 체결 하였다. 그는
1949년 1월 21일 국무장관직을 사임하고 난 뒤에 미국전쟁기념사업위원회 위원장
및 미국 적십자사 총재로서 근무하기도 하였다. 1950년 9월 21일부터 1951년 9월
12일까지 트루만 행정부의 국방장관을 지내기도 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그는 NATO조약기구를
크게 도왔다. 또한 그는 한국에 미군병력을 강화하고 인력과 자재생산 증가를 위하여
용감하게 밀어부쳤고, 또한 세계군사교육계획을 수립, 이를 실천하기 위해 강력하게
추진 하였다.


그의 계획의 일환으로 한국군 장병도 6.25전쟁중이었지만 미국의 각종 군사학교에
수차에 걸쳐 많은 수의 장병이 파견되어 군사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대신하여 1953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였고, 같은해에
그는 그가 걸어온 발자취에서 가장 크게 공헌한 제2차세계대전후의 유럽의 경제회복을
위한 원조를 통해 국제적 평화와 이해를 진전시키는데 노력을 다한 것이 인정되어
이를 치하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여받았다.


그는 1959년 11월16일 워싱턴 디,씨 (Washington D.C)에서 서거 하였으며 알링톤(Aringtdn)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그가 남긴 참되고 보람되고,가치가 드높은 혁혁한 공로는
영원히 불멸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학군단 출신장교중에서 마샬장군같은 큰 인물이
나오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학도군사훈련단 출신장교들은 문무를 갖춘 장교로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 군생활에 있어서 무엇이든지 어려운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국가와 민족을 위한 한알의 밀알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