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에 부린 한국인의 정신


-앙골라 유엔 평화 유지 활동을 마치며-



이상대



1. PKO 개요



가. 개념



이미 각종 언론매체와 정부의 홍보로 널리 알려진 바 있겠지만 PKO란 Peace Keeping
Operations의 약자로 평화유지 활동을 말한다.


이는 UN 안전보장 이사회의 주도 아래 무력을 사용한 평화강제(Peace Enforcement)와
중재, 협상 등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조성(Peace Making)의 중간 개념의 국제적
분쟁 해결 활동인 것이다.


PKO활동은 크게 3가지 즉, 정치, 군사, 민간 분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중 군사
분야는 감시단(Observer) 활동과 평화유지군(PKF)활동으로 세분할 수 있고 우리 앙골라
PKO 한국군 공병부대는 평화유지군(PKF)으로서 활동에 임했다.



나. 우리나라의 PKO 참여


1991년도 9월 12일 북한과 UN에 동시 가입한 이래 UN사무총장의 요청에 따라 1993년
소말리아에 “상록수 부대”를 파견한 것이 우리나라 PKO 활동의 효시였다. 이어
서부사하라에 의료지원단을 파견, 현재 제5진이 활동중이며 ’95년 10월 앙골라 공병
부대가 파견되어 15개월동안 제3진까지 활동 후 ‘96년 12월 23일 철수하였다. 따라서
현재 PKF는 서부사하라 의료지원단만 계속 활동하고 있고, 앙골라 UN사령부 참모요원,
인도·파키스탄 지역과 그루지아에 군사 업저버 및 참모 요원이 계속 활동중에 있다.



다. PKO 참여시 이점



일반적으로 PKO에 참여하게 되면 세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는 PKO참여로 장차 한반도 유사시 UN의 지원 명분을 축적할 수 있고 둘째,
평화애호국으로서의 대외적 위상을 제고시킬 수 있으며 셋째, 분쟁 종식후 당사국과의
우호 협력 및 전후 복구 사업등 민간분야 진출 발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사견으로는 위에서 제시한 세가지 이외에 간접적이나마
군인들의 전투 경험 축적과 국제 감각 체득에 크게 도움이되고 전쟁의 폐해와 삶의
질에 대한 비교를 참여자가 스스로 체험함으로써 애국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2. 앙골라 개황



앙골라(Angola)는 아프리카 남서부에 위치하여 서쪽으로는 대서양을 동남북으로는
잠비아, 나미비아, 자이레 등과 접경하고 있으며 면적은 남한의 약 12배, 한반도의
5.5배, 인구는 약 1,200만, 수도는 루안다(Luanda)로 우암보를 비롯한 18개주로 구성된
나라이다.


앙골라는 15세기경 포르투갈인 Diago Co에 의해 발견된 후 불과 20여년전인 1975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 국가로 브라질 농장에 대한 노예 주공급지였다. 1975년 해방 직후
각각 구 소련과 쿠바, 미국과 남아공의 지원을 받는 3개 정파간의 내전이 발발하여
지금까지 약 20년간 중·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치열한 대립이 계속되다 1993∼4년
제2의 도시 우암보 격전에서 반군의 패배로 중재 여건이 조성되어 PKO 활동이 시작되었다.
UNAVEM(United Nations in Angola Verification Mission ; 유엔 앙골라 검증단)-I,
II를 거쳐 ’95년 2월부터 현재까지 UNAVEN-III가 활동하고 있으며 앙골라 평화이행
과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긍정적 평가와 UN산하기구, NGO (Non-Government Organization
; 비정부조직)그룹 등의 적극적 지원으로 조만간 평화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된다.



3. 앙골라 PKO 한국 공병부대 활동



한국 공병부대는 조립교 자재를 이용하여 내전으로 파괴된 교량 구축을 주임무로
하는 부대로서 활동기간동안 중부 지역에 자리잡은 우암보로부터 수도 및 각 지방에
이르는 주요간선 도로상의 교량 8개를 복구 소통시켰을 뿐만 아니라 총연장 400여Km에
이르는 주요 간선 도로와 인근 도시 공항을 정비 보수함으로써 침체되었던 앙골라
국내의 인적·물적 자원 교류를 활성화시켜 전후 복구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평화의 사도로 앙골라에 파견된 이상 UN으로부터 주어진 임무에 만족할
수 없다는 부대원 모두의 정열적인 의지는 앙골라 국민곁으로 다가가는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사실 앙골라는 우리 나라와 수교국이지만 공식 영사급 외교창구조차 없어
현지인을 명예 영사로 위촉하고 있으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북한은 오래전부터 대사관을
설치해 많은 홍보 활동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앙골라 국민은 ‘코리아’라고 하면 곧바로 북한을 떠올리고 이야기하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난감한 현실에서 우리의 할 일은 자명했다. 바로 우리 한국군
PKO 공병부대의 활동을 통해 한국의 정신과 문화 그리고 북한이 아닌 대한민국을
알리는 일이었다. 이와같은 목적과 의지로 크게 세가지 역점 사업을 추진했다.


첫째, 친화적인 대한국 이미지 조성을 위해 우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장소, 시간을 불문하고 달려갔다.


섭씨 35도에서 40도까지 웃도는 더위속에서도 각종 공공시설, 사회복지시설 등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수하고 지원하였으며 우리가 가진 의료 약품과 기술로 지역 주민을
진료하기도 했다.


둘째, 국민 계몽 운동을 전개했다.


앙골라는 석유, 다이아몬드, 우라늄 등 풍부한 지하자원과 노동력, 광활한 국토를
가진 발전 잠재력이 무한한 나라이다. 그러나 먹고살기 어려우면서도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즐기는 삶의 방식이 몸에 밴 그들에게는 그와 같은 발전 원동력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국민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부 각계인사들도 뼈져리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필요한 시설 및 재원 뿐만아니라 국민 정신을 결집시킬
수 있는 구심점이 없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1970년대 주창되어 한강의 기적이라는
엄청난 세계적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새마을 운동’의 보급이었다. 새마을 운동의
개념과 실천 방법을 정부 각계인사, 언론 등에 홍보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앙골라 국민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부대원 모두가 새마을 청소, 거리 환경정리 등을 실천해서
행동하는 새마을 운동의 본보기를 보이기도 했다.


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우암보 시내에서 전 장병이 동참하여 대대적인 새마을 청소를
실시하자 그 효과는 매우 빠르게 나타났다. 지저분한 거리를 보고도 움직일 줄 모르던
시민이 아침 일찍 청소도구를 챙켜 시가지를 정리하는 모습이 이제는 평상의 일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한국의 정신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것이 ‘태권도’라고 판단하여 우암보
시민을 대상으로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시내 체육공원을 단장하여 태권도 학교를
개설, 현지 청소년을 상대로 태권도를 가르쳤다.


이로 인해 주둔지역 우암보 뿐만아니라 앙골라 수도 루안다, UN군으로 활동하고
있는 30여개국 7,000여명 모두에게 태권도 배우기 열풍이 불기도 했다.


한편 현재에 만족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고기를 먹는 것보다 스스로
잡아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방안으로 부대는 ‘사랑의 학교’를 운영하여
한 나라의 동량지재를 키우고, 우리나라에서 이미 신농법으로서 그 성과를 인정받고
전국 각지에서 실용화되어 있는 신양액재배법을 현지 농민들에게 교육하기도 하였다.


전쟁 고아와 미취학 아동들을 상대로 사랑의 학교를 운영하여 포르투갈어, 산수,
한국어, 영어, 미술, 음악을 가르치므로써 주민들로부터 매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금까지 사랑의 학교를 졸업한 아동들이 줄잡아 500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에는
한국어를 곧잘하여 부대 장병과 무리없는 의사 소통이 가능한 아이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신 양액 재배법은 부대 주둔지내 설치된 5동의 비닐하우스에서 실제로 배추, 무,
고추, 상추 등의 재배에 성공함으로써 현지 농민들에게 아프리카에서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신선한 채소를 얼마든지 재배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다.
이에 고무된 주민들에게 부대는 우리나라에서 준비한 씨앗과 양액 재배를 위한 재료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역점을 두고 추진한 것은 “한국의 문화와 발전상 홍보”였다.


’76년 외교 관계를 수립한 북한은 수도인 루안다에 설치한 대사관을 중심으로
매년 문화 행사단 방문 공연등 조직적인 홍보를 해온데 비해 겨우 ’92년 1월에 외교
관계를 수립한 우리 나라는 영사관조차 없이 20여명에 불과한 교민과 수산업, 자동차,
약간의 가전제품만 상륙해 있어 앙골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 ’95년 10월
이전까지만 해도 “KOREA”는 곧 북한을 의미하기도 했다.


제 1진과 2진이 열심히 노력한 ‘한국의 날’ 행사 덕분에 우암보 지역에서는
한국의 사물놀이, 태권도 등에 대하여 잘 알려져 있었지만 전국적인 홍보는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앙골라 PKO 활동을 마무리해야 하는 제3진으로서 앙골라 전체
인구의 40%가 거주하는 수도 루안다에서 영향력있는 앙골라 정부 각계 인사와 UN현지
사령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UN군을 대상으로 인상깊은 행사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루안다에서 각계 지도급 인사 1,500명을 초빙하여 새마을 운동과 한국의 발전상을
영상화하여 상영하고, 사물놀이, 태권도, 특공무술 등의 각종 공연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큰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현지 유엔 평화유지 활동을 총괄하는 UN특사는 행사중 예상치 않은 특별 연설에서
“오늘과 같은 자국 문화 소개 공연은 유엔 평화유지활동 역사이래 최초이며 이렇게
문화적 내용이 풍부하고 조직적으로 멋진 공연을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의 모든 노력과 활동은 수차례에 걸쳐 앙골라 언론매체와 UN언론기관 등에
보도되었고 급기야는 지난해 10월 세계적 뉴스메이커인 CNN을 통해 방송되어 한국군의
우수성과 성실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하였으며, 스페인 PATV사에서는
철수전 한국의 성실한 평화유지 활동을 3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였고 이를
전 유럽 지역에 방송할 것을 약속하기도 하였다.


홍보활동은 여기에 그치지 않아 기간중 앙골라 전쟁 고아 협회, 고아원, 양로원,
종교단체, 병원등에 한국에서 준비한 의류와 생활 필수품 등을 10여차례 기증함으로써
우리의 유명 상표와 우수한 품질의 상품이 앙골라에 침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상과 같은 우리의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은 앙골라 국민과 현지 UN요원들
모두를 이제는 한국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지지하는 한국팬으로 만들었으며, 차후
군이 아닌 민간이 앙골라에 성공적으로 진출하여 확고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겸손히 자평해 본다.


4. 영원한 한국 심기



우리는 15개월동안 전력 투구하듯 활동하였지만 철수하고 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 안타까워 가장 대표적인 것 한가지를 남겨 그들에게 각인된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국민 계몽의 대표격인 사랑의 학교를
존속 운영키로 했다.


기간중 철수후에도 양심껏 맡아서 운영해 줄 인재를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바
목사님 한 분을 찾게 되었고 그분이 시무하시는 교회를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깨끗이
단장한 후 사랑의 학교를 이전하였다. 그리고 차후 재정 지원을 위한 후원회를 간부
위주의 자발적 참여로 발족시켰다.


올 3월부터는 전쟁고아 10명을 포함한 30명을, ’98년에는 다시 30명을 모집하여
총원 60명 규모로 운영하되 교사채용, 학용품비 등 소요 경비를 후원회에서 매월
송금하고 운영 결과를 다음해 지원에 반영하기로 하였다. 계속되는 사랑의 학교가
좋은 성과를 거두어 앙골라 어린이들이 밝게 자라나서 앙골라를 발전시키고, 언젠가는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한국을 방문하여 따뜻한 우정을 확인하고픈 희망찬 포부를
우리 모두는 갖고 있다.



5. 앞으로 남은 과제



현지에서 다년간 취재 활동을 하고 있는 어느 외국인 기자의 말이 생각난다. “앙골라에
한국 기업이 진출할 최적기는 지금이다. 3∼4년 안에 진출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것이다.” 이 말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다.


지금 우리 나라는 유례없는 경제 불황을 맞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니 국내의 사정을 차치하고라도 미래를 보기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해결책을 찾으려고만 하는 안이한 사고와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기만 하다. 어느 경제인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했듯이 눈을
조금만 멀리 떠서 보아도 아직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개발과 투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활동했던 앙골라만 보아도 주인없는 넓은 땅과 무한히 매장되어 있는 지하자원,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으로 무장(?)되어 있으며 이제는 전쟁이 어느정도 안정되어
이곳에 진출할 경우 엄청난 부의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호기의 나라임이 틀림없다.


현재 앙골라에는 수산회사인 Inter-Burgo사와 유전 개발에 참여중인 (주)대우가
진출해 있으며 포르투갈 현지인들에 의해 운영되는 현대, 대우, 기아, 쌍용, 아시아
자동차 현지 판매법인만이 있다. 다행히 한국차가 약30%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지만
현지 A/S 센터가 없으므로해서 시장 유지 및 확보에는 대단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따라서 앙골라의 잠재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는 하루빨리 대사급 외교
창구개설을 검토해 주었으면 한다. 앙골라에는 상주 대사관이 없어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현지 정보의 수집이 어렵고, 교민의 지위와 권익 보장이 곤란하며, 한국
기업의 현지 진출을 저지하려는 세력에 대항하기가 매우 곤란한 상태에 있으므로
외교적 활동과 경로를 통해 유용한 정보를 획득하고 외교적 수단을 활용하여 기업체의
진출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빈 방문을 추진함으로써 상호 이해의 폭을
증진시키고 아울러 상호 투자 협정을 체결하여 선점의 효과를 노려 봄직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앙골라를 비롯하여 미지의 땅 아프리카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활용하는 보다 공격적인 홍보 활동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성급한 판단이 될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정부의 노력과 관심 그리고 민간의 인식 전환이
같은 공감대를 토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군이 앙골라에서 이룬
성과를 헛되게 하지 않고 이를 민간분야의 진출로 이어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제시한 여러 의견들이 진정으로 우리 나라를 위하는 순수한 차원에서 이해되기를
바라고 마지막으로 앙골라 평화유지 활동에 헌식적으로 참여했던 많은 우리군 장병들에게
그 동안의 노고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앙골라에서 보았던 어린이들의
맑고 순수한 눈동자를 떠올리면서 앙골라 평화유지 활동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앙골라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군사세계는 앙골라 3진으로 PKO 에 참여하여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凱旋한
이상대 중령이하 전 대원들에게 경례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