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는 중국
홍콩반환에 따른
중국의 부상과 우리의 안보
金 江 寧
(조화정치연구원장,政治學博士)
문제의 제기
세계적인 금융,무역,물류,관광의 중심지인 자유무역항 홍콩이 중국귀속으로 마침내 '홍콩 차이나'(Hong Kong China) 시대를 열었다.. 지난 1997년 7월 1일 0시(한국시간 오전 1시) 홍콩전역에서 영국의 유니언잭과 홍콩 정청기(旗)가 내려지고 중국의 오성홍기(五星紅旗)와 홍콩 특별행정구기가 게양됨으로써 홍콩은 1백55년의 영국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중국의 특별행정구(SAR)로 새롭게 출발했다.이는 중국이 단순히 홍콩주권을 회복했다는 차원을 넘어 서방 제국주의의 아시아 식민시대의 청산 및 대중화권(大中華圈)의 탄생을 알리는 것으로 그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홍콩반환은 또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역사상 유례없는 한나라 두체제인 일국양제(一國兩制)가 실험대 위에 올려졌기 때문이다.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시금석이 될 일국양제하의 중국과 홍콩의 장래는 1999년 12월로 예정된 마카오(澳門) 회수와 대만과의 통일은 물론 한반도의 통일안보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홍콩의 발전과 반환과정
홍콩(香港)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의 광동성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홍콩섬,구룡(九龍)반도,신계 (新界::New Territory,235개섬으로 이루어짐),그리고 스톤카터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편전쟁의 결과 1842년 남경조약으로 영국이 홍콩을 영유하게 되고,1860년에는 구룡반도와 스톤카터섬이 영국에 합병(북경조약)되었으며,신계는 1898년에 홍콩섬과 구룡반도의 방위상 '홍콩영역의 확장조약'에 의해서 영유하게 되고 99년간 조차하게 되었다.
그후 홍콩의 역사는 인구유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 조그마한 어촌에 불과하던 곳이 정치혼란을 피해 유입된 인구 증가로 96년말 현재 6백42만여명으로 엄청나게 인구가 증가했다.또한 홍콩경제는 중국의 정치 혼란을 피해 넘어온 중국인 노동력과 2차대전후 세계적인 경기회복 추세에 힘입어 급속히 발전했다. 1860년대부터 자유무역항으로 번영하고 영국의 동양경영의 거점으로서 또한 중국과 자유주의 제국을 연결하는 상업-교통상의 요지로서 발전을 거듭해 왔다.
홍콩반환계획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등소평이 집권한 이후로서 홍콩반환에 관한 중-영간의 교섭은 대처 영국수상의 방중(訪中)으로 시작되었으며 그후 1983년 7월부터 실무자회담에 들어가 22회의 협상을 거쳤다.영국과 중국은 2년간 지속된 홍콩반환협상에서 1997년 7월1일부터 50년간 고도의 자치를 허용하는 '일국양제'방식에 합의하고 1984년 10월에 합의서에 서명이 이루어지고 85년 6월 30일을 기해 공식 발효되었으며 그후 13년 만인 1997년 7월1일 0시를 기해 홍콩반환을 이행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중-영간의 협상과정중에 있었던 괄목할 만한 점으로는 등소평을 비롯한 중국정부의 고위지도자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만과의 조국통일 협상제의에 홍콩반환 협상과정에서 선례모델로 구체화된 '일국양제론'을 종종 언급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홍콩 차이나와 중국의 부상
홍콩의 면적과 인구는 1천 45km2 로서 서울의 1.8배에 해당하고 1996년말 현재 6백40여만명의 규모지만,세계적인 금융,무역,물류,교통,관광의 중심지로서 이 항구도시가 품어내는 경제 에너지는 웬만한 나라의 경제성적표를 초라하게 만들 정도이다.
먼저 수출면에서 지난 1996년도 홍콩의 수출액은 1천8백8달러로서 세계10위를 기록하여 1천5백12억 달러로 세계11위를 기록한 12억의 중국보다 많고 1천2백97억 달러로 세계12위를 기록한 4천5백7십만명의 한국도 멀리 제쳤다.외환보유고면에서 홍콩은 1997년 4월 현재 6백36억 달러로서 일본(2천1백94억 달러),중국(1천1백3억 달러),대만(8백86억달러) 등에 이어 세계 7위이다.빈약한 외환보유고(2백98억달러)와 외채에 시달리는 우리와는 비교가 안된다.이른바 '대중화(大中華)경제권'으로 불리는 중국-대만-홍콩의 외환보유고 합계가 2천 6백 25억달러에 달해 일본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홍콩의 경제적 파워는 지갑의 두께에서도 드러난다.'아시아의 4룡(龍)'의 하나로 불리우는 홍콩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96년 현재 2만4천달러를 넘어 이미 G7(선진 7개국)수준에 도달했다(한국:1만5백48달러,미국:2만 8천 6백97달러).
또한 홍콩은 이미 런던-뉴욕과 함께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고 홍콩항은 컨테이너 처리면에서 세계 1위의 항구다.막강한 홍콩의 경제력은 중국의 개혁-개방에 돈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996년말 현재 중국 외국인 투자액(누계) 3천9백50억달러중 홍콩의 자본이 59%를 차지한다. 미국 일본 유럽 한국 기업들의 투자액을 합쳐도 41%에 지나지 않는다.'중국 개혁의 젖줄'인 셈이다.
홍콩반환으로 성큼 다가서게 된 '대중화권의 건설'은 중국이 꿈꾸고 있는 원대한 구상이다.지난 1997년 7월1일 본토에 귀속된 홍콩과 오는 1999년에 반환될 마카오,그리고 장기적으로 대만까지 포괄해 하나의 대중국을 건설하겠다는 중국의 꿈이 바로 그것이다. 나아가 화교인구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화상(華商)이 경제권을 쥐고 있는 동남아 국가에서의 경제 정치 문화 군사적인 영향력 행사를 증대시킨다는 그 원대한 꿈이 1백55년만의 홍콩반환을 계기로 재부상하고 있다.
우리의 안보적 대응
홍콩의 주권반환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중국의 대중화 건설구상에 큰 추진력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대중화 건설 개념은 중국 내부적으로 등소평사후 새지도자로서 기반을 구축해 가고 있는 강주석이 12억 중국인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면서 단합을 호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비젼이기도 하다.
내부용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이 구상은 이미 상당히 구체성을 띠고 진행되고 있다.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국방력 증강이다. 미국 해군정보국(ONI)은 지난 1997년 4월 중국이 오는 2010년까지 원양함대를 창설하며 이를 위해 항공모함을 자체 건조키로 했다는 정보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한 바 있다.
홍콩은 금융 무역 상업제도,법률,사회간접자본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본주의제도가 가장 발달된 국제도시라는 점에서 사회주의 중국이 자본주의를 배우고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훌륭한 발판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대중화 구상이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 등에 미칠 영향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특히 중국이 패권주의를 지향할 경우 미일과의 마찰은 물론 주변국의 군비경쟁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춘 대중국의 발흥은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에 위협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내총생산(GDP) 1조달러의 경제대국 그리고 원양함대의 창설을 눈앞에 두고 있는 군사대국이 된 중국의 국제적인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에 대비하여,이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대중(對中)외교 및 다각적인 대내외적 대응방안을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당장에는 큰 변화가 없을지 모르나 홍콩주권의 중국귀속은 한-홍콩관계에도 여러가지로 큰 파장을 몰고올 가능성도 없지 않은 바,우리는 홍콩 및 중국의 변화추이를 면밀히 분석,대응하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한중관계가 홍콩 귀속 이후에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함은 물론 우리의 통일안보적 기반도 함께 다져나가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