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역사를 찾아서
여운건
1945년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50년이 지났다. 이 사이에 우리는 6.25
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여러차례의 정변도 치뤘으며 크고 작은 많은 국제적 행사도
갖었다. 그뿐인가. ‘아시아의 龍’이니 ‘漢江의 기적’이니 하면서 우리 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전세계가 경악과 시기의 눈초리로 장래를 점치기도 하였다. 이와같이
우리 민족은 불과 50년 사이에도 많은 고통스러운 연단과 시련을 받으면서 피땀나는
노력으로 세계인의 선망의 대상도 되었건만 우리는 지금 무질서와 혼탁과 불의로
점철된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국적없는 망상과 투기로 가득찬 생활속에
자아(自我)를 잃어버린 채 현실을 살고 있다.
이것을 자본주의의 극치라고 찬양할지 모르지만 법의 질서와 도덕의 범주안에서
아름답게 커나가야지 무법천지속에서 나만의 영광을 추구하고 나만 좋으면 된다는
개인의 이기적인 바탕위에 재물이 많으면 무엇하며 영광을 차지한들 어디에 쓰겠는가?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타락되었으며 이 혼탁속에서 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일찌기 우리 선배들은 한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는 그 민족이
얼마만큼 자기 역사에 대한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느냐, 그리고 얼마나 투철한
역사의식과 강열한 의지를 가지고 그 시대적인 과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바로 민족의 역사가 민족의 시대적 과제를 일깨워줄 뿐만 아니라 미래를
개척해나갈 불멸의 활력소를 제공해주는 무진장한 민족의 보고(寶庫)이므로 역사의
교훈을 소중히 반추하는 민족은 결코 멸망하지 않고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 역사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서구의 영화를 통하여 그들의 역사를 보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개척을 위한
투쟁과 활기 넘치는 생활 그리고 사랑으로 엮어진 인간관계를 쉽게 느끼게 된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역사는 개척정신 보다는 자기보존을 위한 보수적이며 국수적인
정신, 사랑보다는 모략과 시기의 극치를 이루고 전쟁과 패배, 굴욕과 무능의 역사로,
인간의 사랑보다는 저주와 질투로 연결된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이 통상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 역사의 진실이고 참모습인가?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못난
인간들이었는가?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그 유구한 역사 가운데 위대한 인물은 몇 사람의 전쟁영웅과
왕밖에 없었다는 얘기인가? 좁은 반도안에서 주변국들의 노리개감이 되어 왔다는
이야기인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재를 사는 우리는 조상들의 어떤 모습에서
무엇을 취할 것인가? 참으로 답답하고 분통터지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행한 것은 우리의 역사를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힘차고 찬란한 과거를
갖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동북아시아의 주역으로서 한반도는 물론이고 중국
대륙과 만주, 몽고, 일본, 대만(유구)까지도 지배하며 살았던 무적의 동이(東夷)였음을
여러 사서(史書)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러한 흔적들은 과학적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입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조시대의 우리 학자들은 우리나라가 마치 명나라의
속국처럼 역사를 꾸며놨고 일제는 식민지화를 위한 부패된 역사로 비하시켜 논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 조상들에 대한 왜곡된 기록이다.
이제는 우리 역사의 진실속에서 잃어버렸던 우리의 얼을 되찾아 얼빠진 민족의
탈을 벗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확신한다. 만약 여기에 얼빠진 사람, 즉 뇌사상태의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를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사람은 죽은
자나 다름이 없다. 이와같이 얼이 없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나 다름없다. 바로 역사없는
민족, 죽은 역사를 믿고 살아온 우리 민족은 죽은 민족일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역사의 거울앞에 서서 현실을 바라보고 미래를 설계하며 번영을 약속받기
위한 역사의 진실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고 확신한다.
1. 그렇다면 우리 역사는 왜 그렇게 왜곡되었을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5가지를 들 수 있다.
-국민의 역사의식 희박
-의도적인 역사왜곡 및 사서의 부족
-부정적 역사관
-반도사관
-자율성없는 역사기록
첫째는 우리 국민성 자체가 기록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역사의식이 희박한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다 알고 있는 사실도 장차 사학자들의
판단에 맡긴다고 책임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한 역사물이 될 고고학적 자료를
감정으로 소멸시켜 버리는 예가 최근만 해도 수없이 많았다. 일제의 잔재이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다는 이유로 그들이 만들어논 역사물을 모두 파괴해버렸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의 동상이 4.19 직후 독재자라는 이유로 부서져 서울시내를 끌려다녔다.
대통령의 말한마디로 역사를 규정짓는 일이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과연 역사를
평가하는 기구가 있고 기준이 있을진데 국가적인 판단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기록으로만 알 수 있는 역사는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기가 더욱 어렵다. 더더욱 어려운 것은 기록조차도 분명치
않은 상고사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게 되고 많은 사람이 주장하면 그것이 바로
정사라고 인정해버렸다는 것이다.
둘째는 의도적인 역사왜곡과 사서(史書)의 부족을 들 수 있다.
우리의 고대역사는 많은 전란과 파쟁으로 인하여 역사의 기록이 거의 모두 훼손되고
그 흔적을 찾기도 어려운 상태이다. 우리 역사가운데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부터
끊임없는 전란과 세력의 변화 등으로 역사의 보존 자체가 어려웠을 것이고 이조의
개국과 관련하여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고려 역사의 왜곡, 임진란과 병자호란 등의
외침때마다 우리 사고는 불에 탔고 사서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특히 일제는 1910년 한일합방이 이루어지자 식민사관의 날조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조선총독부의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통치 정책을 보면 식민통치의 최초 1단계는
역사정복 단계로서 식민사관을 확립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일제는 1915년에
‘조선반도사 편찬’작업을 정식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이들이 주장한 ‘조선 반도사
편찬’의 목적은 조선민족을 충량한 제국신민으로 만들기 위하여 첫째, 조선인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함으로써 민족혼과 민족문화를 상실케 하고
둘째, 조선인이 자신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능이나 악행을 들추어 내어 선조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며 세째, 후손들이 조선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관하여
부정적이고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한다음 일본의 식민통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일본인들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조선인의 식민통치는 무력통치보다
문화정치가 더 실효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역사왜곡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이를
위하여 그들은 경찰을 동원하여 전국의 서점과 사고(史考)에 있는 역사책은 물론
유학자의 가정에 있는 사서(史書)까지 압수하여 무려 50여종, 20여만권의 사서를
불태워 버렸고 또 일부는 일본으로 가져 갔다고 하니 원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같이 되어 고대를 알 수 있는 사서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통치정책의 2단계는 우리나라의 토속 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를 말살하고 오직 신사참배(神祀參拜)를 강요하여 신앙을 일본식 종교로 일원화하였다.
3단계는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여 표현의 자유를 막고 일어상용을 강요하여
생활을 일본화하도록 만들었다.
4단계는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정복하는 단계로서 우리의 성명까지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여 일본은 그들이 원하는 식민통치를 완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니까
일본은 우리 민족의 혼을 먼저 빼놓고 신앙적인 의지를 꺽은 다음 눈과 입을 막아서
병신으로 만들고 마지막에는 자기가 누구인지 조차 모르게 만들었다. 이와같이 일본은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을 식민통치 과정중 맨처음에 시작하여 우리 민족 스스로가
우리 조상을 미워하고 질시하도록 만들었으며 조작해논 왜곡된 역사를 우리는 철석같이
믿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가증하고 수치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중에도 다행한 것은 해방후에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몇권의 사서가 우리앞에
공개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계획적인 과정에 따라 우리 민족사가 철저히 왜곡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말마다 기록마다 일본인 학자의 역사관과 기록을
근거삼아 교육하고 발표하고 있으며 우물안의 개구리식으로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만이
정당한 역사이고 남의 이야기는 사이비라는 독선적인 사고와 반도사관에 젖어 새로운
기록이나 지식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우리 역사가 왜곡된 세번째 이유는 우리 역사를 부정적 시각으로 판단하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즉 잘한 것은 덮어두고 잘못된 것을 부각시켜 침소봉대하므로서 모든 일이 그릇된
것처럼 역사를 기록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의 여러가지 모습에서도 그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자랑스러운 것, 온세계에 국위를 선양한 것, 경제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한 것, 민족의 저력을 과시한 것 등은 모두 숨겨버리고 소위 민중의
나쁜 감정을 불러 일으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를 부정하고 뒤엎겠다는 한서린
사화(史話)나 타큐멘타리 등을 공영방송에서까지 공공연하게 역사를 오도하는 듯한
인상을 깊게 느껴지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같은 것들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가장 수치스럽고 불리한 방향으로 우리 역사를 기록했던 것이 틀림없다.
역사왜곡의 넷째 이유는 사관의 변천에 따라 현실적인 크기와 위치에 치우쳐 우리
역사의 대강을 한반도로 국한시켰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사관의 변천과정을 보면 대략 왕조사관이 이조중기까지 내려오면서
통치자와 중국중심으로 유교를 기반으로 하는 역사관을 갖었고 그뒤 실학사관이 이조의
전란을 거치는 동안 피폐된 국민생활의 향상과 유교윤리를 벗어나 고증(考證)과 비판정신을
융합한 근대지향적 역사관으로 발전되었다.
그뒤로 일제에 의한 식민사관으로 인하여 한민족의 자주성과 단결력의 파괴는
물론, 반도국가로서의 운명적인 타율성론을 펴내면서 한민족의 당파와 당쟁, 사회적
침체, 봉건제 등은 일본의 우호적인 통치하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통치성 역사관으로
이끌리게 되었다. 여기에 반사적으로 대항하여 한반도 민족사관이 서서히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조심스럽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때의 대표적인 사학자는 백암(박은식),
위당(정인보), 단재(신채호)등으로 민족의 얼과 투쟁중심의 역사관으로 발전되었다.
이와같은 역사관의 변천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여기에서 문제로 남게된 것은 바로
현실적인 국가사관으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이남에서 생겼다고
하는 반도사관이 중심사관으로 되고 말았다.
다섯째는 우리 역사학자들이 자율적으로 역사를 보고 판단하고 기술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조때 명나라(중국)지향적인 대륙중화사상에 영향을 받아 사대주의적인
역사기록, 특히 일본의 한일합방 이후 조직적이며 강압적인 역사조작과 사료(史料)말살
등은 비록 우리 역사라 할지라도 우리 마음대로 쓸 수없는 상태였다는 것은 역사를
왜곡할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다시말하면 우리 역사는 이조때의 명,청(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사상에 의한 의도적인 왜곡과 일제의 목적지향적인 왜곡이 합해져서
우리 역사는 우리 민족과 나라에 가장 불리하고 수치스러운 방향으로 기록 보존되었다고
보여진다.
(◑ 한국 고대사에 관해서 혹 다른 의견이나 보충하고 싶은 의견을 가지고 계신
분은 월간 군사세계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