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 정치
military
2002년 05월 08일 00:00
조회 10730
이름 : 김진욱 번호 : 13
게시일 : 2002/05/08 (수) AM 04:33:37 (수정 2002/05/08 (수) AM 07:51:27) 조회 : 63
어린 시절 야유회에 가서 선생님이 '노래할 사람' 하면 '저요, 저요'하고 서로 몸을 부딛치고 앞으로 뛰어나가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또 가만이 앉아 '자기에게도 노래할 기회를 주겠지' 하고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모든 어린이들이 마음속으로는 다 노래하고 싶어하는 것이 사실인데 차라리 돌아가면서 다 하게 하든가, 아니면 다른 공정한 방법을 통해서 노래할 사람을 선정하는 것이 옳지, 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그런 몸싸움을 벌이게 하고 몸싸움에서 이긴 사람이 선정되어 노래를 하도록 유도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정한 게임이 벌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경쟁자들은 마치 하이에나와 같은 비열한 행태를 보이게 마련이고 결국 짧게는 그런 사람들이 승리를 하게 마련이지요. 또 공정하지 못한 지도자들은 공정한 게임환경을 조성하기보다 소위 '분할통치방식'을 택해 오히려 니전투구의 장을 만들어 놓고 갈등을 조장하면서 그 갈등해결에 대한 특권을 즐기고 권력의 위기를 메우려고 하지요. 그것이 과거 비열한 정치가들의 모습이었고 그게 무슨 중요한 리더쉽이론나 관리이론이라도 되는 양, 학원에서 그걸 학문으로 가르치기도 했지요.
지난번 걸프전에 공보장교로 참전했을 때, 제가 실수하여 두고두고 반성되는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 150여명이 사우디에 있었는데 가끔 한국의 방송사 기자들이 우리를 취재하러 왔을 때 서로 카메라에 찍히려는 사람들을 잘 통제하여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카메라에 비춰 주었을 걸 하는 것입니다. 카메라에 찍히는 일은 병사들이나 간부들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고 분명 그들에게 어떤 이익을 주는 것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공정한 게임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했어야 했다는 반성입니다.
고급간부들이 서로 카메라에 찍히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측은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또 경쟁이 치열할 때는 저주스럽기도 했는데 사실, 그들이 어떤 영웅심리나 극장심리에 의해서라기보다 그때는 그것이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안부인사를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방송사 기자들이 왔다하면 어쨌든 자기 얼굴을 내밀려고 애를 썼던 사람들이 결국, 한국의 TV에 많이 비쳐졌고 그들의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에게 또 군의 지휘관들에게 자주 노출되어 나중에 진급이나 군생활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일로 장군까지 되었으니까요. 그래서 부대 지휘관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제발 보리알 끼듯이 끼지 말라'고 주의를 주곤 했습니다. 그들은 어쨌든 이건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하이에나와 같은(비열한) 행태를 택했을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자리 해보려고 했던 사람들중에 과연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뜻을 실현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그 뜻을 실현한 사람들보다 뜻을 실현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점잖게 체면을 차리면서 기다린 사람들보다 '저요, 저요' 하고 몸을 부딛치고 외친 사람들이 더 뜻을 실현하고 더 김대통령 가까이에 자주 갔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들은 어차피 이건 공정한 게임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하이에나의 길을 택했을 것으로 봅니다.
이제 김대통령을 통하여 뜻을 실현하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김대통령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게 되겠지요. 공정한 게임에서 자기가 진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그 비난의 강도가 약하겠지만, 김대중의 권력게임이 공정한 게임이 아니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그를 저주하겠지요. 남은 임기동안에 또 무슨 숨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지 걱정이 되는군요. 이 시대, 페어플레이 정치를 소망하면서 작고 큰 모든 관리자, 권력자들과 새롭게 권력을 쫓는 사람들에게 제안드립니다. 이 땅에 권력의 공정한 게임, 페어 플레이 정치가 실현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보자고...